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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바인스 Oct 14. 2020

Hey Michelle,

Soul drive only.

- 너 혼자보내면, 나 죽어.
- 누구한테?
- 경주 엄마한테.

미쉘의 표정은 단호하고 어감은 분명했다. 일단 오빠를 말려야 한다는 것, 그래도 굳이 이 길을 나서야 할거라면 결코 혼자 가지 않게 하겠다는 것. 경주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겠지만 미쉘에게 그건 그냥 핑계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미쉘은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 춥다. 일단 들어 와.

어제 잠시 만나서 한달 간 비워둘 집을 가끔 둘러봐 달란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출발할거라는 얘길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바람에 이렇게 새벽에 득달같이 온것이리라. 제법 크고 가득 부풀어 오른 백팩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다. 길가에 주차되어있는 미쉘의 빨간색 지프를 차고로 옮겨놓은 뒤 커피를 끓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고집이 센 걸 알았지만 그 고집을 실천하는데 이렇게까지 거침없을 줄은 몰랐다. 소파에 앉아 자신이 챙겨온 스키드로와 레이디가가의 음원과 바닥에 던져도 멀쩡할 것 같은 대형 스탠리 보온병을 자랑하고 있는 미쉘을 지켜본다. 그래 넌 이런 내 친구이자 동생이지.

미쉘이 가져온 보온병에 커피를 넉넉히 담은 뒤 미리 준비해둔 샌드위치가 부족할 듯하여 한 팩을 더 준비한다. 아직 이른 아침이지만 간단히 만든 스튜와 샌드위치를 싸고 남은 빵으로 만든 토스트 그리고 커피로 아침을 함께 하기로 한다. 미쉘은 마치 소풍을 떠나는 표정으로 들떠있다. 꽤 길고 위험할 수도 있는 여정이라는 걸 알텐데도...

마이클과 부다에게 전화를 해 미쉘이 나와 함께 캐나다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여정을 위해 렌트를 한 포드 픽업트럭에 짐을 실었다. 준비는 다 됐고, 미쉘에게 한 번 더 물어보고 싶었다.

- 둘이 다니면 위험할텐데.
- 왜 내가 너 잡아먹을까 봐?
- 아니 네가 지루해 죽을까 봐.

한바탕 웃을 줄 알았던 미쉘의 표정이 순간 진지해지는 바람에 얼른 차에 올라 시동부터 걸어야했다.

미쉘에게 직장은 어떻게 하고 길을 따라 나섰냐고 물었던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거의 8시간을 쉬지않고 달렸음에도 메릴랜드 주의 서쪽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미쉘은 전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는 이유로 옆좌석에 자리를 깔고 누웠고 그저 광활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땅덩어리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딱히 새로울 것 없는 풍경이 차장에 정지화면처럼 펼쳐졌다.

미국 동쪽 끝의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서, 서쪽 끝 시애틀을 지나 캐나다 밴쿠버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는 여정. 밴쿠버에 살고 있는 선준형과 형수님은 나를 만류하면서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누누히 강조하는 여행이었다.

- 네가 미국이란 나라를 우습게 보는구나.
- 한밤 중에 인기척도 없는 도로에서 강도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답을 헐수 없었다. 왜 이런 여행을 계확하고 시작하게 되었는지...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의지로 나선 길. 그동안 나에게 닥친 상실과 고통을 백미러 뒤로 멀어지고 있는 저 길 어딘가에 켜켜히 버리고 싶었을까. 혹은 삭막해보이는 저 사막과도 같이 쓸모없는 땅을 바라보며 나보다 훨씬 외로운 그 무언가를 찾아 위로받고 싶었을까.

- 웬 한숨을 그렇게 쉬어. 그냥 그런 썅년은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는게 정답이야.

마쉘이 어느 틈에 일어나 쏟아지는 햇빛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 썅년? 어떤 년 얘긴데?
- 니 마누라, 전처 말이야. 바람난 거 잖아. 경주 엄마한테 다 들었어.

말 없이 정면을 응시하면서 핸들을 두 손으로 그러잡았다. 이런 주제로 미쉘과 얘길하고 싶진 않았다.

미쉘은 스물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마이클과 테드(성격이 살아있는 부처님 같아 우리는 테드를 부다(Buddha)라고 부른다), 두 쌍둥이를 낳았고 그 쌍둥이의 아빠는 미쉘이 아이를 낳기도 전에 본국인 프랑스로 말도 없이 돌아가 버렸다. 만삭의 몸으로 남편을 찾아 나선 미쉘은 같은 회사의 동료와 자신의 남편이 오랜 불륜의 관계였다는 것과 그늬 본국행에 그 '썅년'도 함께 였다는 것을 알게 됐었다. 미쉘은 부풀어 올라 곧 해산할 것 같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처음으로 침을 뱉으며 욕이라는 걸 했었다고 한다. 너희들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니 아빠가 얼마나 개새끼인지 알려줄게, 하고...

- 그런거 아냐. 그 얘긴 하지말자.

아니긴 개뿔이 아냐, 라고 중얼대는 미쉘의 혼잣말을 들었지만 마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미쉘은 아마도 지금 두 아이의 아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지도 머른다.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걸 본게 무척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박사과정 교환연구과제를 진행하기 위해 미국의 한 공과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헐 때였다. 때 마침 나에게 검도라는 운동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이 계신 곳도 워싱턴DC 인근이었던터라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을 자청했었다.

- 제이야, 나랑 얼른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밤늦은 스승님의 전화에 놀라긴 했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아니시면 부탁을 할 어른이 아니시라는 생각에 얼른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스승님은 영어를 전혀 못하셨다.

- 무슨일인데요?
- 응, 가보면 알겠지. 안드레아가 전화를 했는데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른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메릴랜드주의 프레데릭이라는 소도시 마을의 낡고 작은 타운하우스. 그곳에 펼쳐진 광경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것이었다. 안드레아 누나와 나이드신 아주머니 한분이 나이가 앳되어 보이는 여자의 분만을 돕고 있었고 집안의 물건들이 온통 아수라장이 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낯선 아주머니의 지시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했다. 스승님이 집안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물을 끓이고 수건을 삶는 일울 하다가 다시 급히 프레데릭 시내까지가서 필요한 약과 식료품을 사서 돌아왔다.
그 사이 미쉘은 두 아들을 건강하게 낳았고 자신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왕진을 온 의사는 무언지도 모르는 수액을 하나 미쉘의 팔뚝에 매달아둔 채 한마디하고 자릴 떴다.

- 도대체 얼마를 굶은건지... 나중에 깨서 일어나면 우선 밥부터 먹이세요.

그러고보니 미쉘이라는 여자의 집 냉장고는 텅비어 있었다. 식탁에 있는 먹다남은 빵 부스러기와 찬장에 있는 간단한 소스 몇 가지가 전부,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여자기에...

그 후 스승님과 난 미쉘의 건강과 안부를 챙기기 위해 거의 매일 그녀의 집을 가야했고 급기야 내가 기거하던 아파트를 미쉘에게 비워주고 나는 스승님의 검도 스포츠센터로 짐을 싸서 거처를 옮겼다. 그게 미쉘과 나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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