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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Oct 25. 2024

차갑지만 따뜻한 날들의 기록

<일기> 황정은

사사로운 이야기 같지만 절대로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책이다. 코로나19 시절을 살아가는,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치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기록이 필요하다면 이 책이 답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고 읽을수록 2021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확신하게 됐다. 특히 여성. 나. 자매들. 혐오에 노출되어 있고 사방에 걱정할 거리가 많은, 그래도 사랑하는, 자신을 믿는. 


단정한 표현들로 독후감을 잘 쓰고 싶지만 '미친 책'이라고 하거나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나' 같이 모호한 말로 거의 울 것처럼 감탄하는 것 말고는 내가 달리 쓸 수 있는 말이 없다. 작가님의 쉼표 쓰는 방식이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면서 매력적으로 읽힌다는 둥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지만 그건 다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게 됐다. 그래도 천천히 곱씹어보기로 하고. 

질문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꽂힌 부분이 있었는데,



그 질문을 생각하느라고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읽거나 쓸 수도 없어 사는 걸 그냥 중단하고 싶은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을 내게 묻지 않는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렇게 묻는 이를 만나면 너는 실은 내 원고나 내 싸움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너의 싸움에서 네가 스스로 찾지 못한 대답을 내게서 가져가려는 것뿐이다, 하고 생각하며 그를 잘 봐둔다.(142쪽)


편리하게 질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건데, 더 경계해야 한다. 으레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겐 '으레'가 아닌 거다. 너무너무 중요한 문제인 거다.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으로 준비해야 하는 거였다. 


그리고 작가님의 읽고 쓰는 마음에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기뻤다. 



동행한 사람들을 내보내고 가져간 원고를 다다미에 한장씩 내려놓으며 남은 분량을 마저 읽고 삼십분쯤 앉아 있다가 짧은 원고 작업을 했다. 먹구름이 끼어 오전부터 어두운 날이었고 비가 조금 내렸다. 그 숙소는 교토 외곽 서민 주택을 장기투숙용으로 개조한 곳이라서 부엌 살림이 딸려 있었고 대로를 벗어나 조용한 주택가에 있었다. 창 아래를 이따금 자전거가 지나가고 우산을 쓴 사람이 지나갔다. 골목 건너편, 무슨 신을 모시는지 알 수 없는 조용한 사찰에 걸린 풍령이 끊임없이 찰랑거렸다. 그 모든 것에서 조금씩 힘을 빌려 그 원고를 썼다.(145쪽)


아 또 읽어도 진짜 나 운다. 어떻게 이렇게 쓰시나요. 그런 힘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기를 바라요. 


참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가 이제는 대수롭지 않아 진 것들에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예전엔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켜고 책의 구절을 찍고 그림자 없이 흔들림 없이 잘 찍혔는지 확인하기까지가 어느 순간부터 독서에 너무 방해가 돼서 플래그 붙이기로 바꾼 후 많이 모아뒀고 애용하며 이 책에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어서 '썩지 않는구나'(88쪽)를 읽으며 뜨끔했다. 얼마쯤 후엔 나도 기어이 밑줄을 긋게 될지 모르겠다. 



백조가 있어. 백조가 커. 백조가 풀을 먹어. 그런데 왜 여태 오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새 돌아왔나 싶어 동거인의 이름을 불러 보았고 두번 다시 이렇게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데 이름을 부르는, 그런 일은. 사십분이 넘었다. 급히 우산을 챙겨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동거인을 만났다.(149쪽)


이후로도 중요하고 커다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사실은 내가 감히 이런 이야기를 알아도 되는지 두려움이 생긴다는 말을 쓰고 싶다. 그 대신 나도 책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쓴다. 언제까지고 작가님의 글과 책을 사랑한다는 말을 쓴다. '내 몸을, 내 성별을, 말하자면 내 몸이 여겨지는 방식을. 여자아이들은 그런 일을 겪는다. 일개인일 뿐인 내가 그것을 다 어떻게 아느냐고? 여자아이들은 안다. 록산 게이의 말 대로 "소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라고 작가님이 인용한 부분을 재인용할 뿐이다. 


우리 작가님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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