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카페_하이앤드라이
엄마와 예술전시회를 간 것은 기억에 처음이었다. '우연히 웨스 앤더슨'이라는 프로젝트명 하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공유한 여행사진이 한데 모여 있었다. 사진 속 외국 풍경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림처럼 예쁜 풍경과 사진처럼 선명한 화질 사이에서 엄마는 잠시 헷갈리는 듯 했다. "사진 맞아? 혹시 그림 아니야?" 손바닥만한 핸드폰 화면으로만 접하던 사진이란 매체를 커다란 인쇄물로 감상하는 경험이 엄마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는 듯해 뿌듯했다. 기분 좋아지는 사진들이었지만, 인스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진들의 인화품이란 생각이 내겐 더 지배적이었는데.
엄마의 짧은 감상평을 듣는 편이 훨씬 재밌었다. 일정한 모양과 크기, 간격, 색깔로 배치돼 있는 문들을 맥주병 같다고 바라보는 시각이 참신했고, 지루할 틈이 없다는 소감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뇌가 늙지 않게 하는 비결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극을 주는 것이라던데, 오늘이 엄마에게 그런 날이지 않을까 짐작하자 마음이 가벼웠다.
전시회를 나와 펍과 카페를 겸하는 곳으로 차를 마시러 갔다. 붉은 조명과 비트 있는 팝송, 패셔너블한 젊은이들이 공간을 채우는 장소였다. '이런 핫플도 엄마에겐 신선한 경험이겠지?'라고 내심 단정하며 오늘의 외출을 주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외출을 마무리 지으며 엄마의 핸드폰 속 사진들을 구경했다. 동생과 내가 담긴 수십 장의 사진들. 우리가 대화 나누는 표정, 작품을 감상하는 옆모습과 뒷모습, 앉아서 쉬는 자세, 물 마시는 손, 엄마를 향해 뭐라고 얘기하는 눈빛.. 엄마에겐 동생과 내가 아름다운 풍경이고 질리지 않는 자극제인 걸까.
그 무엇도 아닌, 내가 엄마의 생동하는 풍경이 되어야겠다는 가벼운 결심을 하며 내 핸드폰 갤러리를 열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찍은, 가본 적도 없는 장소를 담은 사진 일색이었다. 마음 한 쪽이 아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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