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지내는 법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온 남편이 식사를 마치고 다시 교회에 갈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아빠 또 어디 가냐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나마저 아쉬운 내색을 할 수는 없기에 아이들을 적당히 타일렀다. 그래도 설거지하는 나의 두 어깨는 힘이 없어 보였는지, 남편이 "힘들어 보이네."라고 말을 건넨다.
이럴 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속내를 들켰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을 때 말이다. 참 어렵다. 잘못한 것 없는 남편이 나와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다. 나는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생존모드이다. 쉼 없는 나 홀로 육아의 고단함, 외로움, 적적함, 허전함, 그리고 아이들의 텅 빈 주말을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혹은 책임감에 마음이 무겁다. 아이들이 아빠의 허전함을 느끼기보다 잘 쉬고 잘 놀았다는 기억을 갖게 해 주고자 머리를 굴리고, 인격과 체력을 동원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먹놀잠'을 충족시켜 주면 되었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욕구가 다양해지니 혼자만으로는 버겁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이 빠질 때는 외롭다고 느낄 때인 것 같다. 그렇다. 교회에 속해 있지만 나에게는 공동체가 없다. 나에게는 매주 교회에 같이 다녀오는 두 아이가 유일한 공동체이다. 아기띠와 유모차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허전함을 달랜다.
아이들의 생각이 자라면서 간혹 당혹스러운 질문을 한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아빠가 새벽 기도에 간 것을 눈치채고 "아빠는 어딨어요?"라며 아빠를 더 열심히 찾는가 하면, "아빠는 왜 맨날 교회에 가요?"라고 탓하는 말도 한다. "주말에는 아빠가 없고, 월요일부터 저는 또 유치원에 가야 하잖아요."라며 정작 자신이 집에 있는 주말에는 아빠가 없고, 아빠가 쉬는 월요일에는 자신의 일상이 시작된다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럴 때 아이들에게 해 줄 적절한 말을 찾는 것이 늘 어렵다. 아빠를 교회에 빼앗긴 듯한 인상을 가질까 봐 아이들에게 열심히 피력한다. "그래도 아빠랑 같이 월요일에 등원할 때도 있잖아.", "아빠가 저녁밥 같이 먹으러 매일 오시잖아." 아이들에게 늘 최선을 다해온 아빠의 모습을 부지런히 알려준다.
토요일인 오늘, 여느 때처럼 두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첫째의 유치원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그분도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출장 가서 같이 놀이터에 갈 친구를 찾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해서 두 엄마와 네 명의 아이가 함께 놀았다. 잠시 후, 엄마 한 명과 아이 한 명이 합세해 엄마 셋, 아이 다섯 명이 되었다. 덕분에 여느 때보다 활기찬 토요일 오후를 보냈다.
오늘 함께 보낸 시간은 지난 6년 여 동안 보낸 외로운 주말 중에서 손꼽아 기억에 남을 만했다. 대단한 일정을 함께한 것도 아니지만, 북적함 속에 신나서 바쁜 아이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순간이 행복했다. 하나님께서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나와 아이들을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다. 교회 안에서의 외로움만 크게 바라보던 나의 눈과 마음을 더 넓혀주시고, 소중한 이웃에 대한 고마움이 커졌다. 오늘 하루를 또 지나가게 해 주심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