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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작용 Jan 21. 2020

수제비 반죽을 한다

1월 7일. 대구에서. 강민이와 수제비를 먹었다.

아침, 일어나자마자 수제비 반죽을 한다. 수제비 반죽은 반나절 정도 숙성되면 더욱 쫄깃하다. 그러니까, 저녁에 먹을 수제비는 아침에 반죽을 해놓으면 좋다.


비가 왔다. 대구는 비가 많지 않다고 했다. 흔하지 않은 대구의 겨울비는 으슬으슬 추웠다. 갑자기 뜨끈한 수제비가 먹고 싶었다.

“수제비 먹을래?”

점심은 약속이 있어 먹지 못하니, 내일 저녁에 먹자고 강민이 말했다.

‘그럼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수제비 반죽을 할 거야.’ 나는 생각했다.     

볼에 밀가루를 넣는다. 소금을 한 꼬집, 모자랄까 생각하며 두 꼬집, 짜면 어떡하지 생각하며 세 꼬집 넣는다. 밀가루 위에 물을 휘휘 돌려 붓는다. 엄마는 항상 밀가루를 먼저 넣고 그 위에 물을 부으라고 했다. 한 번은 물을 먼저 넣고 그 위에 밀가루를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다. 반죽이 안 되는 건 아닌데, 물과 밀가루가 잘 섞이지 않아 고생했었다. ‘그러길래 내가 뭐랬니.’ 수제비 반죽을 할 때마다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수제비를 먹을 때 나는, 살아있는 동안 먹었던 다른 수많은 수제비를 생각한다.

수제비를 먹으면서 수제비를, 그 날의 상황을, 그 날의 기분을 추억한다.  


청주에서 먹었던 들깨 수제비. 수제비를 한 입 베어 물자, 거친 들깨 가루와 함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보통의 들깨 수제비와는 달랐다. '이 들깨는 기계로 간 것이 아니다, 절구로 대충 쪄낸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거칠게 으깨진 들깨가 혀에 까칠한 감촉을 안겼다. 정말 맛있었다.

     

엄마의 손수제비. 멸치와 다시마로 낸 육수에, 마늘 3분의 1 스푼을 넣는다. 마늘은 멸치의 비린내를 잡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 후 굵은소금으로 간을 한다. 물이 끓으면 반달 모양으로 잘린 애호박을 넣고, 손을 바삐 움직여 수제비 반죽을 떼어 넣는다. 너무 얇으면 흐물흐물하고, 너무 두꺼우면 잘 익지 않는다. 사실 수제비의 두께는 취향을 탄다. 쫄깃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흐물흐물 한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손수제비는 엄마의 식당에서 팔던 주메뉴였다. 팔목이 아픈 엄마를 돕기 위해 나는 매일 수제비 반죽을 했다. 그러다 건초염에 걸렸다. 이름조차 낯선 병명이었지만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어찌나 아프던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룸메들과 만들어 먹었던 수제비. 같이 살던 친구가, 남산 도서관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충전기에 휴대폰을 꽂고 책을 읽으러 갔다가 돌아오니 휴대폰이 사라졌었다고 했다. 함께 살던 이들 모두, 그걸 왜 거기에 놓고 오냐며 친구를 타박했다. 그날 우리는 수제비를 먹었다. 휴대폰을 도둑맞은 친구가 수제비 반죽을 했다. 화가 난 친구는 분노에 찬 손짓으로 반죽을 두드렸다. 분노가 완성한 그 날의 수제비는 유난히 쫄깃했다.     


수제비 반죽을 해 놓고, 강민에게 묻는다.

“애호박 넣고 감자, 수제비 할까? 아니면 김치 콩나물 수제비 할까?”

“애호박이랑, 감자. 지난번에 쓴 감자 남아있어. 아, 어제 떡국 먹었으니, 김치 콩나물이 나으려나? 네가 골라. 뭐든 좋으니.”

“나도 애호박, 감자. 그럼 나 들어갈 때, 애호박만 사가면 되나?”

“응, 슈퍼에 팔아.”

“6시까지 집에 올게.”     


나는 수제비를 참 좋아한다. 수제비 덕분에 오늘 하루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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