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호 Feb 25. 2019

과정중심평가를 불안하게 보는 이유

역량교육과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 관련

1. 서론 :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성패를 좌우하는 과정중심평가


  2017년 초등학생 1-2학년부터 시작된 역량 중심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올해 초등학교 전체, 중․고교 2학년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 역량은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교육과정을 수식하는 ‘역량 중심’이라는 말은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내용이 지식보다는 수행 능력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러한 역량 중심 교육과정은 21세기 직전인 1997년에 고시된 7차 교육과정 시기부터 구체적으로 추진되었다. 7차 교육과정 적용 이후 교육의 내용, 방법, 그리고 평가는 이전의 6차 교육과정 시기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타났다. 6차까지를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 7차부터는 역량중심 교육과정으로 크게 구분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6차와 7차의 교육과정 방향은 내용 면에서는 지식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교육방법 면에서는 교사 중심의 수업에서 학생 중심의 학습으로, 그리고 평가 면에서는 지식의 암기 위주에서 수행 과정 위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과정의 ‘목표와 내용’은 새롭게 ‘성취기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0년을 기준으로 세기적 변화에 맞춰 새로운 교육의 방향이 설정되고, 이에 따른 새로운 교육정책들이 도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론의 방향이 정반대라고 하더라도 오랜 역사를 통해 효과성을 인정받고 있던 교육이론들이 새로운 이론 틀로 교체되어 교실 현장에 안착되기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교육에서는 점진적인 변화와 연속성의 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내용 면에서 창의력이나 의사소통 능력 등과 같은 21세기 핵심 역량의 배양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도록 지식교육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 교육방법 면에서는 학생들이 체험 중심으로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이나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을 위해서는 교사의 직접지도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인정해야 한다. 교육평가 면에서 수행과정을 관찰하여 즉시 피드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단원이 끝난 후 또는 학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종합적으로 학습한 내용을 점검하여 보완해 주는 방법도 필요하다.

  앞에서 논의한 교과 내용과 수업 그리고 평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교과 내용을 교과 교육과정으로 보아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연계 또는 일체화를 논의하기도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과 내용은 역량을 중시하는 성취수준이라고 보기 때문에 교육과정-수업-평가에서 교육과정은 성취수준을 뜻한다. 교육과정 연구기관인 한국교육과정가원은 7차 교육과정 이후부터 성취수준과 역량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왔으며, 특히 2009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하면서 교육과정 총론의 6개 핵심역량과 이를 기본으로 교과의 특성에 따른 교과별 5개 내외의 교과역량을 개발하여 2015 개정 교육과정 문서에 포함시켰다. 나아가 성취수준과 교과역량을 구현하기 위해 학생 체험중심 수업 활성화를 적극 추진했으며, 이는 혁신학교 운동과 연계되어 배움중심 수업 방법으로 교실 수업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기존의 지식 위주 교육과 교사 강의중심 수업이 쉽사리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상황이다. 역량중심․배움 중심 수업의 정착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식 암기 위주의 선택형 평가를 지적한다. 이에 따라 수행평가, 학습을 위한 평가, 성장중심평가로 불리는 과정중심평가에 대한 연수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2. 과정중심평가 연수에 대한 질문 그리고 무응답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성공적 정착을 위하여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번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과정중심평가에 초점을 맞춘 대규모 교원연수를 실시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열린마당-묻고답하기-교육평가)http://www.kice.re.kr/boardCnts/view.do?boardID=10015&boardSeq=5033906&lev=0&m=040204&searchType=S&statusYN=C&page=1&s=kice에는 서울지역 연수원에서 평가원 강사들로부터 연수를 받았던 한 교사의 질문(제목: 과정중심 평가문항 연수에 대한 문제제기)이 탑재되어 있다. 그는 과정중심평가, 나아가 역량중심 교육과정 전반에 대하여 연수를 받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는 16개 주제에 대하여 질문했다.

  예를 들어, 성장평가에서 무엇을 성장시킬 수 있는지 방향이 모호하지 않는가, 단순 지식이 아니라 역량강화가 교육평가의 목표가 될 수 있는지, 서술 논술과 수행평가 중심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성취도 평가는 과거와 같이 선다형으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과정중심평가에서 개별 교사가 평가기준을 설정할 때 발생하는 교사별 등급 분포 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이다. 과정중심평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 예를 들어,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실생활 적용 역량이라는 근거가 있는지, 지식 없이 적용능력 습득이 가능한지, 핵심역량을 키우기 위해 기존의 지식 전달 교육을 폐기해야 하는지 등이다. 질문을 한 교사는 교육과정과 관련 이론을 개발한 전문가들로부터 연수를 받았지만, 교육과정 실행자인 교사 입장에서는 의문이 많이 발생하여 과정중심평가나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지식 교육이나 성취도 평가 등 기존의 교육 영역에 대해서 오히려 혼동이 가중되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교육과정 관련 이론을 개발하고 시․도 교육청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연수자료까지 개발하여 제공한 전문기관은 질문 다음 날 “문의주신 내용의 연수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주관하였으며, 해당 교육청에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의외의 답변을 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질문은 교육과정을 실천하는 학교현장의 어려움을 잘 드러낸 것으로 연수주관 교육청에 답변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추가적인 답변란에 “문의 주신 내용은 확인 중에 있습니다.”라는 언급이 있지만 한 달 이상 지났고 123명이 조회하였음에도 여전히 답변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혹시라도 해결방법을 찾아 학교 현장에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교원연수를 많이 시킨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교육과정 이론이 학교 현장에 정착되기는 어렵다. 이는 교사들의 수업의 질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초래할 수도 있다.


3. 역량중심 교육과정과 과정중심평가로 인한 기초학습 소홀 우려


  교육과정 개정이나 혁신적인 수업방법 적용, 그리고 새로운 평가 제도 도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학생들의 지식 수준을 기존의 방식보다 더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이 영역들에 대하여 연구학교 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나 일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평가의 어려움과 학력 저하 우려를 큰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역량중심 교육과정 연구학교를 운영한 교사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행하고 분석한 한 연구(이주연, 2019: 15)는 연구학교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경험하는 중요한 고민 중의 하나가 역량을 강조하여 교과 간 연계․통합 수업이나 학생의 참여 활동을 강조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이론 및 교과 내용이 소홀하게 되어 ‘학력이 낮아지게’될까 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평가와 관련된 문제가 크게 고민되고, ‘교과 진도’에 대한 부담도 크다고 밝혔다. 기존의 선행연구 결과들에서도 역량 및 수행을 강조할 경우, 상대적으로 지식교육이나 교과의 학습내용이 간과될 위험을 지적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다.

  교과별 과정중심평가에 관한 연구(반재천 외, 2018: 117)에서는 과정중심평가는 창의력과 사고력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의 68% 이상이 도입에 찬성하고 있지만 문제점도 많다는 점을 밝혔다. 과정중심평가를 실시할 때 우려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물리적 시간 부족(93.2%)이며, 다음으로 객관성과 공정성 우려(89.1%), 평가 전문성 부족(84.9%)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이 보여 주듯이 학력향상을 목적으로 도입된 역량중심 교육과정과 과정중심평가가 의도와는 정반대로 교원들에게 학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불안감을 키운다거나 국가 수준 학업서 취도 평가 결과 추이가 학력 저하 경향이 실제적으로 나타난다면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4.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의 과제


  교육과정 성취기준, 수업, 그리고 평가의 세 축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학교 현장에 의욕적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이 세 축은 관련성 차원을 넘어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관점이 주도하고 있다. 지식보다는 역량 중심으로, 교사의 설명 중심에서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 중심으로, 그리고 암기 위주의 지필평가에서 과정중심 수행평가로 일체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일체화에 소극적인 교원에 대해서는 교육과정 문해력과 평가 문해력과 같은 교직전문성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파악하여 일체화 기법 연수를 이수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주체인 교사, 객체인 학생, 매개체인 교육과정에 따라서 그리고 학부모와 지역사회 등 교육환경에 따라서 접근 방식이 너무나 다양하다.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가 역량중심-학생중심-과정중심의 일체화로만 시도된다면 다양성이 허용될 수 없고, 교육적 효과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교육효과를 높이는 수업 유형에 관한 연구를 분석한 해티(Hattie, 2009: 206)는 교사중심 직접교수법(direct instruction)의 학력향상에 대한 효과크기가 0.82로서 평균 0.40을 훨씬 상회하고 있지만, 학생중심 문제기반학습(problem-based learning)의 효과크기는 0.15로 평균보다 크게  낮다고 분석했다. 교사가 설명을 통해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이 체험을 통해 학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통념과 달리 수업에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기초․기본 학력을 갖춘 상위 수준의 학생들에게 학생중심 수업이 효과적인 만큼 먼저 학생들이 기본학력을 성취할 수 있도록 교사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평가와 관련하여 해플보어 등(Heflebower et al., 2019: 81)은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과정평가와 종합평가 두 가지를 모두 활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과정평가에 중심이라는 용어를 추가하여 과정중심평가로 할 경우 진단평가나 종합평가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데이터 산출 등 유용한 측면이 많은 선다형 평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과거의 정책 사례와 비교할 때, 현재의 역량중심 교육은 30년 전인 1986년 영훈초등학교에서 시작되었던 열린교육과 20년 전인 1998년 <교육비전 2002: 새 학교 문화 창조>의 핵심 교육전략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하다. 당시의 열린교육에서도 창의성과 자율성, 교과 간 통합과 융합, 교수(teaching)가 아닌 학습(learning), 그리고 자기주도적인 소집단 협동학습이 강조되었다. 새 학교문화 창조를 위한 개혁에서 창의성 및 인성교육 내실화를 위한 수행평가, 학생부 상세 기록, 체험학습을 포괄하는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가 강조되었다(최호성, 1999: 45-47). 열린교육과 새 학교문화 창조 전략은 일시적인 열풍이 사라진 후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었고, 이제는 수많은 교육 관점과 방법의 하나로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의 경향과 유사한 과거의 사례를 통해 1999년 9월 30일 연세대에서 개최된 한 교직단체의 참교육 토론회(주제: 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직후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공교육 위기, 교실 붕괴, 학력위기 현상의 원인을 떠올려 본다. 기본적인 교과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창의성만을 강조한 것, 지식내용보다는 학습하는 방법을 더 강조하는 것, 학생의 주도성 신장을 위해 수업과 인성지도에서 단순한 조력자로 전락한 교사의 권위 약화 등이 문제였다.

  개혁이나 혁신 정책은 그 방향이 옳다면 관계자들 모두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서둘지 말아야 하고, 점진적으로 추진하면서 문제점을 찾고 보완해야 한다. 추진 기간이 장기적이며, 관련 대상이 다양하고 대규모인 교육정책에서는 특히 그러해야 한다. 교육과정과 수업방법 그리고 평가체제는 교육정책의 핵심 영역으로 쉽게 바꿀 수 없고, 쉽게 변화되지도 않는다.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12년간의 초․중․고 보통교육은 체계적이고 누적적인 교육과정 체제에 따라 일관성 있게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교과 전문가로서 습득한 전문지식과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한 효과적인 수업을 위한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쌓이고, 그 쌓인 지식에서 더 큰 지식이 나온다. 창의력도 기초학력에서 시작된다. 정기적으로 학습정도를 확인하고 보완해 주기 위한 지필평가도 필요하다. 교육이 유행만을 따라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반재천 외(2018), 교사별 과정중심 평가에 대한 교사의 인식, 교육과정평가연구 21(3), 101-130.

이주연(2018), 역량기반 교육과정 연구학교 교원의 경험 분석, 교육과정평가연구 21(4), 01-20.

최호성(1999), 교육과정과 수행평가의 적용, 교육과정연구 17(1), 45-67.

Hattie, J..(2009), Visible Learning, Routledge.

      http://www.evidencebasedteaching.org.au/hattie-his-high-impact-strategies/

Heflebower, et al.(2019), Teacher’s Guide to Standards-based Learning, Marzano Research.


* 참고

본 글은 민간 교육연구기관인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서 격주로 발간되는 저널의 <공교육 희망-칼럼>으로 2019년 2월 22일(수) 실린 칼럼입니다.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wr_id=100886

작가의 이전글 학생들의 교과 어휘력 실태와 대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