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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호티브 Jan 29. 2019

#12 교토를 떠나며

고마웠어. 그리고 그리울 거야.

어느새 이별

교토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일기예보는 흐렸지만 다행히도 그 사이를 뚫고 햇볕이 내리쬤다.


모든 게 마지막이다. 더 이상 이 아름다운 카모 강에 앉아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아쉽다. 포근한 내 방에 앉아 밤새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며 글을 써 내려갈 수 없다는 게. 자주 가던 카페를 갈 수 없다는 게. 가만히 아름다운 교토의 노을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게.




시간이 정말 흘렀구나.

시간이 흘렀구나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가을의 초입에 도착했던 교토는 어느새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다. 가와라마치의 거리는 온통 캐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고, 가게들의 매대에는 크리스마스 용품들이 진열되고 있다.


낮에는 더웠던 날씨도 매우 쌀쌀해져 해질 녘 즈음에는 카모 강에 앉아 있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노란 은행잎들은 나뭇가지와 작별해 길가에 소복이 내려앉아 늦가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고, 푸른 잎으로 뒤덮여 있던 곳은 어느새 진한 빛깔의 단풍이 물들어 교토의 만추를 즐기러 온 이들을 반기고 있다.


처음과 같이

나는 처음 시작과 같이 카모 강에 앉아 있다. 그러나 당시에 조급했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조금은 편안하고 차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다.


내가 선망하던 풍경이 질리게 느껴질 때까지 있고 싶었다. 그 풍경이 질려버려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그러나 그것은 내 오만이었던 걸까? 나는 아직 이 풍경이 질리지도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멈춰 서서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고 감탄하기도 한다.

교토에서의 한 달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여행보다 게으르고 공허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공허함의 크기만큼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집에서, 직장에서 했던 고민들을 여기에 와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비운만큼 다른 것들로 가득 채웠다.


처음 여행이 시작될 때, 나는 가을이 흘러가는 교토에서 몸과 마음에 힘을 푼 채 시간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교토는 지금 곤히 잠들었던 나를 깨워 "이제 내릴 시간이야."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만큼 흘러온 것인지, 나는 어디쯤인지, 몇 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충분히 쉬었기 때문에 어디든 걸어갈 자신이 생겼다.



고마워

무언가와 이별한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특히 시간과의 작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더욱 애틋하고 아련하다.


내가 돌아가는 날, 내 손과 마음에 쥐어진 것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내가 그 공간에 있었으며. 그곳에 내 흔적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추억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그것과 마주하고 싶다.


서투른 탓에 놓친 것들도 많았지만, 지나가는 내 청춘의 한 페이지에 교토에서의 나날들이 적힐 수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좋다. 그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행복이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내 청춘을 뒤적였을 때, 교토에서 보냈던 지금 이 순간을 마주한다면, 내 기분은 어떠할까?

고맙고 또 고맙다. 나는 떠나지만 너는 그대로이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여기서 보낸 내 청춘의 흔적들을 내게 다시 보여주었으면 한다. 


정말 고맙기만 한 나날들이었고, 행복하기만 한 나날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이곳에서 얻은 것들을 보여주러 누군가와 함께 멋진 사람이 되어 돌아오고 싶다.




고마워.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었어.


안녕, 교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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