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책 작은도서관 '청소년책 함께읽기' 모임에서 읽었는데, 2주가 지났건만 아직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한번 더 읽었다.
150쪽의 얇은 책인데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였다. 작가님의 글은 오래 생각하게 된다. 보이는 것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그려낸다.
이 얇은 책을 반납하지 못하는 이유는 작가님 쓰신대로 '소설 속 인물만을 생각하는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나이상 멀리 왔고 아이들은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나는 그들의 세계를 잘 모른다. 하지만 알고 싶다. 아들 중학교로 시험감독을 나가면 그제야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우두커니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현실 세계 아이들을 조금 느껴본다.
돈 버는 일이 힘들다고 말할 수는 있어.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
먹고사는 일이 원래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어. _p.47
도우와 민주가 부모님과 여름휴가를 떠나느라 성당에 나오지 않은 일요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의 노력이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서로 다른 일요일을 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_p. 49
이 책에는 세 개의 단편이 들어 있다. 특성화고, 특목고, 일반계고를 다니는 세 명의 청소년 이야기다.
고등학교 전까지는 순수하게 어울리던 아이들도 사회 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각자가 다른 판에 서 있고 각자의 진로에 들어서게 되며 관계가 서먹해진다. 자기들도 잘 살아보려고 아둥바둥하는 것인데 정작 그 시기를 지나온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편협한 눈으로 본다.
세 편의 주인공들은 뚜렷한 인생 목표가 있었다. 일찍부터 경제적 자립 이루기, 돈과 명예 외에 다른 가치를 좇아 살기, 인생의 시간을 자신이 정하기. 이것들은 다 바람직한 것들이건만 그들이 속한 배경에서는 허들이 많다.
어른들도 기피하는 망가진 기계로 일을 하도록 내버려진 어리고 힘없는 청소년.
오직 국영수에 목숨걸어야 살아남는 곳. 1등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버린 속에서 다른 가치 예를 들면 정의, 희생, 존엄을 얘기하는 게 배부른 소리고 차라리 그것들을 경멸하는 게 낫다는 아이의 말.
의무 교육 12년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낙오자로 지레 짐작하는 시선.
이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시선들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나도 그런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참 슬프고 안타까움만 남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찾아봐야겠지.
실습 학생에게는 신뢰할 만한 실습기관 상급 직원이 있기를 바란다. 그들의 고됨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어른이 있어서 실습학생이 지칠 때 힘이 되면 좋겠다.
특목고 학생은 고민한다. 어떤 삶의 가치를 따라야 하는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하는 공부와 이상을 좇는 공부, 어떻게 더 만족을 주는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학생에게는 좋은 엄마가 있었다. 아이가 자퇴 후 계획서를 보여주자 그 모든 걸 듣고 엄마의 마음에 안정을 줄 조건을 제시한다. 동생과 하루 1시간 같이 시간 보내기, 주말 제외하고는 집에만 있으면 안 됨, 주기적으로 전문가에게 상담 받기. 이렇게 본인 마음을 챙기고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후회할 수도 있는 거고 후회는 잘못이 아니야. 후회될 때는 꼭 나한테 말해야 된다. 같이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알았지? _p. 127-128
세 이야기 뒤에 작가님의 에세이 '사사롭고 지극한 안부를 전해요' 글도 좋았다. 작가님이 학창 시절에 느꼈던 결핍들이 작가님의 글을 이끌어가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님은 소설 속 인물들 옆에 계속 머물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다. 작가님 쓰신대로 청소년기가 불완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그 때의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의 변화에 대한 포기가 빨라졌거나 다른 관심사로 옮겨가 버린 걸수도.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이제는 청소년기를 지나왔기에 그 시기를 지나는 친구들에게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말해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