어릴 때부터 나는 연예인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간혹 관심이 가는 연예인이 있어도 딱 그 정도뿐 호들갑 떨었던 적은 없다. 중학생 때 생각해보면 가수의 방송 무대를 따라다니며 심각하게 좋아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중 세븐을 좋아하던 친구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리니 세븐'오빠'에게 줄 선물로 세븐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연필소묘로 세븐을 그렸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 연예인에 무덤덤했던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연예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이나, 대학 들어가서도 학교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어른스럽고 어린 티가 나지 않게끔 행동해야 했다. 20대 초중반 데이트할 때도 내가 '산리오'매장이 보여 들어가 보자 하면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라는 말과 함께 집에서도 옷차림을 나이에 맞게 입으라는 잔소리. 이렇게 어릴 때 유치함을 숨겼다면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내 안의 유치함을 조금 인정하기로 시작했다. 살면서 조금은 유치해도 되지 않을까?
몇 년 전 TV에서 무한도전을 통해 젝스키스의 완전체 무대를 기획한 회차를 방영한 적 있다. 젝키 해체 이후 연예인을 그만둔 고지용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고지용을 보는 순간 어릴 때가 생각나면서 한눈에 뿅. 어린 시절 추억만 생각하면 조건 다 필요 없고 모든지 무장해제되는 느낌이지 않는가? 그때 귀공자 스타일이었는데 여전하구나, 어디 동네에 사는구나, 누구랑 결혼했구나를 인터넷에 검색하면서 어느 순간 나는 인터넷 스토커처럼 그의 행적을 눈으로 따라다녔다. 심지어 그의 예쁘고 똑똑한 부인까지도 팬이 되어버려 동경하기에 이르렀다. 하루는 고지용이 사는 동네에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친구들과 카페에 있다가 고지용과 그의 부인, 지인들이 들어왔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고지용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나는 사진이라도 같이 찍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니 친구가 대신 용기 내서 같이 사진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하지만 고지용의 지인이 바리케이드 치듯 우리를 막아섰다. 당시 인스타그램을 보면 고지용은 사람들과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나도 찍었다면 #자랑스타그램 하며 올렸을 텐데 하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후에 고지용과 그의 가족들이 방송에 자주 나와서 TV로 아쉬움을 달랬다.
여자 연예인으로는 수애, 정유미, 이연희, 김고은같이 맑고 고상한 분위기가 풍기는 사람을 좋아한다. 예전에 미술관에서 일할 때 이연희를 본 적이 있다. 전지현을 봤을 때도 '오 전지현이다'하고 말았는데 이연희를 보는 순간 여신 같은 모습에 할 말을 잃을 정도로 감탄했다. 그날 미술관 모든 직원들이 정말 예쁘다며 이연희가 가는 순간까지 눈길을 떼지 못했다. 외국 연예인으로는 여자는 엘르 패닝, 릴리 콜린스 그리고 남자로는 에디 레드메인, 톰 히들스톤, 티모시 샬라메를 좋아한다.
고등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일했을 때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요새 아이돌 중에 누가 인기 있는지 물었다. 당시 방탄소년단이 한창 인기 있을 때라 학생들은 방탄소년단이라 답했다. 라떼엔 빅뱅, 슈퍼주니어, 동방신기였다. 방탄소년단을 잘 몰랐던 나는 이름이 왜 그 모양이냐며 푸하하 웃었다. '방탄은 뭐고 소년단이라니 보이스카우트야? 푸하하'. 학생들과 세대차이를 느끼면서 나도 초등학생 때 기억이 어렴풋 생각났다. 강타가 HOT 이후에 재즈풍의 노래로 아주 잠깐 활동했던 적 있었다. 미술학원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재즈 노래 부르는 가수 이름이 강타야. 푸하하하하'. 그땐 웃으시는 선생님이 이해가지 않았는데 정말 생각해보면 감성 충만한 재즈를 모든 걸 휩쓸어버리는 '강타'가 부르다니 안 어울리긴 했다.
방탄소년단이 해외 활동을 시작하면서 BTS로 불리게 되었다. 그중 랩몬스터도 RM으로 활동명을 바꿨다는데 나는 이 사실 또한 몰랐다. 방탄소년단에 크게 관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갤러리에서 일할 때 대표님이 사업 관련으로 BTS의 RM 이야기를 하셨다. 대표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랩몬스터를 왜 RM으로 줄이시지 혼자 생각하고서 '아~ 랩몬스터요?'라 되물었다. 50대이신 대표님보다 내가 유행에 더 뒤처져 있었다. BTS가 해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상을 받을 때도 '그렇구나. 대단하네'정도로만 생각했다. RM이 나와서 유창하게 영어로 소감을 말해도 그렇구나. 나는 그룹 내에서 지민, 진을 그나마 좋아했다.
하지만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어느 순간 훅 다가오는 것. 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RM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BTS가 하는 광고를 볼 때면 지민과 진만 보였는데 이제는 RM만 보인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지 않았지만(나는 지인들만 팔로우하기 때문) 가끔 들어가서 본다. 관심이 가기 시작한 건 그가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일까?
나는 미술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중학교 내내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미술학원에 다니느라 수업을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그림 하는 아이로 알았다. 중2 때 다른 반 남학생이 우리 반에 가끔 찾아왔다. 얼굴과 이름만 아는 친구가 대뜸 나에게 편지와 작은 비너스 석고상을 주고선 저 멀리 뛰었다. 그 친구는 키도 작고 왜소하고 장난기 가득한 아이로 기억한다. 나는 키가 크거나 멋있다고 이성친구를 관심 있어하지 않았다. 나는 중2 때 잠깐 연락했던 같은 반 친구도 당시 나와 키가 같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친구들과 사귄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안 한 1주일 랜선 문자친구였지만 다들 내가 미술 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내가 그림을 하니까 선물로 석고상을 준 것이다. 당시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워서 뇌리에 깊이 박힌 친구다. 나중에 커서 친구와 연락이 닿았을 때 석고상 얘기가 나왔다. 친구는 자기는 그림에 대해 몰라서 무작정 화방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곤 엄마에게 받는 한 달 용돈으로 돈이 모자란데도 석고상을 샀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역시 이런 센스는 어릴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다.
인문계 중학교를 다니다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냈던 동네 남사친과 통화를 하다가 나는 미대생에 대한 이미지를 물었다. 친구는 미술 하는 사람들 다 또라이지~라는 대답을 했다. 물론 나와 친해서 나를 또라이라고 표현하고 싶었겠지만 친구에게 재차 물었다. 어깨에 화구통을 매고 앞치마 하고 그림 그리는 미대생에 대한 환상이 없는지. 안타깝게도 그때부터 친구로 인해 일반화의 오류가 생겼던 것 같다. 인문계 친구들은 음악 전공을 좋게 보고 미술 전공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가서 미술 전공인 이성을 만나도 전혀 개의치 않아했고 오히려 더 좋아했다. 아직까지 미술은 돈이 되지 않고 취미로만 해야 한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대할 때 있다. 그래서 간혹 다른 전공인 사람들이 미술과 전시에 관심 있다고 하면 그제야 나도 눈을 번쩍이며 관심을 가진다.
갤러리에서 일할 때 RM이 미술계에서 큰손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아트페어나 예술 관련 행사에서 RM 모시기 경쟁이 일어났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전시도 많이 가고 비싼 작품을 구입한다. 원하는 작품을 사는 재력이 부럽기도 하지만 미술에 관심 많은 RM에게 한눈에 뿅. 이렇다 보니 RM이 꿈에 나왔다. 매일 그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꿈의 내용은 아주 구체적이다. 꿈에서 그는 내 남자 친구로 우리는 잠시 냉전기를 가진 커플이었다. 다른 사람과 있는 나를 보면서 RM은 손을 내밀어 같이 나가자고 했다. 나는 서운해하며 토라지는 모습을 보이며 살짝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서 포옹을 했나 그의 어깨에만 기댔었나. 정말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이 나이에 꿈에서 덕질이라니. RM이 미술계를 점점 더 밝은 미래로 이끌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
RM이 인터뷰에서 한 말로, "제가 예술계의 외부인으로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한 멋진 말에 한 번 더 뿅.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