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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Aug 29. 2022

엄마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

고해성사할 것이 있습니다만,

월요일 오전 7시 15분 , 침대 맡에 두었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출근을 위한 기상 벨이었지만 이건 보여주기용일 뿐이다. 오늘부터 난 회사에 갈 필요가 없다. 토요일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오전 6시, 아니 그보다 이른 시간 엄마는 진작 깨어 핸드폰을 통해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있다. 내 아침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 대기 중이다. 나는 어젯밤 엄마에게 나의 퇴직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두려웠다. 


세수를 하고 화장실 거울에 얼굴을 확인한다. 초췌하고 생기 없는 눈알이 굴러다녔다. 눈을 아래로 내리고 화장실 불을 끈 뒤 엄마가 차려둔 밥상을 힐끗 보았다. 자리에 앉아 숟가락과 젓가락을 건네는 엄마의 눈길을 슬쩍 피했다. 


요 며칠 엄마는 발걸음 가벼웠다. 가끔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티브이를 보는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내가 흠칫 놀라 쳐다보면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자칭 프리랜서라며 알바만 했던 딸이 정신 차리고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출근이란 걸 하니 걱정을 한시름 덜으셨을게다.


나는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출근하듯 집을 나섰다. 엄마의 응원은 덤이었다. 카페에 도착해서 아이스라테를 시키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한숨을 내리쉬었다. 할 말을 정리해야 했다. 


"엄마, 사실은..."

"있잖아. 엄마 나 믿지?"


이런 바보 같은 말만 머릿속에 뱅뱅 돌았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라 날 움츠러들게 했다. 


"네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팽팽 노는 거지. 엄마가 다 지원해주니까 직장 구할 생각도 안 하는 거 아니야?"


네 맘대로 할 거면 이 집에서 나가. 나가서 살아.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게 더 나아. 

적금 금액을 더 늘려야 해. 새 통장 만들었어. 엄마가 얼마씩이라도 부어줄게. 잔말 말고 말 들어. 

저금을 더해야지. 돈 아껴 써야지. 이런 데다 돈을 써. 이런 거 아껴서 저금을 해.

아르바이트는 무슨 아르바이트야. 그까짓 거 벌어서 어떻게 살 거야.


목줄을 잡고 개를 산책시키는 주인을 본 적이 있다. 개가 풀냄새를 맡으려 조금 방향을 틀자 주인은 줄을 당겨 강아지의 행동을 막았다. "어허, 가자, 코코." 찰나의 순간. 내 목을 감쌌다. 목을 옥죄는 압박감에 숨이 막혔다.


개도 버려질까 두렵단 생각을 할까. 받던 사랑을 잃는 슬픔을 알까. 주인이 실망하면 불안을 느낄까. 개와 주인은 어느 정도의 소통과 교감을 하며 어떤 관계의 언어를 주고받을까. 나는 엄마와 그런 감정의 유대관계를 공유하곤 있는 걸까. 우린 건강한 모녀 사이가 맞나?


나 힘들어, 솔직히 좀 불안해. 다른 직장 빨리 못 구할까 봐. 엄마가 나 믿고 지켜봐 주면 나 뭐든지 해볼게. 해보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게. 이런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나 편하자고 이 말을 툭 던지면 나는 오늘 죄의식에서 벗어나겠지만 엄마는 잠을 설칠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그럴 수 없다.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는 심정으로, 나는 내 방에서 엄마가 있는 곳을 등지고 글로 나의 죄를 밝힌다. 언제부턴가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괜찮다는 말을 안 하고 지낸지 오래됐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잊히길 바라는 거다. 용서할 수 없더라도 같이 살아야 하니, 미움이 생겨도 묻어두는 거다. 


오늘 밤도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어릴 때는 하루를 넘기는 비밀이 없었는데 어째 커갈수록 더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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