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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Apr 11. 2018

메킨리(3)
나오미가 실종된 곳에서

- 세계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

5월26일 눈보라/맑음

 제3 캠프(3,600m)→제4 캠프(베이스캠프, 4,300m)


간밤에 내린 많은 눈으로 어제까지 존재했던 운행길이 없어졌다.

오늘은 아무도 앞선 이가 없으니 우리가 새로 러셀하며 길을 만들어야 한다. 

베이스캠프까지 운행구간 중 가장 힘든 구간인 모터사이클힐을 러셀로 썰매까지 끌고 오르니 눈앞이 컴컴할 따름이다.

 

다른 외국 원정대도 우리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인지, 어쨋든 우리가 앞장서기로 했다.

어제의 힘든 경험을 토대로 조절하면서 중단까지 올랐다.

잠쉬 쉴겸 뒤돌아 보니 저 아래로 여러 외국 원정대가 내가 만든 길로 줄줄이 달라 붙는 다.

가 손해본 이 느낌은 뭐지? 


경사면 상단까지 오른 후 다시 윈디코너의 긴 코스를 돌고 돌며 몇 개의 거대한 크레바스를 지나니 저 멀리 베이스캠프 지대가 보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게다가 완만해도 경사면을 한없이 올라가야 도달할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위험한 크레바스나 눈사태 구간을 벗어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운행구간 중 가장 힘든 모터사이클 힐 상단을 올랐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오후 9시가 넘었다.

오전 10시부터  운행해 무려 11시간이 걸렸다.

베이스캠프에는 각국 원정대 캠프가 이미 구축돼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우리는 펭귄 무리처럼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팀 표식은 퍼밋넘버 '42', 리더 'young jo son' 이다.

가끔은 분뇨와 쓰레기에도 표시를 해야한다.

나중에 이것들을 레인져캠프에 인도해야 보증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에는 레인져와 자원봉사구조대 그리고 의료진까지 있어 약간의 맘이 놓였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구조대 긴급 출동보다 자력구조가 선행되는게 원칙이기에, 사고는 무조건 안 겪는 것이 최선이다.


텐트를 치고 버너에 불을 붙이니 바로 훈기가 돌았다.

땀에 젓은 옷과 양말을 말리고 라면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곤 바로 잠들었다.


캠코더, 때론 나를 힘들게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좋은 행적을 담아내는 멋진 놈이었다.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시작하면서 캠코더가 내게 운명처럼 달라 붙었다. 

카메라보다 켐코더가 언제나 우선이었다.

홀로 정상에 오르던 순간에도 파트너였다.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무게 감각은 무뎌졌는데, 부피와 베터리가 문제였다.



5월27일 맑음/눈 

 캠프4(4,300m:베이스캠프) 체류


이틀 전 윈디코너 상단에 데포한 짐을 찾으러 내려가던 중 일본 원정대를 만났다. 

올해가 일본 산악인의 정신적 지주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맥킨리에서 실종된지 20주기여서 찾아온 추모등반대였다.

이들 외에도 올해 많은 일본 산악인이 이곳으로 찾아왔다.

그들을 보며 나 역시 나오미에 대해 생각을 되짚었다. 

더불어 우리나라 고상돈 선배를 추모했다.


두 선배의 업적에 비교할 바 아니겠지만, 나는 이들의 등반 방식을 뒤따르고자 했다.

나오미가 등반에 나섰을 때 근심했을 것들도 떠올렸다.

그는 등정계획을 어떻게 진행했을까? 비용은 어떻게 충당했을까? 아내와 어떻게 이별했을까? 등등 많은 고민을 상상했다.


물건을 찾아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오후, 그간 소모된 체력을 보충하고자 아껴두었던 돼지고기로 푸짐한 식사를 마련키로 했다.

그런데 며칠동안 카고백에 담겨 있었던 것이라 혹시 상하기라도 했으면 등반일정에 큰 지장을 줄까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고기를 본 순간 포기할수 없는 식욕이 폭발했다.

제발 이상 없기만 바랄 뿐.

식사 후 내일 고소대응  운행 준비를 하며 모처럼 여유있는 휴식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큰 눈이나 강한 바람은 없었다.

그러나 가스가 문제였다.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가스에 따라 등반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나는 내심 알파인 방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경호와 상의한 후 내일 고소캠프에 진입해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윈디코너로 하단으로 가끔 완쪽 상단에서 눈사태가 일어나기에 빠른 이동을 해야하는 구간이다


5월28일 눈/눈보라

제4 캠프(베이스캠프, 4,300m)→제5 캠프(고소캠프, 5,300m)


오늘은 고소캠프 설치를 위해 고도를 1,000m의나 올려야 한다.

이 구간 중 악명 높은 헤드월을 오르는 것도 관건이다. 

픽스로프(고정줄)가 없다는 정보에 스노우바로 무장했다.

그런데 다행히 현장에서 레인저들이 보기 좋게 설치한 픽스로프를 만날 수 있었다.

강풍이나 난기류로 정상부에 기이한 현상의 구름이 형성되었다.


이젠 쥬마링(등강기) 구간.

하지만 데날리의 신은 쉬운 등반을 허락하지 않았다.

몰아치는 눈보라, 위에서 떨어지는 스노우샤워가 계속돼 시야 확보도 어려웠다.

역시 악명 높은 헤드월구간의 명성을 톡톡히 경험했다.

능선부의 칼바람은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세찬 바람에 몸이 위청거렸다.


헤드월을 올라서고도 깍아지는 능선길을 지나야 고소캠프에 도착할수 있다.

이런 강풍을 뚫고 갈 생각을 하니 더럭 겁이 났다.

한순간 중심을 잃으면 베이스캠프까지 굴러 떨어질 상황이다.


좀 뒤쳐진 경호가 능선에 도착했다.

부쩍 힘든 모양이다.


칼바람은 멈출 기미가 없다.

빠른 이동이 어려운 상황인지라 경호의 배낭에서 무게가 나가는 것을 꺼내 눈속에 보관하기로 했다.

거의 절반이나 덜어내고 간신히 고소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텐트 여러 동이 구축돼 있었다.

그 중 부산여성대 텐트가 보였다.

커피 한 잔 얻어마시며 설명을 들어보니 대장은 어제 정상을 성공했고, 다른 대원 한 명이 내일 정상으로 갈 계획이었다.

여건이 맞으면 동행하기로 했다.


저녁식사로 라면을 끓이려는데 코펠이 없다. 

경호의 짐을 덜어낼 때 코펠도 따라 묻혔나보다. 

궁여지책으로 작은 통조림통에 라면을 끓이는데 영 궁색했다. 


지금까지 같이 왔고 정상까지 같이 가야할 파트너


당초 계획은 오늘 고소캠프를 구축하고 베이스캠프로 내려가 하루 쉬고 다시 올라와 정상공략을 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부산원정대와의 약속 일정도 있고, 또 날씨가 도와준다면 이번 기회를 활용하는게 좋겠다는 판단에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경호가 많이 힘들어 하는 것이다.

오늘 밤이 지나면 툭툭 털고 괜찮기를 바랄 뿐이다. 

나라고 괜찮을리 없다. 

오늘의 힘든 일정과 1,000m고도 상승으로 나 역시 고소증상이 찾아왔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며칠 전부터 갈라진 입술에서 계속 피가 흘렀다.


잠 들기 전 경호와 아스피린을 나눠 먹었다.

텐트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내일 날씨가 도와줄지, 몸 상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 들기가 어려웠다.

어제 베이스캠프에 있던 날씨상황판에도 이번주 날씨가 별로였다.

데날리 신의 뜻에 맞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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