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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호티브 Jan 13. 2019

#1 나는 도망쳤다

현실도피랄까?

나는 도망쳤다.

우여곡절 끝에 오랜 시간 기다려온 치앙마이에서의 한 달 살기가 시작됐다. 교토 한 달 살기의 여독이 채 가시지도 않았고, 교토에서 돌아온 뒤 12월의 내 삶은 정돈되지 못하고 어지럽혀진 것들 투성이었다.


아직은 여러 군데에 올릴 교토 사진이 몇 장이나 더 남았고, 심지어 교토의 이야기를 담은 '지금은 교토 한 달 살이 중' 매거진은 교토에서부터 쌓인 글들이 여전히 4편이나 남았다. (남은 교토 이야기도 차근차근 업로드할 예정이다.)


교토로 떠나던 날, 나는 충분히 게을러지기로 했다고 말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버린 걸까? 모든 것이 밀려버린 탓에 혼란스럽고 복잡한 12월의 3주가 흘렀다. 돌이켜보면 그 3주는 교토의 여운을 추억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거의 시간에 등 떠밀리 듯 치앙마이에 오게 되었다.


맞다. 어떻게 보면 치앙마이로 향해온 나의 여행은 무책임한 현실도피와도 같았다.




필연적 목적지였다.

그러나, 지난 10월 겟어바웃 이달의 취재 미디어 팸투어로 잠깐 맛을 본 치앙마이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 어떤 도시보다 적합한 곳이 확실했다.


정신없이 어지럽고 바쁜 일상을 뒤로한 채 떠난 이들의 도피처, 휴식과 여유가 가득한 안식처. 치앙마이의 초록빛 식물들이 내뿜는 청량함과 마주한 순간. 나는 치앙마이에서 카모강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치앙마이는 도시와 사람들의 삶 속에 여유가 짙게 배어있다. '사바이 사바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치앙마이 사람들은 바쁘게만 살아온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오지만, 도착해보면 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나도 모르게 '사바이 사바이'를 되뇌게 된다는 것을.


교토가 고단한 일상을 떠나 가둬왔던 여행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는 창구였다면, 치앙마이는 그것들의 잔해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주워 담는 여행이 되길 바라고 있다.




나는 너무 지쳤다.

나는 너무 지쳤다. 이제는 심적인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난 반년간 꾸준하게 운동을 한 적이 없기에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졌음을 느꼈다. 이제 나도 나이를 고려해야 하고 체력을 과신할 수 없는 순간이 오는 건가 하는 짙은 불안감이 잠시 엄습했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교토 여행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마다 체력이 많이 부족해졌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치앙마이에서 세운 가장 큰 목표는 휴식과 체력증진이었다. 숙소에 헬스장과 수영장이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이곳에서 운동하고자 했다. 


그러한 큰 목표를 설정하자 3일째가 넘어가는 지금도 카메라를 손에 쥐는 날은 거의 없다. 대신 편하고 넓은 방에서 마음껏 쉬며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수영장에서 마음껏 수영을 한 뒤, 햇볕도 마음껏 쐬며 잃어버린 힘과 체력을 다시 기르고 있다.


또, 너무 뜨겁거나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숙소 앞 카페를 찾아 서너 시간씩 죽치고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밀렸던 글들을 써낸다. 그리고 뜨거운 햇살이 가시는 해 질 녘이 찾아오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 저녁거리를 사 와 하루를 소소하게 즐기고 마무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1월의 치앙마이는 날씨가 너무 좋다.




치앙마이란 곳은

치앙마이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나 또한 느낀 것처럼 '특별하지는 앉지만 천천히 젖어드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미뤄둔 것들을 넘치는 여유 속에서 차근차근 정리하며 나를 가다듬어 앞으로의 원동력을 얻고자 한다.


2019년의 출발점에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다가올 2019년의 많은 나날들을 위해, 이곳에서 조금은 더디지만 내 토대를 단단하게 다져갈 수 있기에.


I LOVE YOU CHIANG MAI




● 함께 한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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