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혹은 그 언저리.
알람이라고 착각했던 전화벨이 울린다.
보육원 황선생의 이름이 선명한 휴대폰 화면.
이 시간에?
- 네, 황선생님 무슨 일이신가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간
괜히 황 선생님이 죄송한 마음이 닥칠까 염려되어 애써 또렷한 목소리로 답을 한다.
- 저... 김 선생님 죄송하지만... 잠시 보육원에 와주셨으면 해서요. 정말 죄송해요.
심상한 일이었다면 이 시간에 전화를 할 분도,
그 먼 곳을 일부러 와달라고 할 분도 아닌지라 우선 자리부터 박차고 일어나야 했다.
- 어...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세요. 제가 일단 지금 출발할게요.
통화를 하면서도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내 직감이 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내 불안한 마음이 가득 차 버려 결국 묻고 만다.
- 혹시 지민이, 무슨 일 있나요?
송지민...
너 이름 참 예쁘다,라고만 했는데
지민인 그 짧고 갸녀린 팔로 내 목을 휘감고는 놓질 않았다.
당황스럽고, 포근하고,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지민이는 보육원 아이며,
지민이는 자폐를 앓고 있다.
6살.
3살 때 처음 회사의 보육원 기부행사에서 마주친 뒤
내내 눈에 밟히는 그 녀석 때문에
일주일을 고민했다.
후원을 할까 말까, 의 고민이 아닌...
지민이가 다시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
보고 싶은데,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이상한가?
뭐... 이런 식의 고민.
부모에게 버림받아서,
자폐라서...
조금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무작정 보고 싶었고,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지민이가 나를 그렇게 힘껏 껴안아주었을 때
그 순간 느낀 평온과 위로가 그리웠다.
그래서,
3년 전 그날부터 난 지민이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었다.
그런 지민이가 많이 아프단다.
열이 펄펄.
원장님과 황 선생님이 약을 먹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지민이는 벽장과 벽장 사이의 작은 공간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단다.
어른의 손이 닿기 힘든 그 좁고 위험한 공간.
지민인 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곳에 들어간다.
그리고,
숨는다.
집에서 판교 IC를 통과해서
새로 난 강남순환도로를 거쳐 낙성대입구를 빠져나온다.
몇 번이나 과속위반 카메라에 찍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환하게 불 켜진 개나리동 1층 창문을 보자마자
뛰어들어간다.
- 지민아! 지민아!
그제야 온몸을 비틀며
벽장 사이를 빠져나오는 지민이...
열기에 온몸이 달아오르고, 이마엔 땀이 송연하다.
손톱을 물어뜯었는지 오른손 검지엔 피...
곧 쓰러질 듯,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나에게 와
안긴다.
아니... 내가...
곧 쓰러질 듯 엉거주춤 주저앉아
지민일 안았다.
늘 그렇듯이 꼭 안아주고 싶었다.
지민이가 날 위로한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 그래 우리 지민이 약 먹자.... 약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