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느님 Sep 24. 2022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

길버트 그레이프와 코다(C.O.D.A.)

"막내인지 몰랐어요. 그렇게 안 보여요."

내가 6남매의 막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막내처럼 안 보인다니 무슨 뜻인가? 나이가 몇이든 철이 없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 막내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내 나이에 막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막내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기억하는 한 나는 언제나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아이, 짧게 말해 애늙은이였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를 보면 나보다 더한 애늙은이를 만날 수 있다. 때는 1978년. 천명 남짓한 인구가 살고 있는 아이오와 주의 작은 마을 엔도라(Endora). 이름조차 세상의 끝을 연상시키는 이곳에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다. 길버트의 아버지는 17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칩거에 들어가 먹는 일에만 열중한 나머지 250킬로에 육박하는 초고도 비만 상태가 되었다. 34살이 된 누나와 아직 사춘기가 한창인 여동생, 그리고 이제 곧 18살이 되는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레이프 가족의 구성원이다.


길버트는 작은 식료품점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청년 가장이다. 자기 인생을 찾아 엔도라를 떠난 형처럼 길버트도 세상에 나가야 마땅하겠으나,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 어니에게서 잠시도 눈을  수가 없다. 지하실에서 목을  아버지를  충격 때문인지 어니는 틈만 나면 높은 곳에 올라간다. 나무에도 올라가지만, 마을의 식수를 저장하는 물탱크에도 기어 올라간다. 물탱크는 높기도 무척 높고 붙잡을 만한 것이 전혀 없어서 여차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구조물이다. 그런데 물탱크에 올라간 어니를 내려오도록 만들  있는 사람은 오직  사람, 길버트뿐이다.


이런 길버트에게 가장 부러운 존재는 엔도라를 지나가는 캠핑족들이다. 길버트와 같은 또래인 베키는 캠핑카가 고장 나는 바람에 엔도라에서 며칠 머무르게 되고, 마침 물탱크에 올라간 어니를 구슬려 내려오게 만드는 길버트의 침착함과 인내심에 호감을 느낀다. 베키는 길버트의 책임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가족에게 희생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바에 관심을 갖도록 격려해 준다. 시간조차 멈춰 버린 듯 정체된 마을 엔도라에 가족과 함께 갇혀버린 길버트는 과연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여기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에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 영화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는 농인 부모 사이에 태어았지만 청각에 이상이 없는 아이 루비가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CODA들은 어려서부터 가족의 귀와 입이라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조금 크면 가족을 대표하여 세상과 맞서는 역할도 해야 한다. 중학교 시절 내 친구였던 선경이가 그런 아이였다.


루비는 부모와 오빠까지 모두 농인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이다. 아버지와 오빠는 어부인데, 동이 트기도 전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잡은 물고기를 새벽 시장에 넘긴다. 고등학생인 루비도 이 배에 함께 올라 물고기를 파는 일까지 마친 후에야 학교에 간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이 일에 루비의 귀와 입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면 못된 아이들이 생선 냄새를 지적하고 부모의 장애를 조롱하지만, 하루 이틀 일이 아닌지라 이제는 무덤덤하게 넘길 수도 있다.


루비는 눈여겨보던 남학생 마일즈를 따라 얼떨결에 합창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루비는 놀랍게도 자신이 노래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부모의 자식이 노래라니! 선생님은 따로 시간을 내어 루비를 지도해 줄 뿐 아니라 자신의 모교인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루비는 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부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음악을 즐기기 어려운 부모님의 신체적 한계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줄리아드로 떠나버리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루비의 부모님은 대놓고 너 없으면 우리는 못 산다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길버트와 루비같은 캐릭터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무척 측은하기도 하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충분히 보호받았으면 좋겠다. 철없고 해맑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나는 미스 리틀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붕괴 직전의 한 가족이 7살짜리 여자아이의 미인대회 출전이라는 말도 안 되는 꿈을 응원하기 위해 대동단결하는 이야기이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독보적인 캐릭터인 데다가 스토리 전개도 기상천외한데, 그 와중에 대사는 어찌나 찰떡같은지 보는 내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각자의 절망 속에서도 어린아이의 꿈만은 지켜주려는 가족들의 분투가 눈물겹다.


길버트와 루비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가족을 떠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으로 두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의 재미를 스포일시키지 않기 위해 줄거리는 더 이상 노출하지 않는다. 나처럼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들에게 끌리는 사람이라면, 이번 주말 이 두 영화를 추천한다.





https://www.netflix.com/kr/title/60011552



https://www.netflix.com/kr/title/81423558



*상단 이미지 출처: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462#photoId=126116


매거진의 이전글 윤여정 배우는 왜 주연이 아닌 조연상을 받았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