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대표는 최대리 Feb 04. 2019

"자식한테 존경받는 부모가 성공한 인생이다"

모두가 존경할 수 있는 가족을 위하여

스카이캐슬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의 입시 열풍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 종편 사상 25%에 육박하는 엄청난 스코어를 올린 교육 스릴러 드라마. 용두사미의 평은 있으나, 사실 이 드라마보다 대한민국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을 다각도로 보여준 드라마는 없었다. 그리고 그 욕망 속에는 우리 모두가 있었다.


내 부모님은 교육자였다. 그래서였을까. 풍족하진 않아도, 본인들의 자산을 통해 우리를 교육시키려고 부단히 애썼다. 무려 유치원부터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 적어도 '교육'이라는 면에서 우리 부모님은 전문가였고, 전문가임을 자청했다. '내 자식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은 아버지의 몫이었고 한자, 일본어, 음악 등은 엄마의 몫이었다. 이뿐만이랴. 피아노와 플루트, 수영, 스키, 스케이트 등 이 모든 것이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배운 것들이었다.

방학만 되면, 아버지는 1분 1초 단위로 공부하는 스케줄을 만들었다.
내가 문제를 틀릴 때 아버지는 별표를 쳤다. 그때 이후로 별표는 내게 '틀린 것'이라는 생각이 박혔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교육방식은 스카이캐슬의 차민혁 교수와 똑같았다. 


스카이캐슬의 차 교수는 아이들에게 폭언과 반성문을 강요한다. 여기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내 아버지는 고아원 출신이었다. 경남 고성에서 무뿌리를 캐먹으며 공부해 순천고에 입학. 연세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낼 돈이 없어 서울 교대로 갔다는 이야기. 그의 부모로부터 아무 도움받지 않아서 이 정도 학벌과 직업을 얻었는데 서포트를 하면, SKY는 가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댔다. 


그의 자신감은 나의 고모, 그러니까 그의 여동생을 자신의 교육 방식으로 서울대 영문과를 보냈다는 것에서 나왔다. 고모는 서울대를 들어가, 서울 법대생인 고모부를 만난 것을 강조하며 "환경은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다"라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 가족은 내가 12살이 된 초등학교 5학년, 결국 안암동에서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나와 내 동생이 W중, W고를 졸업하기 전까지, 약 14년 간 대치동에 살았다. 최고의 학군에서,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며 자식을 성장시키고, 대한민국 사교육의 극한을 통해 그들 자녀의 계층을 더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 양쪽 다 교육자인 사람임에도, 내 자식은 더 나은 환경에서 계층 사다리를 올라 더 높은 곳으로 가길 원했던 부모님의 욕망은 우리 가족 모두를 대치동으로 내몰았다.


드라마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형제의 모습이 마치 우리 두 형제 같았다.


중학교에 입학 후, 처음으로 봤던 중간고사. 나는 첫 중간고사에서 반 4등을 한다. 중학교 1학년 마지막 중간고사에서 평균 89점을 받는 순간, 급격히 무거워지던 집안의 분위기. 이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게임으로, 친구들과의 일탈로 이를 참았다. 참고 견뎠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압박감이 낳은 산만함' 부모님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방학 기간 동안 나를 약 40여 일 간 '기숙학원'에 보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나와 사회와의 격리가 공부에 집중시켰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달랐다. 오히려 부모의 간섭 없이 온전히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 그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행복한 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기숙학원에 한 달씩 갇혀있을 때, 나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그곳은 부모로부터 더 이상의 간섭이 없는 공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사이, 또 한 번의 기숙학원 이후 성적은 급상승했지만 또다시 쳇바퀴도는 학원과 과외의 무덤 속에서 내 성적은 그리 오르지 못했다. 강압적 환경에서 억지로 떠먹여 주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수능 보는 날,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듯, 나 또한 수능을 평소보다 낮은 점수로 마무리했다. SKY는커녕 소위 말하는 상위 10대 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집안 내 불화나 경제력에 대한 변명으로 이를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이 상황을 끝내고 20살이 되어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극 중 공부방을 부시면서 해방감을 표현한 빛이 나오는 미장센.


존경받는 부모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던데, 실패작은 내가 아니라 아빠야.
 자식을 자랑거리 삼으려고 키우는 게 부모야?


극 중 차세리가 아버지인 차 교수에게 한 말이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극 중에서 이야기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육 방식'. 이 방식이 '배움'에 대한 내겐 반감으로 변했고, 이는 내가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는 이유 중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교육 방식을 고집한 내 아버지는 교육학 박사까지 수료한 유아교육과 교수라는 점이다.


어쨌든 나도 언젠가 아이를 갖고, 그 누구보다 소중한 그 아이를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할 날이 올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더 잘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대치동, 혹은 목동, 중계동 등에서 자식 교육을 해야 할까? 부부의 희생을 통해 자식을 높은 곳으로 보낼 때, 가족이 행복할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그 과정에서 쌓인 행복하지 못한 기억이, 그 가족의 평생의 상처로 남을 확률이 높을까. 부모 자식 간 모두의 희생 없이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줄 방법이 정녕 이리도 없는 것일까? 


"내 꿈은 다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내 인생이 빈껍데기 같아요.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어요." - 노승혜


이번 설에도 여러 가족들이 모여 '포켓몬 배틀'이 시작될 것이다. 외고, 과학고, 특목고 배틀부터 대학 배틀, 그리고 취업 배틀까지. 이 무의미한 싸움을 시작할 어른들에게 마지막 대사를 공유드린다. 자식이 잘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본인의 공이 아니고, 자식이 조금 잘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식 탓이 아니기에. 올해 명절은 우리 모두가 자신들의 아바타를 통해 서로 상처 주지 않는 날이 되길 바란다. 자식은 자신의 열등감을 채워줄 상대도 아니고, 화풀이 대상도 아니기에 말이다.


신이 우리에게 자식을 준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느껴봐라
- 황치영




덧) 2007년, 한 때 가수와 연기자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연기 선생님이셨던 오나라 선생님께서 드디어 스카이캐슬을 통해 대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12년 만에 대스타가 되신 것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오나라 선생님 보이지 않게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2019 유튜브가 그렇게 잘 나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