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마 Jan 19. 2022

피아노 초보 = 피린이? 'O린이'가 불편한 이유

미숙함이 어린이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제 막 재테크에 눈을 뜬 사회초년생 주린이입니다."

"헬린이 1주 차, 본격 몸만들기 시작!"

"부알못 초짜 부린이입니다. 아파트 구입 관련 조언 부탁드립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소셜미디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어떤 분야의 초보자라고 말할 때 접미사 '-린이'를 붙여 표현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직장인 피린이(피아노를 시작하는 사람)', '요알못 요린이(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요리 초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어린이처럼 서툴다 못해 '신생아' 수준에 맞먹는다고 자조하는 '뜨생아(뜨개질 신생아)'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새로 시작하는 분야 뒤에 흔히 붙이는 '-린이'라는 표현. 표준어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까?


본래 '어린이'라는 단어는 어리숙하거나 서툰 사람이라는 의미는 없다. '어린이'는 '어린아이', '놈', '애'라고 낮춰지던 어린 사람을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춰 부르기 위해 지정된 말이다. 헬린이(헬스+어린이), 주린이(주식+어린이)처럼 '-린이'라는 표현에는 '해당 분야를 잘 몰라서 미숙하다, 부족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같은 말을 쓰는 것은 '나이가 적은(어린) 사람은 곧 미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을 굳건히 하고, 더불어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무심코 어리숙한 존재라고 얕잡아보는 연령주의적 편견을 야기한다.


어린이는 미숙한 존재가 아니다.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린이'라는 말이 불편하긴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어린이는 미숙한 존재다. 서툴고 연약하고, 그래서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이다. 그러나 그게 어린이가 가진 유일한 특징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어린이는 엄연히 존중받아야 할 인격적 존재다.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해서 서툴고 실수가 잦은 게 왜 '어린이' 같은가? 어린이를 대표할 성질이 '미숙함', '민폐'밖에 없는가? 어른도 서툴고 헤맬 수 있다. '-린이'라는 말을 붙여서 스스로를 희화화시키거나 멋쩍음을 해소하려는 건 비겁하다.


스스로를 '-린이'로 자처하며 조심스럽게 조언을 구하는 어른들은 얼마나 살기 편한가. '등린이(등산 초보)라서 체력이 달리네요', '축린이(축구 초보)라 드리블이 아직 서툴러서요' 같은 말로 밑밥을 깔아놓고 실수하고 넘어지기 쉬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어이없는 짓을 해도 이해해 달라고 말하거나 많은 지도편달 바란다는 뻔뻔한 당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스스로를 '-린이'로 지칭하며 '잘 모르니까 봐줘요'라고 넉살 좋게 떼쓸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말 '어린이'들은? 집에서는 양육자에게,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길거리에서는 늘 이유 없이 화가 나있는 어른들에게 끊임없이 불러세워지고 잔소리를 듣는다. '인생초보'인 어린이는 연장자에게 '나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주기 바랍니다'라고 부탁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했다간 어린 녀석이 건방지다고 야단만 맞을 뿐이다. 운이 좋아서 어린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어른을 만나야지만 내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배려를 받을 수 있다. 진짜 '어린이'가 자신의 서툶을 큰 소리로 지적당하지 않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린이'라는 말은 어린이를 위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어린이가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


"비하할 의도가 아닌데? 내가 잘 못하니까 '-린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하는 건데 왜?"


혹 어떤 어른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피부가 검으니까 흑형이라고 하는 건데 왜?', '말을 더듬으니까 장애인이라고 하는 건데 왜?', '운전을 못하니까 김여사라고 하는 건데 왜?'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어떤 숨은 의미나 비하할 의도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해도 편견과 차별의 표현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나아가 혐오 표현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것도.


'-린이'라는 자학적 표현은 어린이가 만들지 않았다. '어린이는 서툴고 실수 투성이고 민폐 덩어리라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경고를 내포한, 어른들이 만든 콘크리트 벽 같은 단어다. 일부 나쁜 어른들은 '노 키즈존'이라는 해괴한 시스템을 만들어 어린이를 당당히 차별하고도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잼민이'나 '급식충'같은 말을 생성해내어 어린이들을 골치 아픈 존재나 사고뭉치로 뭉뚱그려서 매도하기도 한다. '-린이는 잘 모르면 빠져있어'같은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함으로써 어린이는 구성원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고 분위기를 흐려서는 안 되는 존재로 억누른다.


어린이의 억압된 삶에 비해 '-린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어른의 삶은 그리 팍팍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어른이 '-린이'라는 말로 자기를 낮추고 엄살 부리면서 버거운 취미 생활과 공부를 해내려고 노력할 동안 진짜 어린이는 자신의 존재가 어른들 위주로 된 엄숙한 분위기를 망치는 방해꾼이 되지 않도록 숨죽이고 눈치를 살핀다.


이 세상은 어른 중심으로 돌아간다. 자동차는 너무 빠르게 다니고 책상 모서리는 뾰족하고 간판은 높은 곳에 붙어 있다. 어떤 식당은 단지 내가 나라서 입장을 거부한다. 추위를 피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시설을 이용하겠다고 해도 저지한다. 내 보호자가 공짜로 그러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돈을 내겠다고 해도 받지 않을테니 썩 나가라고 한다. 어린이는 엄연한 손님도 아니고 존중할 인격체도 아니라고 한다. '-린이'라는 명찰을 단 어른은 미숙함을 담보로 엎어지고 깨지고 실수해도 괜찮은 면죄부를 받지만 어린이는 식당과 카페에서 공중도덕을 배우고 싶어도 출입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다양한 세대와 장소를 체험할 기회를 얻지 못하니 사회에서 배워야 할 예절도 시민의식도 익힐 수 없다.


'피린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인지부조화가 온듯 손과 발이 따로 노는 엉성한 연주모습? 진짜 '피린이'가 어떤지 궁금하다면 오후 4시에 우리 학원에 와서 어린이들이 맹렬히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한번 보기를 바란다. '피아노 치는 어린이'들은 스스로를 '피린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피아노를 치는 어린이일 뿐이다. 잘하든 못하든, 초급이든 중급이든 그냥 열심히 자기 곡을 연습한다.


연습 중간에 딴짓을 하고 싶고 시간도 때우고 싶어서 물을 마신다는 핑계를 대고 정수기 앞으로 달려가거나 급하지도 않은 볼일을 보러 굳이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려고 꾀를 부리든, 잘 안 되는 한 두 마디가 열 받게 하든 그냥 그대로 피아노를 칠 뿐이다.


그들은 피아노를 못 치는 자기를 부끄러워하거나 양해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연습실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죄송해하거나 이런 것쯤 거뜬히 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민망해하지 않는다. 자기 눈높이에 맞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스스로를 '피린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는 '피아노 치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는 그런 표현을 쓰지 못할 것이다. '-린이'라는 말은 뭔가를 못 한다는 말을 전제로 하지만 어른들보다 창의력과 예술성, 지적능력이 뛰어난 어린이는 셀 수 없이 많다.


어른이 스스로를 '-린이'라고 칭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이유는 어린이는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뭔가 서툴지만 귀엽고 무해한 존재여야만 한다고 어른들 기준으로 어린이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정작 어린이는 스스로를 작고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엿하고 강하고 개성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어른들 짐작처럼 마냥 순진하고 어수룩하지도 않다. 외부에서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면 칭찬받기 위해 태도를 꾸며내기도 하고, 강요받는 행동이 있다면 꾸중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꾹 참고 고분고분한 척할 수도 있는 영민한 존재들이다.


어린이는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하며 유약한 존재다. 그래서 어른에게 보호받으면서 사회 규범과 질서를 배워야 하는 사회적 약자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어린이를 만나면 먼저 인생의 여러 길을 걸어본 사람으로서 삶의 경험치가 적은 사람을 환영하고 응원한다는 신호를 보내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린이'라는 말에서 마땅히 어린이에게 베풀 관용이 느껴지는가? 지지하는 마음을 전하기는커녕 어린이 스스로도 '나는 아직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기게끔 잘못된 방향으로 의미가 굳어져 가고 있지는 않은지.


어린이는 얕잡아보아도 괜찮은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격적 주체다. 어떤 일에 초보라고 '-린이'라고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 어린이라는 말은 어린이에게만 사용하자. 어린이라는 깨끗한 단어를 오염시키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알고 나니 더 아파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