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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Sep 28. 2022

당신의 모성은 안녕하십니까?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는지 세다가 포기했다. 위키피디아에서 봉준호 감독의 2009년 영화 마더를 검색하면 내 컴퓨터 화면 기준으로 세 번 스크롤을 해야 그 시상 내역을 다 볼 수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영국, 캐나다, 두바이, 독일, 브라질.... 전세계 평단의 찬사를 받은 영화라는 말이 이보다 더 적합한 영화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작의 국내 흥행은 생각보다 저조했다.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도 적지 않은 이 나라에서 300만 남짓한 관객이 들었다. 아무래도 너무 민감한 주제를 다룬 모양이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기보다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얼떨떨했다. 프란츠 카프카가 말하기를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있는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한다"고 했는데, 이 영화는 묵직하고도 예리한 도끼날이 되어 내 이마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시골 읍내 약재상에서 일을 하는 마더(김혜자)는 아들 도준(원빈)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나이는 스물여덟에 허우대는 멀쩡하게 잘 생겼지만 지적장애인 도준은 언제 어떤 사고에 휘말릴지 모른다. 그래서 마더는 작두질을 하면서도 자신의 손가락이 아닌 아들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들에게는 누가 바보라고 무시하면 반드시 되갚아 주라고 신신당부해 두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여학생 한 명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도준은 살인자로 지목된다. 온 동네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건물 옥상에 전시된 시신 옆에는 도준의 이름이 적힌 골프공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사건 당일 저녁 도준은 늦도록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골프공을 보여주었다는 증언이 있다. 게다가 도준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알리바이를 세워줄 증인도 없다. 도준은 다투어볼 여지도 없이 구속되고, 그렇게 아들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투쟁이 시작된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마더(김혜자)의 관점에서 이 사태를 바라본다. 가난한 홀어미의 아들이자 지적장애인 도준이 가장 만만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쓴 것뿐, 그 "사슴 같은 눈"을 가진 도준이 사람을 죽였을 리 없다. 게다가 아무리 바보라도 사람을 죽이고 그 옆에 자기 이름이 적힌 골프공을 두고 갈 리가 없지 않은가? 관객은 해맑은 얼굴로 현장 검증에 임하는 도준을 보고 진범이 따로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도준 엄마는 죽은 여학생의 장례식에 찾아가 내 아들은 범인이 아니라고 소란을 피운다. 빚을 내서까지 그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담당 경찰에게 장뇌삼을 건네며 아들의 무죄를 주장해 본다.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자 도준 엄마는 스스로 범인을 찾기 위한 수사에 들어간다.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수완만큼은 부족하지 않은 그녀였다. 주거 침입, 폭행 사주, 거짓말 할 것 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여기까지 영화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K-어머니의 지극한 모성애라는 익숙한 테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식이 억울한 살인 누명을 썼다면 어느 엄마인들 저러지 않겠나. 방법은 잘못되었을 망정 그 모정을 응원하며 마음을 졸이게 된다. 하지만 마침내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대면한 도준 엄마는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간다.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는 도준 엄마 같지 않았다.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 내내 담임 면담 한번 오지 않으셨고, 아이들 사이에서나 선생님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따지러 가 주신 적은 더더욱 없었다. 대학생이 된 내가 혼자서 부동산을 전전하며 방을 구해 독립을 했을 때에도, 막내가 어떤 곳에 사는지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궁금해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찾아오시는 그런 일은 없었다.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예비 시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내가 아들을 장가보내면서 동시에 딸도 시집보내는 것 같다"고 하셨다. 외동아들을 금지옥엽 키워오신 시어머니 입장에서 내 어머니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나는 내 아이가 "엄마 없는 아이"처럼 보이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언제나 거기 있어주는 엄마이고자 했다. 100% 모유 수유를 했고, 아이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는 그런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어린이집은 내가 다니는 학교 앞으로 보냈고,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교문 앞으로 이사를 갔다. 어려운 유학생 형편에도 옷은 언제나 깨끗하고 예쁜 것만 입혔다. 아이의 재능을 너무 늦게 발견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적당한 나이에 발레, 바이올린, 테니스, 농구, 미술 등 예체능도 골고루 체험하게 해 주었다. 나는 괜찮은 엄마인가 늘 스스로 평가하며 살았고, 나에게 주어진 어떤 역할보다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넌 엄마 없어?"

도준이 대신 감옥에 갇힌 종팔이가 진범이 아닌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도준 엄마는 종팔이가 무죄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한 마디에는 "나는 도준이 엄마라서 어쩔 수가 없어. 엄마란 그런 존재야. 나를 원망하지 말고, 너를 구하러 오지 않는 네 엄마를 원망해."라는 의미가 응축되어 있다. 종팔이에게 구하러 올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도준 엄마에게는 안타까우면서도 다행한 일이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없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도록 애를 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엄마가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의식 중에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모성이란 얼마나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인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제목은 마더이다. 엄마도 어머니도 어미도 아닌 마더. 엄마라고 하면 너무 따뜻하고, 어머니라고 하면 너무 위대하며, 어미라고 하면 너무 본능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한국 관객들에게는 사전적이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영어 단어를 제목으로 썼다고 한다.  중에서 도준 엄마의 역할에게 주어진 이름 역시 마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주인공이 마더: 김혜자, 도준: 원빈으로 소개된다. 엄마, 어머니, 어미의 기괴한 혼합체, 마더.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보편적인 한국의 마더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 엄마'로 불리는 김혜자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는 도준 엄마가 혼자 갈대밭에서 춤을 추고 있지만, 엔딩 장면에서는 달리는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엄마들 사이로 도준 엄마가 스며들어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도준 엄마는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한국 어머니 중 하나일 뿐이라는 시각적 비유라고 한다. 어머니들의 그 관광버스 춤은 불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 속에 고통받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나의 삶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내가 그토록 선망했던 엄마의 모습이, 내가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서 실천하고자 했던 모성이 사실은 고귀할 것도 없고 아름다울 것도 없는, 그저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에 충실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그런 것이었다니... 불현듯 맘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학교 폭력을 일으킨 아이들의 부모는 백이면 백 제 자식을 감싸고 피해학생을 비난하더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자식을 위해 입시 비리, 병역 비리, 불법 취업 청탁, 편법 재산 증여 등을 저지른 공직후보자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의 끝에 이 모든 어머니들이 지옥불에서 춤을 추며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나는 2009년에 봉준호 감독이 던진 도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공식 포스터(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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