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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외로운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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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Feb 25. 2022

나는 ISFP

내가 부끄러웠다.

몇 년 전 가을 무렵, 회사에서 개인별 MBTI 검사를 진행했다.

그 이유인즉슨 동료 한 분이 이 심리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했고, 

우리 센터장님께서 그 동료를 초빙하여 전 센터원의 MBTI 검사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회사에서 진행했던 수 회의 심리검사에서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답변을 한 적이 없었다. 괜히 모난 돌이 되어 업무도 아닌 일에 정을 맞기는 싫었다. 그래서, 윗 분들이 좋아할 만한 안전한 답만을 선택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는 왜 그랬을까. 나의 MBTI 유형이 궁금했고, 나는 내 마음이 말하는 대로 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ISFP(모험가형, 성인군자형)였다. 


백여 명이 넘는 동료 중에 ISFP는 나 혼자였다. 요즘에서야 ISFP가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째로 많은 유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센터는 '분석'과 '통찰'을 통한 완벽한 보고서 작성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그래서일까. 분석과 업무 성과를 중요시하는 ISTJ와 ESTJ 유형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딱 하나, 나만 ISFP였다. 


결과를 흥미롭게 보시던 센터장님께서는 각 유형별로 손을 들게 하시고, 그 성격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진행자에게 질의하시곤 했다. ISFP의 차례가 오고, 손을 든 사람이 나밖에 없었을 때의 그 창피함이란...

심지어 진행자의 실수였는 지, 특성조차 '착하지만 업무를 잘 미룬다. 이성보다 감정을 중요시한다.'등 다소 체계적인 업무와는 동떨어진 특성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료들은 한바탕 웃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흘렀고, 그 순간만큼은 나를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부끄러웠다. 이 조직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생각부터, 나의 성격은 다른 이들과 조화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는데, 그때는 참 크게만 느껴졌다.


귀가하는 길, 인터넷에서 ISFP의 특성을 찬찬히 읽어봤다. 나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검사 시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이 유형은 이 조직과는 맞지 않으니 지금부터 이것을 숨겨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우연히 방송인 유재석 씨가 ISFP 유형이라는 것을 기사에서 접했다. 나와는 달리 ISFP 유형인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방송에서 당당히 내보이는 그의 모습이 퍽 인상 깊었다. 




'부끄럽지 않나?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쩌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ISFP 유형의 비율과 유명인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ISFP 유형은 한국에서 굉장히 흔한 유형이었다. 


백여 명 중에 하나라는 비율은 우리 부서의 특성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이년 간이나 나의 성격을 부정하며,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었다.



회사에서 ESTJ, ISTJ 유형은 업무를 칼 같이 하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나는 유능해 보이는 그들의 성격을 닮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을 더 할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내 속에서 '그래, 나 자신을 인정하자. 그들과 나는 달라. 내 성격에도 장점이 있을 거야.'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번 마음을 먹으니, 마법처럼 긍정적인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나의 장점을 살리되, 단점은 다이어리나 일기와 같은 다른 도구들도 보완해나가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똑같은 'Sam'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만큼은 마인드의 차이가 꽤 큰 효과를 보였다. 스스로를 인정하기 시작하니, 새로운 단계의 나와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 둘째 아이의 성격 때문에 아내와 근심하고 있다. 호기심이 많고, 위험한 행동을 퍽 잘하는 아이인데, 아내와 나의 위험하다는 경고성 조언도 한 번에 듣지 않는다. 나의 어릴 때와 겹쳐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두 아이와는 다르다는 생각에 걱정이 된다.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우리가 그 아이의 성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미 마음속에 이상적인 아이의 행동을 그려놓고, 아이를 그것에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닐 까. 부모가 요구하는 바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방향과 매번 부딪치니, 아이의 행동이 오히려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아이의 성격을 인정해주어야겠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한 것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성격이 있을 진대, 굳이 특정한 몇 개의 성격에 맞출 필요는 없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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