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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Feb 27. 2024

고현정은 바로 지금

대체불가능한 자신감과 간절함으로, 배우 고현정은 지금 기다리고 있다.

485만. 이는 고현정이라는 이름 아래 결집한 숫자다. 보다 정확하게는 가수 정재형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에 출연한 고현정을 보고자 3주 만에 모인 조회수다. 11년 전 공중파 방송국 토크쇼 출연 이후 고현정이 말하는 고현정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 그만한 화제성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해도, 소위 말하는 ‘역대급’ 반응이다. 고현정이 여전히 만인의 눈길을 끄는 현재진행형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저에 대한 반응을 경험한 건 처음이었어요. 너무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게 고마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웃음) 좀 복잡한 심정이에요. 한때 연기를 그만 두기로 마음먹은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정말 그만큼 원해서 다시 했던 건지, 아니면 밥만 먹고살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연기라고 그냥 했던 건 아닌지, 스스로 많이 반성했어요. 그래서 제가 출연한 작품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보게 됐죠.”

1989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호명된 이후,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부터 <마스크걸>까지, 1990년부터 2023년까지, 지상파 방송국의 시대에서 OTT 서비스 플랫폼의 시대까지, 고현정이라는 이름 아래 축적된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쫓다 보면 지난 30여 년간 변화한 미디어 환경의 흐름이 읽힌다. 긴 시간 동안 톱배우라는 지위를 지켜온 이름이기에 가능한 역사다. 치열한 경쟁과 손쉬운 도태를 이기고 견뎌야 하는 배우라는 세계를 염두에 둔다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사실 고현정은 배우라는 직업보다 방송국이라는 직장에 관심이 많은 생활인이었다. 그런 고현정의 시선을 돌려놓은 건 김종학 PD의 전설적인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였다. ‘색다른 디렉션으로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연출’을 처음 경험했고, 배우라는 직업에 큰 매력을 느꼈다. 김종학 PD 역시 고현정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높게 샀다. 그리고 당대의 드라마 이상의 드라마가 된 <모래시계>의 주연으로 고현정을 발탁한 건 가능성을 넘어선 확신이었다. 그리고 만인이 잘 아는 것처럼 <모래시계>의 역사적인 성공 이후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와 10여 년의 공백 그리고 전례 없이 성공적인 복귀가 이어졌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이었다. 


이른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 여배우는 스캔들이라는 오명에 시달리기 십상이지만 고현정은 되레 그런 사실을 가리지 않고 스스로 가리키며 자기 인생을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시선을 불식하고 일축했다. 보다 중요한 건 태도의 미덕을 넘어 실력의 증명으로 다시 한 번 스스로를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2005년 <봄날>로 복귀한 배우 고현정은 자신의 스타성과 연기력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그중에서도 <선덕여왕>의 미실은 고현정이 대체불가능한 배우라는 사실을 각인하는 원더골이었다. 대단한 한 방이었다. “솔직히 연기를 허투루 준비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어요. 다만 어딘가 갇혀 있다가 나온 기분이라 그 당시 대중이 생각하고 공감하는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까 고민했죠. 결국 스스로를 믿는 수밖에 없었죠.” 

고현정의 첫 OTT 오리지널 시리즈 출연작이자 최근작인 <마스크걸>은 배우 고현정이 가진 자신감과 절박함의 믿음을 널리 알리는 작품처럼 보인다. <마스크걸>의 7화 분량 중 고현정은 결말부를 책임지는 2화에만 출연한다. 대표적인 원톱 여배우로 호명되는 이름이었기에 이런 선택만으로도 작품의 화제성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는 바가 대단했다. “꼭 원톱 같은 거 아니어도 돼요. 이제 잘하는 배우들과 호흡 맞춰가며 연기하고 싶어요. 출연료를 깎아도 되니까 정말 좋은 배우와 함께해보고 싶어요. 해보고 싶은 작품을 아직 너무 못했어요. 정말 너무 목이 말라요.” 


말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에게는 견뎌야 할 숙명이 있다. 고현정이라는 이름과 함께 나열된 수많은 편견들과 소문들. 하지만 고현정은 그 모든 편견이나 소문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저는 요즘 고정관념을 없애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라는 사람을 만나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제가 감독이라면 저 같은 배우가 너무 아까워서 갖다 쓸 거 같은데!” 동의한다. 세상에 좋은 배우는 많지만 대체불가능한 배우는 그 자체로 고유한 가능성이다. 무궁무진한 세계다. 이야기를 존재하는 현실로 만드는 힘이다. 고현정에게는 분명 그런 저력이 있다. 그걸 보고 싶다. 고현정도 지금 사람을 찾고 있다. 대체불가능한 자신의 자신감과 간절함을 실현해줄 작가를, 감독을 찾고 있다. 그리고 485만이라는 숫자는 신기루가 아니다. 진짜 바람이다. 언제나 반짝이는 것은 눈길을 끄는 법이니까. 거기 고현정이 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어쩌면 더욱 형형하게. 고현정은 여전히 바로 지금이다. 


(<VOGUE KOREA> 3월호에 쓴 커버스토리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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