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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29. 2024

시네밋터블을 하면서 생각한 것

'언어와 미각으로 공감하는 영화로운 만남' 시네밋터블에 관하여.

‘같이 뭔가 해볼까?’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아마 2020년 1월경이었을 것이다. ‘언어와 미각으로 공감하는 영화로운 만남’이라 정의한 소셜 다이닝 서비스 ‘시네밋터블(@cinemeetable)’을 시작하게 된 전말이다.


시네밋터블은 'cine(영화의)’와 ‘meet(만나다)’ 그리고 ‘table(식탁)’ 이렇게 세 개의 영단어를 조합한 합성어다. 영화와 미식의 개념을 연결한 언어를 떠올리다가 단순히 취향으로 규정되는 단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 연결성이 지향하는 바를 생각하다가 이것이 끝내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사람이 모여야 가능한 자리였다. 그래서 ‘만나다(meet)’라는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영화’와 ‘식탁’을 잇는 것도 그 만남이라는 의미에서 두 단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듯 이름을 지었다. 아내가 나를 인정하는 일은 정말 드물지만 시네밋터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그렇다.

시네밋터블은 2부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거실에서 진행하는 1부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영화와 관련한 자료를 곁들이며 상세한 영화 해설을 해드리고 주방에서 진행하는 2부에서는 영화에 나와서 재현하거나 영화로부터 모티브를 얻었거나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이어진다. 영화에서 식탁으로 이동하는 2부의 흐름 안에서 나와 아내가 각각 1부와 2부의 책임자로서 시네밋터블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그만큼 각자의 역량을 믿고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나름 믿음의 벨트가 필요한 일이랄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책임진 파트를 망치면 가혹한 규탄을 마다하지 않는 인정머리 없는 상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한 치욕을 경험할 수 없기에 각자 열심히 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응?)


지금은 외부 공간과의 협업을 통해 시네밋터블을 진행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집에서 시작됐다. 2020년 한 해동안 52번의 시네밋터블을 진행했고, 정확히 47번을 집에서 진행했다. 집이 그리 넓지 않아서 매 회차마다 정원은 4명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진행된 47회차 모두 정원을 채웠다. 그러니까 1년 사이 시네밋터블로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의 수가 188명이라는 의미다. 물론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N차 방문을 해주신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정확하게 188명은 아니겠지만 머리수로 계산한다면 그렇게 된 셈이다. 처음 시네밋터블이라는 이름을 짓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해서 모객을 시작했을 때 ‘누가 오겠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그랬다. 신기한 일이었다. 시작할 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매체 기자 혹은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면서 정말 다양한 신분과 성향의 인사를 만날 수 있었지만 시네밋터블은 전혀 다른 만남의 장이었다. 이를테면 국회에서 일하는 비서관 같은 분을 만날 기회가 평소에 얼마나 될까? 물론 우연히 사석에서 볼 수도 있는 법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을 신기하게 여길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네밋터블을 통해 방문한 이들이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간단하게 혹은 상세하게 듣게 되는 경험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었다. 덕분에 테이블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가능성이란 것이 생각 이상으로 풍요롭다는 것도 실감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최소 2시간 30분, 최대 4시간 가까이 진행된 1부의 영화 해설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면 이분들이 어떤 일을 할까 매우 궁금해지기 때문에 2부에서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비로소 호기심을 해소하는 과정의 재미도 그만큼 쏠쏠해진다.

시네밋터블이라는 이름을 작명하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단어는 괄호처럼 포함된 ‘able(가능한)’이다. 영화는 나를 대변하는 정체성이고, 미식은 아내를 대변하는 정체성이며 만남은 시네밋터블을 대변하는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정체성이 모여 이룰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결국 나와 아내와 시네밋터블의 가능성일 것이다. 그러니까 정체성의 총합을 통해 그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다는 일말의 바람이 이름에도 투영된 것이다. 그런 바람이 얼마나 이뤄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네밋터블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후의 삶이 그 이전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사람이 모이고 헤어지는 것을 넘어 뜻밖의 인연으로 발전하고, 서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관계가 된다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다. 시네밋터블을 통해 무엇을 얻었다는 정량적인 평가를 내리긴 어렵지만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지나온 이상 그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가능성을 떠올리기 됐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시네밋터블의 터전이 된 지금의 집은 서촌에 있는 옥인연립이라는 연립주택이다. 지은 지 40여년이 된 오래된 집을 매입해서 리모델링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일차적으로 아내의 바람이 있었던 덕분이고, 이차적으로는 서촌에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내 입장에서도 2인 가족이 살기에 적당한 공간이라 수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끝내 시네밋터블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살만한 집의 규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능한 일상을 꾸리는 과정이 둘이서 모색할 수 있는 시네밋터블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다. 결국 2인 가구에 적합한 옥인연립은 그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끝내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게 해 준 플랫폼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시네밋터블을 모색했던 건 아내도, 나도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리랜서는 일이 있어야 프리랜서이지, 일이 없으면 그냥 백수다. 지난 경력과 그 경력 안에서 증명한 시간을 담보 삼아 제안받은 일을 해내며 월급이 없는 삶을 충당해야 한다. 직업은 취미가 아니므로 늘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체로 그렇다. 물론 일 자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탁이나 제안을 받게 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수렴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고 싶다’보다 ‘할 수 있다’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늘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다리는 것도 지치는 법이다. 직접 모색하고, 기획해야 한다. 아내도, 나도, 그런 재미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시행착오와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건 감당할만한 일이 된다.

2020년 이후로 옥인연립을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시네밋터블을 진행하게 됐다. 이를 테면 서촌의 자랑인 ‘참바’와 ‘참제철’을 비롯해 아워플래닛과 신라호텔 그리고 욕실 브랜드 로얄앤코에서 운영하는 강남의 로얄라운지 다이닝 등에서 시네밋터블을 진행하면서 공간의 분위기에 따라 모이는 사람도, 형성되는 분위기도 달라지는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글렌피딕이나 메타베브코리아 같은 주류 업체와 협업을 하며 콘텐츠가 확장되는 흥미도 더해지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시네밋터블의 다음 향방을 묻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질문들은 대체로 사업의 개념 안에서 넘어오는 편인데 나는 아직까지 시네밋터블을 사업적인 영역 안에 두고 판단하지 않고 있다. 아내와 함께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며 최대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로 여기고 있다.


물론 재화가 필요하고, 그에 걸맞은 서비스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는 걸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스스로 시네밋터블을 즐길 수 있어야 기꺼이 그 자리를 찾아주는 이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니 스스로 거듭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돼야만 계속해나갈 수 있는 동력도 생기는 것 아닐까. 어디로 갈지는 몰랐지만 제대로 다다르고 싶었다. 시네밋터블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적어도 아직까지 스스로 실망스러운 일을 벌이진 않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런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네밋터블을 하면서 알게 됐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나가고, 살아가고 싶다. 시네밋터블도, 혹은 그게 무엇이든, 어디라고 한들.

(LG전자에서 제작하는 온라인 매거진 'Life.zip'에 쓴 에세이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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