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an Aug 28. 2022

밥 먹으러 회사 나오세요.

회사를 다니는데 월급이 안 나와요. 이 회사를 다녀야 할까요?

며칠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생활비가 부족해서였다. 돈 벌 곳을 구하다가 매력적인 회사를 발견했다. 한 달 기본급 300만 원, 열 시부터 여섯 시까지, 모델하우스 인포메이션 직원 구합니다. 경력 무관, 신입 환영, 편하게 근무할 수 있습니다.  이 문구를 보고 든 생각은 나도 할 수 있겠다였다. 나는 입사지원을 하고 다음날 회사로부터 면접 제의를 받았다.


면접관은 푸근한 인상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그는 정장 차림에 가슴에는 회사 배찌를 달고 있었다. 그가 설명해주는 업무는 간단했다. 모델하우스 손님에게 견본용 주택을 설명해주고 분양상담사가 자리로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되물었다. 전 인포메이션에 지원했는데요? 그러자 그가 난감한 듯 말했다. 인포메이션은 이미 자리가 찼어요. 그 말을 듣고 일어났어야 했는데 왠지 그의 다음 말이 궁금해져서 잠자코 앉아있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와 나의 대화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서른 하납니다.

무언가 도전하기에 좋은 나이네요. 우리 일은 한 달 일하면 기본급으로 300만 원이 나가고, 여기에 계약건이 발생될 때마다 00만 원이 더 지급돼요. 모델하우스 분양이 과연 1건만 나올까요? 일주일에 사람이 몇 명이 올 것 같아요?

열 팀은 오지 않을까요?

열 팀으로 가정하면 몇 건이나 계약이 성사될까요? 1건 정도라고만 봅시다. 그럼 한 달에 4번. 그럼 000만 원이겠네요. 기본급 300+000만 원. 벌써 얼마죠?

000만 원이요.

밖에 나가면 사무직 기본 월급 200만 원 주는 곳이 수두룩 해요. 그런데 여긴 얼마죠? 00 씨. 미혼이라고 하셨죠? 앞으로 결혼도 하시고, 집도 사셔야 하는데 월급 200으로 살 수 있을까요? 한 달 열심히 일하면 2천만 원 이상도 벌어가는 곳이 여기에요.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네.

하지만 여긴 회사니까 00 씨가 그런 역량을 가졌는지 파악도 해야 하고, 교육도 받으셔야 하니 교육 일정 안내드릴게요. 잘 따라오셔서 00 씨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길 바랍니다.


떼돈 보단 월급 3백에 눈이 돌아갔다. 3백이 쉽게 벌리는 돈이었구나. 내가 어렵게만 생각했나 보다. 3일간 교육받고, 4일 차에 그 환상은 깨졌다. 최종 면담 때의 일이다.


00 씨, 4일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최종 면담이네요. 월급은 두 가지 선택하시면 됩니다. 첫 번째 기본급 300에 인센티브, 두 번째 기본급 0, 인센티브제입니다. 우리 일은 열심히 하는 만큼 분명히 성과가 있어요. 제가 봤을 때 00 씨는 숨겨진 역량이 있는데 본인이 자꾸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잘 이끌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올 인센티브제는 어떠세요? 이 업무는 사실 두 옵션의 갭차가 커서 첫 번째 안을 선택하신 분들은 단기간 퇴사를 하세요. 하루에 계약은 몇 건씩 나고 자기는 이거 버는데 옆의 동료는 몇 백을 더 버니까요. 인생 공부한다 생각하고 올인해봐요. 이거 1년 해도 본인 나이 서른둘이잖아요. 잘 안된다고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예요.


전 기본급 300 하겠습니다.


왜 이걸 선택하겠다는 거예요? 답답하네. 아니 본인 선택이니까 내가 강요할 건 아니지만 정말 불쌍해서 그래요. 본인을 못 믿어서 그러는 거예요? 아님 나를 못 믿어서 그러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잘못되고 있다고 판단함, 현실 즉시) 저를 못 믿어서 그럽니다. 계약이 안 나오면 생활이 안되니까요.


그러면, 회사는 이익을 내야 하는 곳인데, 이런 직원과는 함께 갈 수 없어요. 본인은 회사보다 병원을 찾아가 봐야 될 것 같아요. 불안함이 쌓여 있어서 이런 마음 상태론 어딜 가도 성과 내고 일하기 힘들어요.


네, 그럼 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델하우스를 나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사회생활을 5년이나 했는데도 아직도 세상 물정에 이리 어둡다니, 그런 생각에 미치자 내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밥은 줄 테니 계약 나오기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담당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부자 될 기회를 놓친 걸까?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그럼 내 적금은? 핸드폰 요금은? 보험료는? 관리비는 누가 내줘? 


솔직히 믿고 싶은 제안이었다. 월 2천을 버는 그 능력자가 내가 되고도 싶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 아니던가. 성공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월 2천 벌고 몇 개월 놀다가 또 몇 천 벌고 집도 사고, 가방도 사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나라고 못할 것도 없잖아. 꼭 다달이 벌어야만 돈인가, 한꺼번에 왕창 벌어서 아껴 쓰면 되지.


그러나, 언제까지 부모님께 기댈 순 없다. 한번 대박 날 걸 기대하기엔 부모님의 허리가 많이 굽으시고 머리가 희끗희끗 물들어가기 시작하셨다. 내겐 시간의 여유가 없다. 작은 돈이라도 착실하게 모으는 것이 우리 형편에 더 어울리는 일이다. 


월급이 안 나올지도 모를 회사를 다니기엔 부담해야 할 것들이 너무 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상실함과 슬픔이 겹쳐 우울해졌다. 집안이 괜찮았다면 한번 도전했을 법한 일은 아니었을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면서 자괴감이 밀려왔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 회사보다 부모님 탓을 하고 있는 내게 화가 났다. 키워준 부모님을 욕하면서 현실의 굴욕감을 이겨내 보려는 내가 너무 싫었다.


한편으론 나이 먹어서 현실 경험을 더 한 것이라고 그렇게 위안을 삼아보자고도 생각했다. 잔잔한 물결만 맞다가 이런 파도도 맞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렇게 넘겨보기로 했다. 


나와 입사 동기가 될 뻔한 그녀는 올 인센티브제를 선택했다고 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믿고 회사를 믿어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녀의 선택이 틀렸다고 보진 않는다. 나완 다른 것일 뿐. 그녀는 자신감이 가득했고, 열정이 넘쳐났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눈을 반짝였고 그 속에 활기가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돈은 그런 사람들이 벌 수 있는 거라고. 나 같은 사람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그런 기운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 주변에는 내 선택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여있었다. 아마 사는 환경도 전부 비슷할 것이다. 근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그런 사람들. 신세계를 보며 별천지를 꿈꾸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허탈함이 꽤 컸다.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관계와 조향의 닮은 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