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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Oct 24. 2023

알쏭달쏭 인종차별

유학생 일기 8

    정말 희한하게도 지난 석사 2년 간 겪어본 적이 없던 인종차별을 박사 과정 첫 학기에 여러 번 경험하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연일 Asian hate에 대한 뉴스를 접하는 와중에 미국에 처음 오게 되었지만, 석사 과정 동안 유학생이 많은 학교에서 (특히 아시아 유학생이 많은) 안온하게 지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인종차별이 피부로 와닿는 일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리고 미국에 처음 왔기 때문에 영어도 잘하지 못하고 뉘앙스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아마 인종 차별이었어도 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도 같다. 친구 중 누군가가 그랬다. 미국 사회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늘어날 거라고.

    

    캘리포니아 출신 아시아계 미국인인 내 친구는 석사 과정을 위해 동부로 이사 오면서 살면서 처음으로 "너 영어를 엄청 잘하네? 어느 나라에서 왔어?" 말을 들어봤다고 했다. 미국인인데! 그 말을 들었을 때, 진짜 저런 차별도 있을 수가 있구나 하고 함께 기분 나빠했는데. 막상 사람들이 나와 말 한 마디도 섞어보지 않아 놓고 처음 말을 걸면서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 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나는 외국인이고 내 정체성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내 국적을 지레 짐작해서 "니하오"라고 중국어로 인사를 건넨다거나 "곤니치와"라고 일본어로 인사할 때는 상대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늘 나는 한국인이야. 하고 정정해주곤 했다. 나의 국적을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에는 나에게 종종 흠 왜 저런 이야기를..?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겠거니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왔다.


    얼마 전, 함께 박사 과정을 하고 있는 같은 과 친구와 함께 차로 편도 5-6시간 정도 되는 도시로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해당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함이었고, 친구는 해당 도시에서 열리는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 한 가지 주제가 인종차별이었다. 내가 영어 실력이 는 건지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대화 속 어떤 뉘앙스를 종종 캐치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점에서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들이 생겨 미국인인 친구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Microaggress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직역하자면 미세 공격인데, 먼지차별 등의 개념으로도 이야기된다. 의도되었든 아니든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소수자인 상대방에게 모욕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시사상식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면 "‘아주 작은’이라는 뜻의 마이크로(micro)와 ‘공격’이라는 뜻의 어그레션(aggression)의 합성어로 일상생활에서 흑인, 동양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을 말한다. 직역하면 미세 공격이라는 뜻으로 의도적으로 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어도 상대방이 모욕감이나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면 마이크로어그레션에 해당한다.(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3667&docId=3377251&categoryId=43667)"라고 되어있다.  함께 여행을 간 내 친구는 African american으로 석사 과정 시절 해당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해당 학교에서 청소 등의 일을 하는 직원으로 오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모두 microaggression에 해당한다.


    박사 과정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서류가 굉장히 많다. 고용 절차도 밟아야 하고 이런저런 서류 작업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나 또한 학교 내 행정실을 여러 군데 들려야 했다. 서류 작업이 좀 시간이 걸리는 거였어서 한 직원 분과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은 정말 친절했고 내가 한국에서 온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자 한국과 북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관심을 표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던 도중, 한글이 되게 어려워 보이는데 너는 어떻게 한국어를 "그리는 (draw)” 거냐고 그분이 말씀하셨고, 나는 우리 글자니까 나는 잘 “쓰는(write)” 게 당연하지.ㅎㅎ 한국어는 문법 체계가 어려워도 한글 자체는 되게 배우기 쉬워.라고 답했다. 그런데 왜 한글도 글자인데 korean은 draw 하는 거고 english는 write이라고 표현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점에서 아쉬움이 들었다.  


    친구와 여행을 하던 중, 들린 주유소에서 생수를 구매하려고 다가가자 캐셔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Pretty lady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일본인이냐고 한국인이냐고. 또 캣콜링 + 이상한 말들을 듣게 될까 봐 경계하면서 적당히 한국인이라고 대답하자. 한국인이냐고 너무 반가워하면서 나에게 Son을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 당연히 알지! 토트넘에 있는 축구선수 말하는 거지?라고 말했더니 정말 기뻐하면서 자기 EPL팬인데 Son을 아는 사람을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자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고 미국 시민권을 기다리고 있고 등등을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대뜸 나한테 손흥민을 닮았다고 했다. 와 전혀 안 닮아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그러냐고 하니까 내 반응이 시원찮았는지 다섯 번은 강조했다. 뭔가 반가움에 좋은 의도였겠지만, 내가 살다 살다 손흥민을 닮았다는 말을 듣다니..! 한국인이면 다 닮았냐구요..한국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얘기할 때는 너무 웃겼고 지금도 다시 생각하면 어이없어서 웃긴데 그땐 좀 황당하고 이런 거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 어쩌다가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다. 스티븐 연이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 나와서 모든 아시안이 다 똑같이 생기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영상이. (해당 영상은 다음과 같다. https://youtu.be/R5s-MKAPmcg? feature=shared  )


    한편, 미묘한 뉘앙스가 아니고 대놓고 혐오 표현을 들었을 때에는 오히려 영어로 들어서 충격이 덜 한 경험도 있었다. 이번 여행 중 한 번은 도시 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려 하자 어떤 여자가 나와 내 친구(이때 함께 있던 친구는 아시아계 친구이다.)에게 다가와 한국어로는 미처 옮기지 못할 만큼 정말 심한 욕을 계속 퍼부어 댔다. 하필 내가 교통 카드에 돈이 모자라서 애플 페이로 충전을 하던 중이라 해당 개찰구에 몇 분 서있었는데 몇 분 내내 쉬지 않고 욕을 하며 우리에게 점점 다가왔다. 자꾸만 가까이 다가와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안 들리는 척 태연히 카드를 충전했고, 욕이 너무 심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우리한테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해서 멍했다. 그러다 go back to your fucking china town이라는 말을 듣고 새삼 아 우리한테 하는 게 맞는구나 했다. 어찌어찌 그 상황을 벗어나 친구와 숙소로 돌아가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친구도 china town 어쩌고 할 때 우리한테 하는 게 맞았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어로 들었으면 욕을 들은 게 뭔가 마음에 깊게 남았을 것 같은데 내가 접하던 욕이 아니라 그런지 뜻이 와닿지가 않아서 진짜 욕 같지가 않고 오히려 신체적 위협만 뇌리에 남았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뜻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미묘한 표현들은 그 미묘함 때문에 자꾸만 곱씹게 되어 알맹이들이 마음속에 남아 잔잔하게 불편한 감정이 드는데, 이런 게 Asian hate인가 싶은 더 직접적인 욕설은 그 내용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 미국에서 더 오래 지내게 되면 내가 또 어떤 것들을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될까? 나중엔 직접적인 욕설도 진짜 한국 욕처럼 그 단어의 경중이 피부로 와닿아 크게 상처받게 되는 순간이 올까? 이번 학기 Race(인종)에 대한 강의를 수강하였는데, 그동안 숫자로만 이해해 오던 것을 이론적으로 접해볼 수 있어서 미국 사회 내에서 다뤄지는 race를 조금씩 천천히 이해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조금씩 겪고 나니 이론 밖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떠한 학문적 패러다임으로 정확하게 옮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특히나, 동질성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만 살다가 이런 고민을 시작하니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참 많고 이해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자로서 실제 사회와 학문적 연구의 괴리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나는 이 미국 사회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많은 고민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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