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카트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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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 번째 카트로 찾아왔습니다!
박스오피스 조작 문제로 흉흉한 와중에, <범죄 도시 3>의 흥행을 바라보면서 여러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이 영화가 15일째 1위(6/15 기준), 하루 만에 손익분기점을 통과하고 곧 천만을 할 한국영화라고? 그러기에는 좀…이라는 의문이 들지만 생각해 보면 천만 영화 중에 “아 이영화는 천만을 할만했지”라고 생각할 법한 영화들이 몇 개나 있을까요?
<범죄 도시 3>의 흥행의 이유로는 일단 재미가 보장된 시리즈물이라는 것에 강점이 있겠습니다만, 애초에 이 시리즈에게 사람들이 거는 기대는 ‘마동석의 통쾌한 액션’ 하나뿐이기 때문일 수도 있죠. 영화 티겟 15,000원 시대에 관객은 굉장히 까다로운 것 같으면서, 의외로 단순하기도 합니다. 기대하는 바 1개만 잘 충족시켜 줘도 (모든 것을 만족시키지 않더라도) “재밌다” 로 퉁쳐버리는 것이죠.
특히 장르 영화의 경우에는 “재밌다”의 기준이 더 명확합니다.
오늘은 최근 박스오피스를 중심으로, 극장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극장에서 흥행하는 영화란 무엇일까요? 당연히 손익분기점을 넘거나 바이럴되는 영화를 뜻합니다.
최근 흥행 영화의 특징은 뚜렷합니다.
영화적인 체험이 훌륭하거나
기존 IP 바탕의 강력한 팬덤이 존재하거나(리메이크, 시퀄, 프리퀄, 프랜차이즈 등)
만족도가 뛰어나거나(=재밌다거나) - 장기 흥행을 위한 디폴트 값이며, 1-2번이 없는 영화가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
위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장기흥행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는 것이고, 이 중에 일부만 충족되어도 손익분기점을 어렵지 않게 넘기고는 합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장기흥행했던 <아바타 2>와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위 3가지 조건이 충족된 영화라고 볼 수 있죠.
특정 세대의 선호로 시작되었으나 모두 세대 구분 없이 사랑을 받은 영화들입니다. (30대 중심/20~40대가 주축) 결국 타깃확장, 즉 가족 관객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냐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아래는 CGV 관객 데이터고요. (순서대로)
아바타 : 30대>20대>40대
더 퍼스트 슬램덩크 : 30대>20대>40대 순 (30대가 이끌고, 20대가 추후 유입)
스즈메의 문단속 : 20대> 40대 > 30대> 10대 순 (10대 지표 유독 높음)
잠깐. ‘영화관=극장’이라는 플랫폼을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극장 입장에서 본다면 관객이 많이 찾는 영화들을 좋은 시간대에 좋은 조건의 상영관에 걸어주는 편이 좋겠죠. 이왕이면 더 많은 관객들이 보는 게 좋을 테니까요. 그래서 영화와 극장은 서로 협업관계이면서도, 상황에 따라 상하 관계가 바뀌는 독특한 관계이기도 합니다.
반응이 좋다(CGV 에그지수 높음) → 극장에서 많이 본다 → 좌석판매율이 높아진다 → 좌석점유율이 유지된다 → 극장에서 많이 본다
OTT 역시 잘되는 콘텐츠를 메인 배너에 배치하거나 추천하는 식으로 강조하기도 하지만, 어느 시간에 어디서든 볼 수 있는 OTT 콘텐츠와 극장영화의 차이점은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개봉주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하죠. 그래서, 대중 영화마케팅의 경우는 개봉 전 1-2달의 기간 동안에 전인구를 대상으로 비용을 한 번에 몰아서 집행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한국 상업영화의 경우는 20~40억 사이)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지금과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 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OTT도 초반엔 마케팅에 큰 비용을 들였지만, 사실 일정 구독자를 확보한 상황에서 플랫폼 자체가 광고 채널이 되므로 점점 마케팅 비용의 절감이 가능하죠.
될영될 안될영안될
코로나 이후 관객들은 입증된, 내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를 선택합니다. 좀 더 신중해진 것이죠. 연일 티켓값이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이미 세상에 너무 재밌는 것들이 많으니까 어쩌면 가성비를 따지는 ‘합리적인 소비’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란 책에 의하면 “시간 낭비에 대한 두려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이 큰 요즘 세대들은 “보고 싶은 영화 내용이나 콘서트 곡 리스트,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 등 무엇이든 사전에 알려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하네요.
잘된 영화들은 실관람객 평점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CGV 에그지수’가 90점 이상입니다.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는 게 익숙해진 이후로, 영화는 무료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는데요. 극장에서 볼 영화나 아닌 영화를 정확하게 나눠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흥행한 소수의 영화들은 더 오래도록 극장에 열립니다. 될영될 안될영안될… 자조적으로 읊조릴만합니다. 이건 산업적으로 건강한 상황은 아닙니다. 소수의 천만 영화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다수의 백만 내외의 영화들이 나오는 구조에서 누가 적극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투자할 수 있을까요.
근데 관객 입장에서는 신경 쓸 일은 아니죠… 저 같은 경우도,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극장 가는 건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입니다. 일단 이건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는 게 전제여야 하고, 다른 극장 영화를 대체할 재밌는 것들보다 더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해야만 움직이니까요.
코로나 이전 : 이 영화 재밌습니다
코로나 이후 : 이 영화 재밌습니다 + 극장에서 봐야합니다 -> 챌린지 추가
어디서든 시간을 조금만 투여해 되는 수많은 재밌는 것 사이에서 극장에 오는 귀찮음을 극복하고, 개인당 1.5만 원이란 돈을 내어서, 이동시간까지 합쳐 평균 4시간 이상을 쓰고, 거기에 재생 바를 넘기고 싶은 충동을 참게 만드는... 이런 커다란 장벽을 극복하게 만드는 일은 정말 정말 어렵기 때문에…
‘극장 관람 영화’라는 건 단순히 재밌는 게 아니라, ‘극장에서 지금 당장 봐야 더 재밌는’ 영화임을 설득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시의성과 효용성 둘다 만족시켜야 한달까요.
코로나 이후의 관객수의 영화산업 매출을 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조 5093억 원으로 매년 꾸준히 늘다가 2020년 1조 537억 원으로 반토막 이상 차이가 납니다. 2022년에도 1조 7064억 원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60%가량 회복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아직 갈 길이 멀었죠.
글로벌 박스오피스의 경우 꽤 회복했습니다. 2023년에 320억 달러의 글로벌 박스 오피스는 2022년에 비해 약 23% 개선되었고, 팬데믹 이전 3년(2017-2019)의 평균보다 20% 뒤처져 있지만 꽤 많이 진전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90%, 중국은 팬데믹 이전과 거의 유사하게 회복되었고요.
해외 극장은 살아나고 있는데, 한국만 문제냐? 고 한다면 그렇다고 하기엔 좀 찝찝한 구석이 있는데. 한국영화 파이가 예전만큼 늘지 않는 게 그 원인으로 보여요. 올해 국내 영화 시장을 보면 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큽니다. 곧 천만이 예정된 <범죄 도시 3> 이전에 BEP를 넘은 영화가 작년 11월 개봉한 <올빼미> 이후로 없었다는 것이 그 방증이죠.
한국은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방화(한국영화) 점유율이 높은 나라였습니다. 그만큼 자국 콘텐츠의 힘이 세고, 관객들도 선호했죠. 지금 얘기하는 K-콘텐츠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필두로 한 시리즈물이나 K-POP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2억 명 전성시대(!)의 영광을 누리던 한국영화도 이전엔 빠지지 않고 언급되던 K-콘텐츠였습니다.
지금 개봉하는 한국 영화들은 대부분 코로나 이전에 투자 계약된 후 코로나가 극심할 때 촬영되어 2-3년 정도는 묵힌 경우가 많습니다. 개봉하지 못한 영화가 투자배급사마다 7-8편가량, 전체적으로는 100편가량이 쌓여있다는 이야기가 있고요. 앞서 언급한 흥행조건(영화적인 체험, IP, 만족도)들을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않아도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배우 패키징으로 개봉시키면 관대한 관객들 덕분에 어느 정도 손익분기점이 넘었던 좋은 시절에 제작된 영화들이 많지요.
그간 영화에게 극장은 손익분기점을 낼 수 있는 중요한 윈도우(window) 였는데요. 코로나를 거치면서 온라인(OTT, IPTV)이라는 대안이 등장했었습니다만, 사실 시금도 평균 100억 가량의 총제작비를 감당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플랫폼은 손에 꼽을 지경입니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극장은 여전히 영화에게 가장 중요한 창구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변했고(눈이 높아졌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고) 한국 영화는 그 변화를 대응한 작품들을 내놓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영화를 제작하는데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개봉까지 정말 빨라야 2-3년 걸리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려면 결국 수익이 나야 하는데요. 결국 모든 사업이 그렇듯 수익이 나면 그 수익을 재투자하여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몇 년 전에야 OTT 나 통신사 등 업계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해 자금이 유입되었지만, 지금은 그 OTT 마저도 구독자수 감소 등으로 비용을 축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자금이 수혈되길 바라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지요. 티빙과 웨이브 등 국내 OTT는 지속되는 적자에 콘텐츠 투자의 효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얘기가 들려오고요.
여러가지로 챌린지가 큰 상황에서 영화는 어떻게 될까요? 한국 영화는요?
요즘 주변에선 티켓 가격이 비싸다고 아우성입니다. 주말에 영화 1편을 보려면 1.5만 원이 드는데요. 만약 온 가족이 영화관에 가서 매점이라도 이용할려치면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지금의 10대~20대 초반 세대들은 영화관이 주는 즐거움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세대일지도 모르겠어요. 학생할인을 받아 7천 원가량으로 영화를 보던, 데이트를 영화관에서 하는 게 당연하던 지금의 3040대와는 결이 다르죠. 그런 그들에게 1.5만 원이라는 돈을 내고 영화관에 오는 것보다는 비슷한 가격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극장 = 즐거운 곳 =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는 곳’이라는 인식의 전제조건 필요합니다.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소리죠. 그러면, 관람료 인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 가격이 줄어든다면 관객이 돌아올까요? 네, 조사에 의하면 관객은 돌아올 것입니다.
결국 가격이라는 것은 수요와 공급에 맞춰 정해지는 것이잖아요. 최근 아이돌 콘서트 비용이 20만 원에 육박하는 등 이슈가 되었지만, 구하지 못해서 문제죠. 결국 수요가 있기 때문에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테슬라의 경우는 매출이 감소하자 가격인하를 단행하고 있는데요. 이런 식의 가격 경쟁력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아니면, 극장 구독서비스도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팬데믹 이전 한 달에 10달러만 내면 한 달에 극장에서 무제한으로 영화를 보게 해 주겠다는 구독제를 시도한 ‘무비패스’라는 서비스를 제대로 적용해 보는 것이죠. 일단 극장으로 오는 진입장벽을 낮춰보자는 겁니다. 물론, 이를 위해선 부금이 줄어드는 만큼 극장뿐 아니라 투자배급사들과도 논의가 필요할 거예요.
그러나 그것도 임시방편이고, 결국 그것도 재밌는 영화가 있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돌고 돌아 결국 답은 콘텐츠입니다…
누군가는 영화가 죽었다고 했고, 몇 년 후면 예전처럼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뭐가됐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은 맞는듯해요.
앞으로 극장 영화에게는 몇 가지의 길이 있을듯한데요. 단순하게 뽑아보자면 아래 세 가지입니다.
클래식 : 결국 보는 사람만 보는 소수의 취미로 전락. '인내심' 테스트를 통과한 자들만 찾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전통 있는 예술들-클래식, 발레, 연극 등-처럼 변한다.
안티프래질 : 위기 상황에 더 강해진다. 자정작용을 통해, 질 좋은 것들만 살아남는다. 희생이 수반되겠지만 결국엔 영화라는 콘텐츠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존버 : 시간이 흐르면 관객은 돌아올 것이다.
여기서 ‘존버’는 그냥 농담으로 봐주시고요.
이미 세상은 재밌는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안이한 생각으로는 파국과 종말 밖에 답이 없다는…
그럼 1번 아니면 2번인데. 저는 2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살아남을 영화의 형태가 그간 우리가 영화 역사의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향유해 온 것과 다를지라도요. 기술력(아이맥스, 4DX 등 특수관 혹은 게임을 접목한 신기술 같은 것)으로 몰입도를 높인다거나 영화본연의 마법 같은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을 계속 불러 모으면서요. 완벽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을 겁니다. 액션이면 액션, 웃음이면 웃음 관객이 원하는 것을 단 한 개만이라도 제대로 만족시켜 주는 영화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합니다.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은 ‘안티프래질(Antifragile)’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네, 르세라핌의 그 안티티티프래자일 맞습니다.)
세상에는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가변성, 무작위성, 무질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번창하고 성장하며, 모험과 리스크,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충격을 가하면 부서진다는 의미인 프래질에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단어는 없다. 이제부터 이런 단어를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고 부르자.
관객 2억 명 시대가 다시 올까요?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극장 영화는 더 이상 성장 산업이 아니니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투자배급사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전부터 무척 신중하게요. 많은 것을 시도해야 할 시기입니다. 어둑한 터널을 지나서 한국 영화계도 절치부심, 안티프래질 하여 더 다양하고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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