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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Sep 19. 2023

즉흥으로 끊은 로마 비행기표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네, 저 가고 싶어요. 제가 가겠습니다.


연초에 마음을 다잡지 못해 이리저리, 갈팡질팡,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던 추운 나날- 무더위 8월의 로마를 갈 계획을 했다.

나는 로마와 중학생 때부터 좋아한 책 <냉정과 열정 사이> 때문에 로망으로만 꿈꿔온 피렌체를 '아 모르겠다, 가서 미술관 출장이나 가자' 여름방학 동안 갈 생각 하며 즉흥으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이탈리아 또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떠올리면 나중에 신혼여행으로 가지 않을까 또는 서른 전에 연인과 유럽여행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는 여자의 서른 살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보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다 헤어지면서 각자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생활하다 십 년 전 여자의 생일날에 보잔 약속을 떠올리며 마지막에 재회한다. 중학생 시절 마음에 깊이 남을 정도로 책을 감명 깊게 보고 이후에 나온 영화도 좋아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여주인공이 사뭇 달라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암튼 나도 지난 연인에게 서른 전에 우리 피렌체 두오모 성당(스케일이 크겠지?)은 아니더라도 @#$%^& 에서 보자! 하는 로망을 꿈꾸며 자라왔건만 아쉬움과 후회만 남는 내 지난날.

그럼에도 가본 적 없는 유명한 관광도시에서 내가 가고 싶고 눈으로 담고 싶은 것만 담아보자는 마음으로 짧고 굵게 로마와 피렌체를 향해 떠났다.

로마에 도착해서 바로 다음날 피렌체 가는 일정이었다. 기차 타기 전 오전에 시간이 비어 로마의 유명 관광지를 짧게 둘러볼 생각으로 나보나 광장, 스페인광장, 트레비 분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을 구경했다. 미디어에서 하도 봐서 그런지 정작 '생각보다 크기가 작구나' 생각했다. 나도 관광객모드로 가족과 영상통화하며 트레비분수를 보여주고 사진을 마구 찍었다. 스페인광장 앞에는 더운 여름날에 군밤을 파는 로마 아저씨도 있었다. 오늘은 시간이 안되어서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만 보고 나머지 날에 다른 성당을 갈 계획을 했다. 로마에는 곳곳에 성당이 있어서 유럽의 가톨릭에 대해 진심을 느꼈고 성당 안의 건축과 그림을 볼 때마다 입이 벌어졌다. 특히 유럽사람들은 천장에 어떻게 퀄리티 높은 그림을 그렸을까, 난 지금도 그리라고 해도 못그릴텐데 존경심이 마구 올라온다. 



유명 관광장소들을 대충 둘러만 보고 피렌체 가는 기차를 탔다. 서울에서도 기차 탈 때마다 헷갈릴까 봐 조마조마하는 나인데 외국에서 잘 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편하게 갔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어릴 때부터 꿈꿔온 원형의 갈색돔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찼다. 

실물을 보니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그림같이 예뻤다. 건물은 마치 흰색 캔버스에 선으로 그려놓은 듯했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주인공처럼 두오모 쿠폴라에 올라 피렌체 시내를 보고 싶었지만 두오모 쿠폴라는 좁은 통로로 계단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고 그 옆에 위치한 조토의 종탑은 414개의 계단(내 생일과 같은 숫자인 운명)이라 하여 더 적은 계단을 택했다. 조토의 종탑 정상에 올라 멋있게 전망대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던 걸까. 끝까지 올라가기까지 두 번 정도 쉬는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에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지만 나는 첫 번째 쉬는 공간 올라가기 전에도 좁은 계단에서 헉헉 대며 벽을 부여잡고 있었다. 지나가던 외국인이 나보고 괜찮냐고도 물어봤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애써 웃으면서 나는 괜찮아하며 외국인을 보냈다. 쉬고 멈추고를 반복하며 두 번째 쉬는 공간에 간신히 올라갔다. 더 올라가면 내가 서울이 아닌 로마에서 죽을 것 같았기에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다 싶어서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도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정상보다 몇 미터 아래지만 지금 자체로도 바람 솔솔 맞으며 고풍스러운 피렌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풍경은 아름다웠고 운치 있었다. 더는 욕심부리지 말고 여기서 만족하자 하며 할머니마냥 후들거리는 다리를 잡고 도로 내려왔다. 

유럽에 왔으면 당연히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구경 아닌가. 피렌체에서도 우피치 미술관, 오페라 미술관,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둘러보며 유명한 작품을 실제로 본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감상했다. 김마키 마이 컸다! (사실 크고도 넘쳐흘렀지만...) 작품은 실로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했고 감동 그 자체였다.



다시 로마로 돌아와서 바티칸미술관, 로마 국립현대 미술관, 보르게세 미술관, 바르베리니 미술관,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을 갔다. 그리고 성베드로 성당과 시스티나 성당도 구경했다. 화려한 장식과 천장화를 보면서 유럽사람들은 어떻게 천장화나 저 꼭대기 끝까지 인테리어 장식을 했을까 경이롭기만 하다. 내가 지금까지 둘러본 곳 중 로마 국립현대 미술관이 제일 모던했다.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작품 간 시대와 양식이 달라도 한 곳에 같이 디스플레이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공간이 감각적이면서 색다르게 다가왔다.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은 작품 외에도 작품을 거는 위치, 높낮이, 관람객의 동선, 작품 간의 구성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작품을 감상하면서 디피(작품 공간 구성)가 정말 깔끔하게 좋았다.



로마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 미술관 외에 다른 공간을 가고 싶었다. 로마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길거리를 다니면서 읽을 용도로 산 정지돈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책을 샀다. 작가가 여행하고 산책하며 쓴 글이라기에 비행기에서 조금 읽었는데 도시와 관련된 건축이야기가 조금 지루하여 서울 가서 다시 읽어야지 하며 덮었다. 하지만 미술관 말고 다른 장소를 가고 싶단 생각을 할 때 책의 앞부분이 생각났다. 

도시의 다른 면을 보자, 다른 용도의 건축물을 보자.

그래서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산티냐치오 교회와 판테온을 갔다. 나같이 힘들 때만 하나님을 찾는 나이롱 모태신앙은 각자의 종교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해 보인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돈과 시간을 써가며 희생, 헌신하는 사람들의 원천은 무엇일까. 종교를 향한 그들의 믿음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로마의 성당을 구경하는 일은 경건한 마음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재교육으로 딱이다. 성당과 판테온도 마찬가지로 유럽사람들이 키가 커서 그런지 아니면 하늘을 좋아해서 높이 올라가고 싶었는지 꼭대기 장식 하나하나 장인의 손길이 안 담은 곳이 없었다.



로마에 오면 진정한 피자와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이동하느라 바빠서 주로 젤라또를 먹거나 조각피자를 사서 공원벤치에 앉아서 먹거나 호텔 근처에 있는 일식을 먹었다. 나름 일식집도 미슐랭으로 맛이 훌륭했다. 저번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럽만 오면 한식이 아닌 일식이 먹고 싶다. 여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매끄러운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돌로 된 바닥으로 걷기가 불편했다. 저절로 헬스장에서 스텝퍼 하는 느낌이었지만 이만큼 과거를 간직하는 나라구나 생각 들게 하는 여행이었다.

로마에서 갔다 온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공항 홈페이지를 검색하고 있는 나. 또 어떤 나라를 맞닥뜨려 경험하게 될까 기대된다.  

세상엔 볼 것도 많고 구경할게 많지만 여행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 침대가 제일 편하다는 사실. 

 

- 유명한 작품들을 다 올리지 못해서(올리면 스크롤만 길어지기에..) 슬프기만 한 로마 여행일지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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