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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작용 Jan 20. 2020

남해 여행은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했다.

2019년 12월 26일 - 27일. 극사세, 남해여행


남해 여행은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했다. 


언제부터 여행이 이렇게 변했을까? 남들 다 가는 곳에 점하나 찍고 오는 여행이 무슨 여행이라고.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이 비슷비슷한 코스로 비슷한 것을 먹으며 돌아다니다보니, 여기서 만났던 낯선 여행자를 저기서 또 보는 일도 벌어진다. 수학여행도 아니고, 뭐 이리 지루한지.     


비 오는 날의 독일마을은 좀처럼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았다. 그래도 잔뜩 기대를 하며 흑맥주 한 잔을 시켰다. 한잔에 팔천원. 목으로 넘기려니 텁텁하고 풍미가 없다. 쭈욱, 기운이 빠졌다. 카페 의자에 앉아 몰려드는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독일마을 산책이나 해볼까 하고 밖으로 나갔다. 겨울 공기가 제법 차갑다. 차가운 공기로 폐를 부풀려보지만 테마파크 같은 관광지의 지루한 풍경은 도저히 매력적이지 않다. 오렌지 빛이 도는 황토 지붕은 기와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다. 부서질 듯 연약하고, 인공적인 광택이 값싸 보이는. 멀리 구불구불 돌아가는 곡선이 그나마 아름답다. 지루함에 ‘시장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언니는 단체여행에서 궁시렁거린다며 혼을 냈지만 차를 돌려 시장으로 향해주었다. 

 

   


남해 전통시장에 내렸다. 비릿한 생선냄새가 코를 가득 메우다가도, 곧 겨울바람의 상쾌함이 폐를 채운다. 무색무취의 독일마을의 우울함이 말끔히 가시는 냄새. 신이나 시장의 길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부부에게서 옥돔 회를 사게 된 것이다.     


‘부부신가요?’ 라고 물으니 불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아니요, 아니요, 부부 아니다, 법정 동거인. 동거인.’ 하며 세차게 고개를 젓는 모습에.


‘어라, 실수했나?’ 싶다가도, 서로를 쳐다보며 베시시 웃는 모습에 ‘부부 맞구만’하고 생각했다. 가만 보니 남매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부부가 꼭 닮았다. 얇고 뽀얀 피부라든가, 발개진 볼, 웃을 때 눈가에 잡히는 주름, 그리고 산발인 머리카락이 닮았다.     


아내는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다.


두 평 남짓한 가게 뒷벽으로 장사에 필요한 비닐봉지, 휴지와 온갖 집기가 어지럽게 걸려있는 사이, 모네, 에곤 쉴레, 반 고흐의 그림엽서가 붙어 있다. 

‘아 그림을 좋아하시는 구나’ 하니, 남편이

‘정신없습니다. 집에도 그림 뽑은거 천지에요.’ 하며 질겁을 했다.     


남해 사투리는 처음이다. 타지인의 귀에는 이북 사투리처럼 낯설다. 옥돔에 듬뿍 초장을 찍어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술을 넘긴다. 투닥투닥 다투는 부부의 대화가 귀를 간지럽히고. 내 얼굴에도 미소가 꽃 피었다.      


사실 여행은 이게 다가 아닐까.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 아내의 사랑스러운 눈웃음을, 남편의 장난기 어린 머리카락을 그림에 다 담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내 솜씨가 성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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