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지나고 보면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 당시 내 선택이나 노력이 미흡했을지라도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은 나에게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 다 알지 못한 채 주어지는 대로 살아온 것도 믿음이고 실력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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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자취 생활은 꽤나 만족스러웠지만, 내 안의 적적함이라는 마음을 마주하게 된 시간이었다. 특히 퇴근 후 저녁 시간이 그랬다. 동네 아파트 거실에 불이 켜진 걸 바라볼 때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과일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누군가 나에게 결혼 생활에 대한 로망이 뭐냐고 물어올 때는, 남편과 저녁밥 먹고 동네를 산책하는 것이라 했다. 5-6월 즈음 저녁의 선선한 날씨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며. 그러고 보니, 저녁 시간이 주는 좋은 쉼을 가족과 함께 누리는 것이 내가 가진 로망이었나 보다.
그리고 오늘 저녁, 식사 후에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놀이터를 찾았다.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남편과 수박을 먹었다. 그러다 실시간으로 노을빛을 달리 하는 하늘을 배경 삼아 남편과 공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은 그 주변을 오고 가며 놀았다. 이 순간이 연극의 한 장면이라면, 지금을 연기하는 나는 참 행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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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도에 서서 불이 켜진 아파트를 올려다보던 그때의 나는 오늘 이 순간의 내 모습을 알 수 없었다. 결혼을 결심하던 당시의 나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결혼 생활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이를 낳은 이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지 못한 채 임신과 출산을 했다. 그 밖에 내 인생의 여러 결정은 내 의지와 상관이 없었거나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것도 있다.
지금의 삶도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를 때가 많고,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완전할 수 없다는 한계를 마주한다. 하지만 지나온 삶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모든 선택이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아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주어진 길을 지나가는 것도. 완벽한 세팅이 아닌 것 같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