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와 나 1
이제는 '도시병'이라고 불릴 만큼 현대인들이 흔히 앓고 있는 피부 질환 '아토피'. 아토피의 정식 명칭은 atopic dermatitis(아토피 더마타이티스)이다.
어린 딸이 영문 모를 가려움증과 발진, 진물로 앓을 동안 피부과와 한의원 문턱을 숱하게 드나들었던 엄마는 그 누구에게도 이 증상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들을 수 없었다.
"우선은 피부병 같네요. 바르는 약을 드려볼게요."
"어떤 특정물질에 반응하는 알레르기일 수도 있습니다. 검사를 해보세요. 원인이 다양하게 있거든요?"
"피부에 문제가 생기면 비염이랑 축농증이 무조건 같이 옵니다. 한약을 지어먹으세요."
"두드러기 같기도 하고. 건선이나 백반증이랑은 다른데, 이게 뭐지요?(그걸 환자에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그렇게 서양 병원과 한방 병원, '시장통 야매 병원'등을 전전하던 엄마는 어느 날, 입소문에 의지해 찾아간 부산의 유명하다는 한 피부과에서 의미 있는 진단을 처음 받게 된다. 의사가 정확히 ‘아토피 더마타이티스로 보입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내 증상을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풀네임으로 줄줄 병명을 말하고 다녔다.
“어머, 너 팔에 그게 뭐니?”
“아 이거요, 아토피 더마타이티스라는 건데요.”
“그게 뭔데? 피부병이니? 알레르기?”
“아니요. 아토피 더마타이티스요.”
“......”
좋은 일도 아닌데 매번 더마 어쩌고 붙이는 게 번거롭고 쑥스럽기도 해서 누가 물어보면 ‘아토피요’라고 간단히 말했다. 물론 30여 년 전에는 아토피라는 단어조차 생소해서 곧장 ‘그게 뭔데?’라고 되물어오기 일쑤였다.
나는 내 증상이 ‘알레르기, 피부병, 두드러기’ 같은 추측 가능하고 궁색한 이름이 아니라 ‘아토피’라는 다소 희귀한 이름인 것에 내심 안도했다. 팔다리 곳곳에 앉은 피딱지와 짓무른 상처를 본 사람들마다 피부병이니? 뭐 잘못 먹었니? 알러지니? 이거 옮는 거니?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두드러기에 뭐가 좋다더라며 자기가 아는 주위의 피부병 환자들의 사례를 늘어놓고, 어떻게 피부병이 완치되었는지 묻지도 않은 간증들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오른쪽 귀로 듣고 왼쪽 귀로 즉시 빼내는 쪽이었고, 엄마는 머릿속 저장장치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담아두는 쪽이었다(그로 인해 내가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는 앞으로 차차 이야기하겠습니다).
엄마, 나는 언제부터 이랬어?
‘아토피’라는 병명을 알기 전 내가 엄마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철없게도 나는 그 말이 엄마의 가슴을 얼마나 무겁게 내리칠지 알지 못했다. 그저 문자 그대로, 내가 언제부터 이런 영문 모를 가려움증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것인데, 엄마 귀에는 ‘왜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낳았어?’라는 책망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는 한숨을 한번 쉬고, 처음엔 그냥 황달인 줄 알았어,라고 입을 뗐다.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얼굴이 노랗다가 붉어졌다가, 뺨에 뭐가 나고, 엉덩이에, 다리에 뭐가 생기고. 그러니까 난 기저귀를 빨리 안 갈아줬나 보다 하고, 그냥 그랬다가 어느 날 병원에 가보니까 그렇다고 그러데.
엄마는 구체적인 단어를 차마 말하지 못한다. 병에 무지하고 아이에게 무심했던 스스로가 한탄스러워서. 자기 몸 아픈 이야기를 흥미롭다는 듯 듣고 있는 작은 딸의 반짝이는 눈이 엄마인 자신을 상처 입혀서. 진즉 알아차리고 치료했으면 이리도 고생하진 않았을 텐데, 무식한 내가 원통하고 미워서. 저 귀신 들린 피부병, 우리 딸 말고 나한테 왔으면 좋았을 것을.
나를 병원에 데려가 어린 내 몸을 이리저리 보여주었을 때, 의사가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지경이 될 때까지 참고 있었을까요? 아기 가요.
워낙 순둥이라서요. 대답하고 엄마는 울었다. 많이 심한 가요? 이건 대체 뭔가요? 엄마가 묻는 동안에도 아기는 조그만 손으로 말없이 몸 구석구석을 긁었다. 기저귀가 젖어도, 배가 고파도 잘 울지 않는 아이가 피부를 긁지 못하게 손싸개를 씌워놓으면 조그맣게 으앵, 하고 소리 냈다고 한다.
꾸준한 관심과 치료가 필요한 병.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그 시절, 엄마는 나를 데리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닐 여유가 없었다. 시간도 돈도 없을뿐더러 치료받을 적당한 병원조차도 근처에 없었으니까.
결정적으로 완치가 가능한 약도 없었다. 엄마는 민간요법을 쫓아다녔다. 매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목초액을 푼 물로 목욕하기. 흑설탕을 피부에 벅벅 문질렀다가 씻어내기 같은. 그런 걸로 증상이 완화될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건 해봐야 했다. 꾸준히 병원을 가고 약을 먹는 것 대신에 증상이 나을 수 있는 무엇이라도. 왜 아토피가 생겼는지,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으므로.
엄마는 딸의 아토피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임무를 맡은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인 듯했다. 딸을 '예쁘게' 낳고 기르지 못한 것을 주위에서 수근덕거릴수록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내가 죄가 많아서 내 딸이 저렇게 태어났다’는 쓸데없는 자책감으로 지옥을 헤매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