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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wole Mar 14. 2019

대형마트 없어지는 게 이렇게 슬플 일이야?

한 동네에 이십년째 사는 사람의 이야기2

폐점을 앞둔 이마트의 매장 군데군데가 이렇게 비어 있었다.

우리 동네 이마트가 문을 닫는다. 옆동네에도, 옆옆동네에도 큰 이마트가 들어온다 싶더니 가장 오래된 우리 동네 이마트가 문을 닫는다. 부모님을 따라 오랜만에 마트에 간 나는 미친 사람처럼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세수도 안 하고 잠옷 차림으로 간 터라 내 사진을 찍을 순 없으니 뻔뻔하게 엄마, 아빠에게 모델이 될 것을 종용했다. ‘아빠, 거기 생선 코너 앞에 좀 서봐.’ ‘엄마, 여기 나 이빨 깨졌던 데. 거기서 오렌지 고르는 척 좀 해봐.’ ‘엄마는 좋아하는 코너 없어? 좀 가서 서봐.’    

그렇게 탄생한 사진 중 하나. 아빠가 생선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는 척 하며 웃고 있다.

그렇다. 우리 동네 이마트는 겨우 대형 마트 주제에 나랑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여섯 살.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부터 마트는 이 자리에 있었다. 그때는 이마트 대신 월마트의 이름으로였다. 월마트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신세계가 부지를 매입하면서 마트는 자연스럽게 이마트가 됐다. 문 닫기 전에 꼭 가야지, 가야지 하다 미루다 이제야 온 이마트. 이미 비어 있는 매대도 많았고, 마트 곳곳에 ‘나 곧 문 닫아요.’라고 써 있는 듯 했다.(실제로 써있기도 하고)


이마트는 내 앞니를 앗아가기도 했다.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간 마트에서 그날 오렌지가 엄청난 세일 중이었고, 엄마 아빠는 오렌지 대란에 참여했다. 나는 혼자 마트를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발견한 계산대. 운영 중이지 않던 계산대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뛰어다니던게 일상이던 나는 쇠사슬도 뛰어 넘으려 했다. 한 발로 사슬을 뛰어넘던 나는 결국 발이 걸려 넘어졌다.     



지금의 이마트 계산대 모습. 그때는 좀더 낮은 높이에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열두 살이니 울지 않고 씩씩하게 일어났다. 옆에 안경점 직원 언니가 나에게 괜찮느냐며 물었을 때도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하하. 그러나 언니는 내 웃는 얼굴을 경악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바닥의 흰 가루를 가르치며 물었다. 이거 네 이빨 아니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으스러진 가루들. 그리고 언니가 보여준 거울 속 나는 앞니의 반이 사라져 있었다. 그 가루는 내 이빨이었다... 충격 받은 언니를 뒤로하고(내가 더 충격이니까..) 나는 오렌지 고르느라 정신 없는 엄마, 아빠를 찾았다.. 엄마, 아빠를 만나고 긴장이 풀리자 충격으로 나는 반쯤 기절했고 그대로 아빠에게 업혀 응급실에 갔다. 그때 이후로 나는 가짜 앞니로 살고 있다..    

   

딸의 종용에 오렌지 없는 오렌지 매대에서 오렌지를 고르는 연기를 하는 중인 엄마.


앞니를 앗아간 기억 뿐만이 아니다. 나는 마트에 소소한 추억들이 있다. 가족들과, 친척들과 왔던 마트. 중학생 때는 마트가 놀이터가 되어 필요한게 있다는 핑계로 친구들과 마트에 와서 구경도 하고 놀았던 기억도 많다. 성인이 된 후에는 엄마와 나의 오랜 산책 코스 중 하나가 이마트이기도 했다. 집에서 걸어서 겨우 15분 거리였으니까.    


식료품, 생필품, 전자제품까지 집안 곳곳을 이마트의 물건들이 채우고 있다. 이런 충성심 높은 고객들이 어딨다고 추억을 뒤로 하고 이마트가 문을 닫는다니.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새로 생긴 번쩍번쩍한 화려한 이마트들이 오래된 우리 동네 이마트를 밀어내는 꼴이 나는 퍽 섭섭하다.


‘엄마, 이마트 자리에 이제 그럼 뭐 생긴대?’ 마트를 나서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대형 오피스텔 생긴다던데?’ 며칠 후면 문을 닫는 마트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위엔 새로운 건물이 생기겠지. 그리고 그 위엔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기억이 쌓일터다. 겨우 고작 자본주의의 산물 대형마트건만, 이리도 아쉬운 건 역시 이 동네에 너무 오래 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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