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는 게 있으면 되는 게 있다
햇볕 드는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읽어보리라 가져온 마종기 님의 수필집은 첫 장도 넘기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비엔나의 날씨 중 가장 추운 날, 눈비 오는 날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쨍하게 햇빛이 내린다. 오늘 일정은 조카들
기숙사에 살림 넣어주기와 박물관 한 곳 방문 예정이다. 계획은 세우지만 늘 그렇듯 쇼핑은 예상보다 시간을 더 많이 잡아먹고, 박물관은 일정을 가늠할 수 없다. 오늘이 딱 그랬다. 아우가르텐 박물관은 무슨 사정인지 오늘은 영업을 할 수 없다 하고, 하우스 오브 뮤직은 아이들 체험 위주인지라 입장료가 허걱이다. 가는 곳마다 캔슬이다. 하지만 여기는 비엔나. 가는 곳마다 역사가 아닌가. 아우가르텐 박물관 뒷길에서 빈소년 합창단이 숙소로 사용했다는 건물 (그것도 합창 소리가 들려오던)을 만났고, 비엔나에서 처음 옛날 트램을 탔고, 케른트너 거리 옆쪽에 위치한 하우스 오브 뮤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에서는 계속 공사 중이다가 이제 문을 연 성당을 만났고, 이래저래 지난 추억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잃었다. 안 됐다. 하지 못했다는 절망보다는 그래도 하나를 잃으면 하나는 얻을 수 있고, 안 되는 일이 많아도 뭔가 이뤄지는 것은 생긴다는 삶의 이치를 되뇌어본다. 절망적일 때는 정말이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나 역시 머피의 법칙에 걸려 되는 일 하나 없는 하루가 빈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너지긴 싫었다.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비통하게 생각하고 우울감에 빠진 모습이 왠지 나쁜 기운을 불러올 것 같은 기분에서 꿋꿋하게 견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애써 마인드컨트롤을 하지 않아도 입장할 수 없는 아쉬움보다 그곳에서 새롭게 만난 것들이 더 반가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