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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작업소 Jan 24. 2024

비엔나를 떠나며

어젯밤 짐 정리를 했어도 간밤에 해놓은 빨래와 세면도구 싣기, 숙소 정리와 쓰레기 비우기까지 할 일은 많지만 마음은 느긋하다.  숙소 주인 슈테판 씨가 체크아웃 시간을 한 시간만 늦춰달라는 내 부탁에 공항 가는 시간에 맞춰 넉넉하게, 자유롭게 하라고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음 체크인 손님이 없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빡빡하게 굴려면 충분히 빡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마운 선물이다. 그 덕분에 오전 10시 체크아웃으로 바빠야 할 귀국날 오전은 조카들 기숙사에 들러 마지막 점검을 해주고 돌아와 느긋하게 짐을 싸고 한 군데의 일정을 더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택한 곳은 베토벤이 심신의 안정을 찾고 전원교향곡을 작곡했다는 그링칭거 64번지. 그 옆집 옆집에 위치한 지금은 치과 병원이 있는 아인슈타인 집까지도 구경했다. 오고 가는 길에서 모든 전철과 버스의 환승도 한 번의 기다림 없이 딱딱 맞아 숙소에서 그곳까지 왕복 40분 소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캐리어를 들고 4층 계단을 내려가는데.. 힘들기도 했지만 수하물 규정 23킬로그램을 초과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트램을 탄 시각은 2시. 그런데 평일 이 시간에 트램이 만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귀엽게 생기신 오스트리아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거운 짐을 어떻게 하면 미끄러지지 않게 운반하는지를 알려주신다. 덕분에 편안하게 공항철도역까지 올 수 있었다. 할므이-당케 슌.

이렇게 소소한 고마움들과 적절한 타이밍, 다행히 23킬로 그램이 안 되는 21.5 킬로그램 캐리어를 부치고 나니 속이 후련하기도, 속이 빈 것도 느껴진다. 배웅 나온 조카들과 버거킹에 앉아 아쉬운 배웅의 시간을 갖는다. 눈물 콧물 흘릴 이유도 상황도 아닌지라 덤덤하게 일상의 이야기만 나눈다. 조카들도 부모와 떨어져 타지에서 공부하기 힘들 터이고, 아이들의 건강이나 생활을 곁에서 직접 챙겨줄 수 없는 언니도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덤덤하고 담백하게 약간의 당부만을 건네고 bye. 그래도 아이들은 못내 아쉬운지 보안검색대 창문 사이로 우릴 지켜본다. 내 뒷모습은 어땠을까? 뒷모습에도 이모티콘을 표현할 수 있다면 하트를 마구마구 날려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면세점을 통과하여 게이트로 향한다. 이제야 피로가 몰려온다. 비행을 시작하면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들이마시고 영화 한 편 보다가 졸다가.. 그렇게 한 달간의 여정은 마무리되겠지. 영화는 뭘 볼까?

*기숙사 짐정리- 점심 식사 (숙소)-그링칭거 스트라세 64 (베토벤, 아인슈타인) - 마지막 짐체크 및 체크아웃-플라터 역 (s-bahn) -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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