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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Feb 02. 2021

4,000m 고소 적응

임자체 베이스캠프 다녀오기

딩보체의 아침 날씨는 쾌청이다. 식전에 마을 주변을 산책한다. 산중 생활은 단순하다. 여기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일찍 자니 자연 일찍 일어나게 된다. 걷고, 먹고, 자는 단순한 반복의 시간이다. 간밤에는 고소증이 없이 잘 잤다. 몸이 고산에 점점 적응이 돼 가는 것 같다. 아침 날씨가 많이 쌀쌀하더니 밤새 얼음이 얼었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들판의 야크들은 이 정도 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뎃잠을 자고 일어나 한가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이직은 해뜨기 전이라 하늘에는 보름달이 높이 떠있다. 달을 보니 갑자기 집 생각이 난다. 서울은 여기보다 3시간이나 빠르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도시민의 일상이 그려진다.


딩보체 마을의 쵸르덴과 설산


마을 안길을 따라 입구에 있는 티벳식 불탑인 초르뎬으로 올라갔다. 온화한 부처님의 지혜의 눈이 자애스럽게 느껴져 마음이 편해진다. 그곳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조그마한 언덕도 숨이 턱턱 차니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올랐다. 아니 숨이 차서 천천히 오를 수밖에 없었다. 고산에서 행동은 천천히 네팔어로는 "비스타리! 비스타리!" 다. 로부체로 올라가는 능선에 올라 서니 라마교 경문을 새겨 놓은 오색 타르쵸가 바람에 나부낀다. 신성한 곳에 설치하여 잡귀나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주술적 의미가 있고 행복과 편안을 기원한다. 


아마다블람과 들판에 노숙 중인 야크무리


내일 아침에 로부체로 갈 길은 이 언덕을 넘어 평전을 거쳐 오르게 된다. 4,000m가 넘으니 수목 생장 한계점을 넘어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고 모두가 민둥산이다. 산에도 계곡에도 들에도 나무가 없는 그대로 보이는 알몸이다. 고산 트레킹에서 3,000m에서 하루 고소 적응이 필요하고 그 후 매 1,000m 마다인 하루씩 고소 적응이 필요하다. 그 4,000m 고소 적응이 딩보체이고 좀 더 높은 마을인 추쿵(4,730m)을 다녀오는 날이다. 


능선에서 내려다 오색 타르쵸 사이로 보이는 딩모체 마을과 깃대에 매단 오샛 타르쵸


추쿵은 딩보체 위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추쿵은 거리가 너무 짧아 IBC(임자체 베이스캠프)를 다녀 올 생각인데 포터들이 좋아 할리가 없다.  포터 없이 다녀 올 생각이다. 추쿵 가는 길은 완만한 오름으로 걷기가 편하고 오른쪽으로 미봉 아마다블람이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가는 길에 망태기를 매고 야크 똥을 줍는 사람을 만났다. 땔감이 귀한 이곳에는 야크 똥이야 말로 가장 좋은 땔감이다. 그걸 피자같이 만들어 햇살에 말리면 취사나 난방용으로 최고라 한다.


야크 똥을 찾아 삼만리 현지인 가정집
설벽의 눈 커튼


추쿵에서 오르는 산은 임자체인데 아일랜드 피크(6,189m)라 부르기도 한다. 추쿵이 그곳으로 가는 길목이다. 임자체를 오르려면 별도로 등반허가가 필요하다. 네팔에서는 웬만한 산은 산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래도 산 이름을 붙이려면  6,000m는 되어야 한다. 6,000m가 넘는 산은 별도 등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입산료를 지불하여야 한다. 그런 산이 임자체이다.


롯지촌인 추쿵 마을

 

추쿵에는 뒷산이 있는데 그 봉우리를 추 쿵리라 한다. 여기서 리(Ri)는 네팔어로 봉우리를 뜻하다. 별도 허가는 따로 없고 추쿵에서 오르면 왕복 4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추쿵롯지 식당에서 밀크차를 마시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 베이징과 타이베이에 온 중국인 청년 두 명을 만났다. 그들은 추쿵리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추쿵리 앞 봉까지 고소 적응차 다녀온다고 한다. 


아일랜트 피크 가는 길 안내표지와 고산 포터들의 짐 운반


우리는 시간이 널널하여 임자체 베이스캠프를 다녀오기로 했다고 하니 부러워한다. 포터들은 가기 싫은 눈치라 우리끼리 다녀오겠다고 하고  배낭에 지도와 간식 그리고 물만을 챙겨서 출발했다. 임자체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그곳으로 가는 고소포터들을 만났다. 붉은색 복장으로 무거운 짐을 메고 오르는 그들과 함께 걸었다. 고소포터의 경우 최고 50kg의 짐을 BC까지 운반하는데 내가 만난 고소포터는 올해 35살로 두 딸을 둔 아버지란다. 집은 네팔의 우다이푸르에 있다고 하는데 고소포터의 수입이 그래도 다른 직업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단다. 그들은 체력이 좋아 오름에도 내림에도 평지에서도 달랑 배낭을 멘 우리와 속도를 같이 할 정도로 잘 걸었다. 대단한 체력 소유자들로 외국인과 자주 접해 영어도 곧잘 한다. 


대단한 무게를 나르는 고산 포터들
아일랜드 피크 베이스 켐프 가는 길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바위


임자체 베이스캠프는 추쿵에서 3시간 걸리는 왕복 6시간 거리다. 가는 길에 오른편 능선으로는 만년설이 눈 커튼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한 편의 산악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왼편으로는 사막 같이 펼쳐지는 모래밭은 빙하의 모습으로 눈이 녹아 버리니 강바닥처럼 황량하게 보인다. 모래 아래에는 얼음이 있는 빙하가 숨어있다. 임자체를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는 아일랜드 피그라고도 부르는데 얼음바다 위에 뜬 섬이란 뜻이다. 


임자체 호수와 임자체 베이스 캠프


지금도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기 전에 준비 훈련으로 임자체를 많이 오르는데 체력이 있고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임자체 베이스캠프 전에 넓은 호수가 있다. 그 주변에는 야크 무리가 한가히 풀을 뜯고 있다. 몇 동의 탠트가 있는 것 보니 외국인 산악대가 들어와 임자체 산행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산을 오르는 산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좀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게 꿈이다. 에베레스트는 몰라도 임자체는 좀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풀뜯는 야크 무리와 호숫가 백사장
설산들의 매료되는 풍경


돌아오는 길에 이곳 들판에서 야크가 풀을 듣고 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허허벌판에 야크라도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추쿵으로 돌아오는 길은 걸음을 빨라하였다. 하마나 하고 기다리고 있을  포터들의 생각에 절로 걸음이 빨라진다. 추쿵에 돌아오니 15:30분이다. 가다가 중간에서 적당히 돌아오겠다고 하고 왔는데 임자체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느라 많이 늦었는데 그간 많이 기다렸는지 화가 난 포터들의 표정이다.  너무 늦으니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늦은 점심을 빨리 해 달라고 부탁해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포터를 달래서 딩보체로 향했다. 아침에 올라올 때는 쉽게 올라왔는데 피곤하니 하산길도 다리가 무겁다. 포터들은 성질이 났는지 따라오지 않고 앞서 빨리 걷는다. 미안함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들을 열심히 따라갔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을 달리기 하는 아마다블람


많이 기다리게 한 죄로 쉬지 않고 딩보체까지 내려오는데 쿰부 에베레스트의 저녁 바람이 많이 차갑게 느껴진다. 오늘은 임자체 베이스캠프를 다녀오느라고 근 10시간 동안 가장 오래 걸은 날이다. 내일 로부체(4,910m)로 올라야 하는데 체력을 너무 많이 소진하여 조금은 걱정이 된다. 체력이 바닥난 하루다. 


언제 다시 이곳에 와서 임자체 베이스캠프를 다녀오나 생각하면 잘 다녀온 것 같다. 아직 산에 대한 갈증과 애정이 넘치는 걸 보니 고산에 잘 적응하고 있고 내일도 잘 되리란 희망이 보인다. 늘 꿈에도 그리던 설산 쿰부 에베레스트가 아니었던가. 꼼꼼히 사진으로 담고 눈으로 저장하고 머리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이곳에 두 발을 디딛고 있다는 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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