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선릉역 10번 출구 앞에 선 채,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남녀가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았다면,
남자는 그곳을 나와 직장이 있는 어느 회색의 빌딩으로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여자는요...
그날 팔아야 할 남은 김밥을 서둘러 팔아야 했겠죠. 천오백 원 하던 김밥을 천 원으로 내려 팔 생각이었다 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뭐하냐고.
여자가 답했습니다.
김밥 판다고.
남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회사는 어쩌고?
여자가 다시 답합니다.
다 팔고 가야 한다고.
남자가 정작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닌데,
왜 네가 이걸, 지금, 여기서 팔고 있냐고, 결혼을 약속한 내 여자 친구가 왜.
뭐 이딴 걸 묻고 싶은 건데 여자의 시선은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도망가고 있습니다.
남자는 이내 전날 과한 값을 치르고 새로 산 구두를 신은 채 빌딩으로 향합니다.
여자가 있던 자리를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부끄러웠습니다.
여자의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누가 볼까 두려웠습니다.
지하철 입구에서 김밥을 팔아야 하는 사정.
사실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나 봅니다.
김서방 미안타.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유경이가 대신 그걸 판다고 나갔네. 하필 거기서 그걸 판다고... 미안타... 정말 미안타.
몸살이 왔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식은땀이 훌렀습니다.
몸살이 맞을 거예요.
여자 친구를 다시 본 건, 그러니까...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군요.
미안하다는 여자 친구에게
반지를 끼우고 프러포즈를 했었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