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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Oct 25. 2024

이런 사람이 함께 봐주는 거라면

<신령님이 보고 계셔> 홍칼리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알게 됐다. 또 한 사람의 멋언니를 발견한 느낌도 든다. <신령님이 보고 계셔>를 쓴 저자 홍칼리가 나이 들어 되고 싶어 하는 "동네마다 한 명쯤 있는 용한 할머니"는 심지어 꿈꾸는 것도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게 아니다. 


미디어에서 봐온 무당의 모습이 내가 갖고 있는 인상의 전부고 다른 아는 바는 전혀 없었다. 표지를 넘겨서 저자소개를 읽으면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 전업 무당"이라는 소개가 눈에 들어와 단단히 박힌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너무 궁금해지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읽을수록 내가 모르던 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해 줘 흥미롭고 고마운 책이었다. 저자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보면서 이런 모습이라면 무당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다. 



무당이 된 후 가장 좋은 점은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존재를 끌어안을 수 있고 정화할 수 있는 이 직업이 좋다. 낮에는 따뜻하게 사람들을 감싸고 밤에는 고요하게 기도할 수 있는 일상이 행복하다.(3%) 


굿을 할 때 상에 올리는 돼지머리 같은 것에도 마음을 쓰는 비건 지향 무당이라니 이 부분에서도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마을 잔치나 다름없었던 옛날의 굿판에서 돼지머리를 사용하고 나눠 먹던 것과 공장식 축산이 (거의) 전부인 지금의 돼지머리가 같은 의미일 수 없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비건은 단순히 고기를 안 먹는 생활 방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 그 상태로 살아가겠다는 지향이다. 들리지 않는 고통에 귀 기울이고, 내가 등진 아픔은 없는지 살피는 태도다. 공장식 축산으로 살아서 고통받고, 인간이 만든 환경 때문에 병에 걸리고, 도축되거나 살처분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은 뉴스에서도 말해지지 않는다. 그들의 넋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무당마저 그들의 고통에 고개를 돌리면 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까? (49%) 


저자는 "운명의 여덟 글자(팔자)는 바뀌진 않지만 무한한 변주곡이 가능하다고 생각(63%)"해서 자신을 찾는 손님의 점을 볼 때 편견 없는 해석을 하려 노력한다. 너무 당연하고 너무 멋진 생각 같다.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르러서 스스로의 삶을 잘 꾸리기 위해 루틴을 만들고 수행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좋았다. 나는 그 어떤 종교에도 관심이 없지만 '수행한다', '수행자'라는 표현은 너무 좋아한다. 저자의 신 선생님이 했다는 "너는 천신의 제자야. 자부심을 가지고 잘 살아", "착하게 살면 돼. 그게 무당이야"(28%) 이런 말들은 얼마나 소중하게 기억되고 있을까. 


심리학 개념을 가지고 와서 설명하는 부분이 간혹 등장하는데 어차피 내가 모두 이해하길 원하거나 동의할 영역이 아니라서 오래 생각하지 않고 지나갔다. 이런 점은 어떤 책을 읽어도 마주칠 수 있는 부분이니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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