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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Nov 05. 2022

마감기한을 넘겨버렸네.

INTP의 직장생활 편

"현서 씨, 이번 회의 때는 우리 회사 복지 문화 아이디어 좀 디벨롭해볼까?"


인사팀 막내의 의견을 얼마나 존중해줄까,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 보여 의욕이 상실됐다.

일단,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메일함을 열어 한 가지씩 일을 쳐냈다. 

곧이어 전화가 울렸다. 


"네! 인사팀 박현서입니다."

"네, 담당님. 저 000 매니저예요."


뭐야? 어디 매니저지? 지역과 부서가 연결되지 않는다.

젠장, 얼굴도 안 떠오르고. 우리가 무슨 이슈가 있었더라.


"네,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저희 매장......"


아, 조직도 보고 좀 더 공부해야겠다.

정말, 이름하고 매장, 얼굴 절대 매치 안된다. 돌대가리.

급하게 해야 할 일들을 먼저 처리하고 숨을 돌렸다.

여유가 좀 생겨서 평소 관심 있던 대기업의 기업 문화를 서칭 했다. 검색을 하자마자 다른 일들이 밀고 들어왔다. 그것부터 하고 나니 퇴근 시간이 왔다. 


다음날, 내게 맡겨진 첫 번째 프로젝트를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아 출근하자마자 어제 찾다가 못 찾은 복지를 좀 더 알아봤다. 자기 계발 비용 10만 원씩 지급, 복지 포인트 지급, 조기퇴근제, 인센티브제,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것들이 눈에 보였다. 만약 하게 된다면 이로울 점들 자료조사를 하고, 뿌듯하게 창을 닫았다. 우리 회사에도 도입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틀을 좀 만들어야 하는데, 귀찮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시작해볼까?

아,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다. 점심 먹고 오니 일이 몰려온다. 복지 문화는 무슨. 생각해보니 자료조사가 좀 부족한 것 같다. 다시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내일쯤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하려면 완벽하게 제대로 하고 싶다. 


그나저나 중간 보고를 드려야 하는데, 귀찮다. 피곤하다. 또, 뭐라고 태클 걸 텐데. 그냥 말 안 해야겠다.


앗, 자료조사 정리해야 하는데 잊었다. 반복되는 업무 처리하고, 기분 좋게 퇴근하는 길에 생각이 났다. 


이제 정말 시작해야 한다. 세부사항을 어떻게 짜야하지? 예산은 어디서 마련하지? 어떻게 설득시키지?

ppt는 또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일단 ppt 템플릿부터 다운로드해야겠다. 

복지 문화를 왜 해야 하나?부터 찾아볼까? 역사부터, 장점까지 써봐야겠다.

아,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일을 미루고 닥쳐야 할까, 자괴감에 휩싸인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 것 같다.


아, 과장 놈은 왜 나한테 이 딴일을 시키는 걸까? 강요받는 이 상황이 정말 싫다.


아무래도 일주일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시간을 늦춰달라고 하기엔 너무 늦었겠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못한 채로 급하게 발표하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닐까?


"현서 씨, 내일까지 발표할 수 있는 거야? 일은 어떻게 되고 있어?"

사고의 정지. 갑자기 들어온 과장의 중간보고 요청으로 식은땀이 주룩 난다.


나는 대충 얽히고설킨 계획들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과장의 표정이 애매하게 바뀐다.


"이렇게 들어선 모르겠다. 아무튼 잘 준비해."


당일 아침 9시. 오합지졸 자료들을 만들어 급하게 메일로 전송한다. 

전날 저녁 6시까지 넘겼어야 하는데 마감기한을 넘겨서 또 한소리를 들었다.


역시나, 회의시간에 발표를 하니, 반응들은 예상대로다.

"아~ 그거 예전에 해본 거야. 현서 씨는 잘 몰랐겠지. 신입이니까. 

잘 정착은 안됐어. 그리고 예산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서 사장님이 싫어하셨어."


"어쨌든 고생했어."


기대도 안 했다. 회사 놈들아.

돈 드니까 부담된다는 거잖아. 

그래도 그렇지, 복지가 어쩜 제대로 된 게 하나가 없냐.


"우리 점심 메뉴 뭐 먹을까? 이런 건 막내가 알아봐야지."

일제히 나에게 시선이 쏠린다.

'아, 그냥 맨날 가는 중국집이나 가라. 어차피 네들이 먹고 싶은 데 갈 거잖아.'

"그래, 현서 씨 센스 한번 보자."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어떤 걸로?"

"글쎄...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어떠세요?"

"거긴 너무 멀어. 비싸고."

"어떤 것 드시고 싶으세요?"

"000으로 가자."


인간아, 내가 말했던 곳보다 더 멀고, 비싸다.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나한테 묻질 말고 그냥 네들끼리 정해라.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맥주를 골랐다.

안주 몇 가지 사는데 만원이 훌쩍 넘었다.


좋아하는 유튜브의 영상을 틀어놓고, 오징어 다리를 뜯으며 맥주를 마셨다.

돈만 아니면, 이런 일 정말 하기 싫다.


월급 받으려고 9시에서 6시까지 출퇴근해야 하다니. 

오늘도 혼자서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내 인생의 의미는 어디 있는 걸까?

회사 일 보다 뭔가 세상 가운데 일어나는 복잡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내 타고난 재능을 사용할 만한 기회는 없는 걸까? 내가 행하는 일련의 것들이 인류 전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뿌듯함을 

좀 느끼고 싶다.


정말, 안 맞는다. 회사생활.

맥주 캔을 구긴다. 얼른, 자야지. 출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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