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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호티브 Jan 19. 2019

#2 치앙마이에서 뭐하고 지내?

그냥 있는데요?

진짜 그냥 있어요.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보내며 가끔씩 마주치는 한국 여행객 간의 최대 관심사는 서로 어떤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묻는 것이다. 또, 치앙마이를 여행할 예정인 사람들은 부푼 기대감을 안고 쪽지나 댓글을 통해 질문하기도 한다. 물론 내 주변 친구들의 관심사 역시 치앙마이에서 어떻게 지내는 지다.


그럴 때마다 정말 "그냥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사실인걸..

치앙마이라는 도시는 사실 중심부에 있는 관광지의 경우 일주일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다. 그것들을 다 보고 나면 그야말로 할 게 없다. 그래서 더 다양한 것들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치앙마이 외곽 지역인 치앙라이, 빠이, 치앙다오 등으로 당일치기 혹은 며칠의 여행을 다녀오면서 빈 시간들을 채워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지난번 겟어바웃 취재를 통해 5일간 치앙라이와 치앙마이를 방문했었는데, 이번 취재를 다녀오면 다시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뽕 뽑을 수 있는' 일정이 될 거라는 담당자분들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빡빡한 일정으로 치앙라이와 치앙마이를 돌아보았는데, 그 와중에 발까지 골절당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치앙마이 곳곳을 돌아보는 일정을 정신없이 마무리했다.

그래서 다시 오게 된다면 나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리라 다짐했다. 전 편에서도 말했듯이 그냥 쉬고 싶었다. 체력적으로 요양도 하며.


그리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주는 넘치는 여유 속에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내게 치앙마이는 이곳저곳을 더 둘러보고 싶어 찾은 여행지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럴 거면

그럴 거면 왜 굳이 치앙마이로 떠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와 봐야 안다. 꼭 치앙마이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오면 느낄 수 있다. 


조금은 늦은 아침에 일어나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돌아와 밀린 것들을 적어낸다.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오후가 되면 수영장에서 마음껏 수영하고 점심을 먹고 카페로 향한다. 맛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치앙마이 커피와 함께 카페에서 또 마음 것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문다. 해가 저물면 길거리에는 하나둘 다양한 음식을 파는 야시장의 노점상들이 분주히 장사 준비를 한다. 카페에서 나온 나는 맥주와 함께 야시장에서 저녁 안주거리를 사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다른 점은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분명 편안한 곳이지만 온전히 나만 존재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집은 안락했지만 혼자일 수는 없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곳은 멀리 떠나왔기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들은 저만치 멀어져 있다.


가장 좋은 점이 여기 있다. 나는 이곳에서 스트레스받을 일이 전혀 없다. 가장 큰 스트레스를 굳이 꼽자면 얼굴이 점점 타고 있다는 것뿐이랄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몸부림치지 않고 '그냥' 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점점 내 마음속에 빈 공간이 생기고 있는 느낌이다. 머릿속에 꽉 찬 것들이 비워지며 이곳 사람들의 미소처럼 나 또한 행복한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드러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세,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가 나에게 준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나는 치앙마이에서 집에서도 받지 못한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점점 나는 나를 더 비워가고 있다.


일, 학업, 연애, 대인관계. 삶을 살아가며 마음속 허용범위 이상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비우고 리프레쉬하기 위해서 한 번쯤은 이런 곳에서, 한 번쯤은 이런 여행이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네, 그래서 저는 그냥 있어요. 치앙마이에서.





● 함께 한 플레이리스트


Daniel Caesar - We Find Love

Jakob Ogawa - All Your Love

Jakob Ogawa - You Might Be Sleeping (Feat. Cla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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