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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Aug 31. 2023

교내 총격 사건을 돌아보며

유학생 일기 7

월요일에 발생한 교내 총격 사건 이후 오늘까지 모든 수업이 취소되었다.



원래는 갈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내가 속한 단과대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느낀 점, 기억 등 모든 것을 말하는 Reflection 시간에 참석할 생각 있냐고 친구 M이 물어봐서 같이 다녀왔다.



모두가 그렇듯 각자 사건 발생 당시 느낀 것 경험한 것이 모두 달랐다.



다만, 해당 세션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것은 괜찮은 것이고, 내가 어떤 것을 느꼈는지를 알고 넘어가야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미국 내에 만연한 총기사건에 대한 슬픔에 대해 말했고, 누군가는 대피해 있었던 교실에 돌아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여기는 미국이니 벌어질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생각한 것에 대한 슬픔에 말했고 모두가 자신이 겪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이런 사고가 만연한 것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서로가 서로를 의지했던 것에 대해 감사하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강당 내를 오갔다. 대부분이 내가 느꼈던 감정이어서 혼자가 아닌 것만 같았다.



나도 뭐라도 짚고 넘어가야  온전한 정신으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집에 오면 꼭 관련된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무장한 사람이 학교 주변을 돌아다닌다고 즉시 실내로 대피하라는 알람이 학교로부터 도착했을 때, 나는 수업을 들으러 집을 나서던 길이었고 해당 사건이 심각하지 않은 것인 줄 알았다. 내가 지난 2년간 위험한 도시로 손꼽히는 곳에 살아서 누가 무장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알람은 너무 흔했고,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인지할 수가 없었다. 또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떠한 재난 상황이나 위기 상황에 실제로 대피를 하기보다 꾸역꾸역 학교를 가는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 문자를 보자마자 그럼 수업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겠지? 하고 짧은 시간 내에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학교에 있는 친구들이 정말로 심각하게 교실 내에서 공포에 떨며 대피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고, '아 수업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고민이 들었다. 학교로 가는 버스는 금방 떠날 거고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랑 안 마주치고 빨리 교실로 가면 되나? 싶고...



많은 고민 하다가 학교에 있는 친구들이 절대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해서 학교를 가지 않았다.



누군가 총을 맞았다고 했다. 이게 실제 상황이구나. 학교에서 지금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그제야 인식이 됐다. 학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고, 충격적이었고,



미국에선 진짜 무슨 일이 있으면 정말 대피해야 하는구나. 안 그럼 진짜 죽을 수도 있구나. 그냥 지금까지 내가 당연하게 여겨오던 사고방식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의 결과가 피부로 느껴졌고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해진 지금이야 이게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한 총격이 아니라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았던 총격 사건이라는 점을 알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건 당시에는 정말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다.



범인이 학교 근처로 도망쳤다고 했을 땐, 이 근처를 지나면 어떡하지 또 공포스럽고... 너무 두렵고, 이런 게 미국인가 싶고 왜 뉴스에만 날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거지? 총기로 인한 사건은 멀리에 있지 않구나.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후에 친구로부터 총기와 치안은 별개라는 말을 듣고 너무 슬프고 무서워졌다.





범인의 인상착의가 처음으로 묘사되었을 때, 제일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Asian이라는 글자였다.

아 아시아 사람이구나.

범인의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때, 동북아시아계의 외형을 가진 남성인 것을 보고 정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코로나가 한참 심하던 2021년, 미국에 처음 와서 첫 1년을 온라인 수업만 들으며 거의 격리되다시피 집에서만 보내며 외롭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었다. 언어도, 문화도, 지역도 익숙하지 않은데, 모든 것들은 화면 너머에 있고 나는 이유 없이 미국에 와있는 것만 같고. 나와 닮은 사람들은 길거리에 보이지 않고. 뉴스를 볼 때면, 코로나로 인한 아시안 혐오 범죄, 아시안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고. 나는 언어도 유창하지 않고 문화도 잘 모르니 가끔은 위축되고 두렵기도 하고. 학교에서 다루는 Racism은 주로 흑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아시안은 그럼 대체 뭘까? 너무 숫자가 적어서 이야기조차 되지 않는 걸까? 모든 게 혼란스럽고 뭔가 어떤 논의에서 아시아인은 제외되어 있는 것만 같은데. 한국에서 다수로서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은 사라지고, 나는 이제 미국에서 소수 중의 소수로서 타자화되어서 살아가는 기분이란. 코로나 기간 동안, 서구권 국가에서 아시아인으로 지내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범인이 중국계 남성 대학원생이라는 사실과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는 코로나에 이어서 아시아인 학생에 대한 또 다른 낙인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심각한 그 와중에 또 그런 걸 걱정하는 나 자신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이게 나만 든 생각인지 궁금하고, 다른 아시아인 친구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도 알고 싶고.. 그런데 내가 다니는 학교는 유학생은 적고 아시아인은 너무 적고... 나는 이 학교를 막 다니기 시작한 지 2주째인 사람이고.. 그러한 감정을 나눌만한 집단 또는 대상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Reflection 시간에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그냥 백인이 대다수이고 그다음은 흑인으로 대부분이 구성되어 있는 reflection 시간에 아시아인에 대한 낙인을 걱정했다는 걸 말한다는 게 그냥 너무 무섭고 두렵고 이런 이야길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두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곳에서조차 제대로 내 의견을 밝히기 어려운 걸까 하는 생각에 너무 슬프고 힘들었다.




그런데 어떤 중국인 유학생이 자신이 중국으로서 중국 학생이 중국 교수님을 죽였다는 게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면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고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중국인 학생에 대한 낙인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것 같이 들렸다.




이어서 같이 간 한국계 친구가 국제학생이 느끼는 고독감과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뉴스 기사에 따르면 범행을 저지른 중국인 박사과정 유학생이 평소 외로움을 호소했다고 했다는 것을 보았고, SNS에 자신과 친구가 될 사람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도 올렸다는 것도 보았다고 했다. 발생한 사건은 너무 슬프고 잘못되었지만 학교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얼마나 소속 집단을 찾기가 어렵고 힘든지, 학교 내에서 유학생에 대한 서포트가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평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코로나를 겪으며, 인생에 다시없을만한 고독감과 외로움을 겪고, 백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도시의 학교에서 소수자로서 느끼는 외롭고 힘든 마음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났다. 그냥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러면 내 마음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간 거였는데. 세션은 거의 끝나가고 있고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도 마이크를 받았다. 눈물이 계속 나고 그냥 교실 내에 몇 없는 아시아인 학생으로서 이런 생각을 말한다는 게 너무 떨리고 무서웠지만 말을 했다. 나는 2년 전 코로나가 심할 때 처음 미국에 왔고, 첫 일 년은 심각한 고독을 겪었다. 코로나 기간에 처음 온 미국은 아시아인으로서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유쾌하지 않았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 범인의 정보를 알게 되고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 너무 두려웠다. 아시아인 학생에게 또 다른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고 심각한 와중에 이런 걱정을 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



말하는 내내 무섭고 떨리고 슬퍼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발표 후에 상담사분이 상담이 필요하냐고 하셨다. 어딘가로 갈 정신이 없어서 여기 앉아있겠다고 했다. 세션은 마무리되었고 어떤 여자애가 다가와서 그냥 안아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하고 안아주고 갔다. 내 줄에 앉아계시던 분은 학교 교직원분이었는데, 학장 사무실에 있으니 언제든 와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세션이 끝나고 학장님은 내 친구와 한참을 이야기하시고 나에게도 와서 인사하고 가셨다. 다른 교수님은 아시아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stigma 등을 이야기하는 세션을 열겠다고 하셨다. 아시아 학생들에 대한 서포트의 필요성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요 며칠 좀 그랬다. 총격 사건으로 인해 겪는 수없이 많은 감정들에 대해 어렵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데, 내가 아시아 학생으로서 느끼는 불안감이나 슬픔은 이야기할 곳이 없는 것만 같아서. 그래도 용기를 내서 말하길 잘한 것 같다. 말하니까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모두가 이 사건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각기 다른 극복의 방법이 있겠지만, 모두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괜찮아진다면 좋겠다.



진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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