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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 May 01. 2021

조수석을 보는 연습

너의 옆얼굴은 어떤 온도로 나를 밀어내고 있었나


 어느 날 네가 커다랗고 조용한 자동차를 몰고 집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30분 뒤에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전화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언제 버스에 탈 건지, 그 시간을 계산해서 너도 너희 집에서 나오려는 건가 생각했다.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비상등을 켠 커다란 회색 차(차 이름은 잘 모르겠다)가 내 앞에 섰다. 조수석 유리창이 내려오고 네가 내 이름을 세 번 외칠 때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나는 한참을 정류장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여기 오래 정차하면 안 돼. 빨리 타."


너는 내가 좋아하는 그 부드럽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채근했다. 그렇게 허둥지둥 처음으로 네 차에 탔다.




 "백수가 무슨 차야. 돈이 어딨어서."


 안전벨트를 채우며 내가 말했다.   모아서  중고차니까 너무 그러지 마라. 차가 있어야 일도 구하지. 너는 줄곧 앞을 보며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다.


"네 운전 실력 못 믿겠어."


흰색  티셔츠를 받쳐 입고 푸른색 체크남방을 아무렇게나 걸친 . 짙은 남색 야구모자를  관자놀이에 땀이 혀 있다.


"면허는 스무 살 때부터 있었어. 차가 없었을 뿐이지."

"네가 스무 살에 면허를 땄었다고? 왜 난 모르지?"

"나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넌 몰랐겠지, 고등학생이었으니까."


우린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로 '남자-여자', '오빠-여동생'을 떠나 허물없이 친하게 지낸 사이다. 언제나 동등한 관계라고 느꼈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두 살 많은 네가 먼저 성인이 되어 있었다. 네가 신나는 대학 새내기 생활과 어른이 된 자유를 만끽할 동안, 나는 애매한 고 2가 되면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질풍노도 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둡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래, 나도 제정신이 아니던 시기였으니 너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 너도 나에게 마찬가지였을 테고. 돌아다니는 생각을 모아 정리하고 있는 그때 네가 히죽 웃으며 말한다.


"웃긴 얘기 해줄까? 나 운전병이었다."


너는 능숙하게 가속페달을 밟으며 옆 차선으로 이동한다. 운전병이었다니, 우스울 만큼 너랑 어울리지 않아.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내가 모르는 너의 시간이 늘어난다. 웃기지 않아.




 운전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썩 좋은 일은 아니다. 얼굴을 마주 볼 수 없고, 상대가 내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신호에 걸리거나 이상한 운전자가 끼어들 때마다 대화의 흐름이 끊기는 것도 별로다. 운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운전에 집중을 해야 마땅하지 옆사람의 기분을 살피거나 이루어지는 대화의 핵심 내용을 파악할 겨를 따위가 없다.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20분 동안 조수석에 앉은 내가 너의 옆얼굴을 내내 보고 있었던 것을.


 처음에는 일부러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조수석에 아무나 태워도 돼? 여자 친구가 싫어할 거 아니야."


 구레나룻 아래로 땀이 흐르는 것을 보며 내가 물었다. 여자 친구는 그런 거 의미 안 둬. 그리고 우리 자주 못 만나서 걔는 아직 내 차 안 타봤는데. 너는 오랫동안 기다린 좌회전 신호에 심드렁하게 핸들을 꺾으며 대답한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 땀이 깔끔하게 면도한 턱을 지나 셔츠 안으로 느리게 떨어졌다.


"나라면 절대 아무나 못 타게 할 거야. 내 남자 친구 차 조수석에 다른 여자라니, 싫다."

"그러시던가. 근데 그거 싫다고 조수석 뒤에 앉히면 더 이상해. 거긴 상석이라서...... 어우, 갑자기 군대에서 운전하던 거 생각나네."


 부르르 몸을 떨며 농담을 하면서도 너는 한 번도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리고 니가 왜 아무나야. 친구들은 태워주고 태우러 가고 하는 거지. 그러라고 있는 찬데."




 어째서 한 번도 내 쪽은 보지 않는 걸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신호대기가 길어질 때에도 너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가끔 오른쪽 차선으로 끼어들기를 할 때나, 횡단보도 앞에서 우회전을 하며 보행자가 없는지 살필 때에만 잠시 고개를 돌릴 뿐, 내 얼굴 쪽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기절을 한 채로 벨트에 매여있다고 해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야속했다. 고집스럽게 선을 긋는 네가 미웠다. 하지만 내가 운전자가 되어보니 비로소 운전하는 너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운전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옆에서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눈물이 날만큼 빵 터지는 웃긴 이야기에도, 눈은 앞유리에 고정한 채 은은히 미소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와, 너 무진장 집중해서 운전하네!"

"으응? 내가?"


운전대를 잡고 고군분투 중인 나를 보며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감탄했다. 아, 별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친구를 보려 했다. 그러나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친구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내 몸이 그 동작을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팔이 안으로 굽어지고 무릎은 뒤로 꺾이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운전할 때는 앞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 외의 작동을 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대로 차선을 벗어나 엉뚱한 길을 달리다가 가드레일을 처박고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운전을 하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나는 그것을 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한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았다. 옆얼굴에 닿았을 내 시선을 못 느끼진 않았을텐데 날 무시한 것 같은 너를 야속하게 여겼던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스무 살 여름에 면허를 따고,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2년 넘게 복무했던 너도 어려웠을 그 일이, 나는 왜 그렇게도 서운했을까. 왜 나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 같은 몸짓으로 읽어 버렸을까. 잠시 고개를 돌려서 날 봐줄 수 있어? 왜 그렇게 물어보지 못하고


너를 보내야 했을까.


 나는 지금도 운전을 하다가 신호대기로 차를 잠시 멈추게 되면 가만히 고개를 돌려 텅 빈 조수석을 바라본다. 언젠가 네가 내 옆에 앉으면 꼭 이렇게 너를 보고 싶다. 지금은 서툴기만 한 운전 실력이 조금 더 나아지면. 감정 표현이 조금 더 솔직해지면. 궁금한 것을 참지 않고 물을 용기가 생기면.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기꺼이 상처 받을 준비가 되면.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고, 잠시동안 조수석을 보는 연습을 한다. 너를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주 보기를 기다렸던 과거의 그 순간 나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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