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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30. 2024

사랑하니까 알아줄 거라는 기대는 너무 바보 같다.

tvN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2024)>

결혼 3년 차, 현우(김수현 분)는 해인(김지원 분)과의 이혼을 준비 중이다. 어마어마한 친정살이도 무섭고 힘들지만 이 결혼 생활의 위기는 그날, 해인이 현우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아이 방을 치운 그날 시작됐다.


두 사람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들이다. 해인은 퀸즈 백화점 사장이었고, 현우는 그 백화점 신입사원으로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이들의 진심을 곡해하는 많은 소문이 따라붙었다. 해인은 해인대로, 현우는 현우대로 반대가 많았음에도 두 사람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결혼에 이른다. 오직 하나,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성사된 결혼이었다. 평온하기만 신혼 생활은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이어지는 퀸즈 그룹의 처가살이는 상상이상으로 혹독했다. 그럼에도 내 편이 되어주는 해인이 있어 현우는 괜찮았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 줄 알았으나, 두 사람의 사랑을 시기라도 하듯 해인이 유산을 하게 된다. 기쁨의 순간은 짧았고 슬픔은 너무나도 컸다. 그러나 해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 방을 정리한다. 그 일에 있어 현우와 어떠한 상의도 하지 않았다. 당황해하며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현우에게 해인은 이제 필요도 없고 눈에 보이면 짜증이 나는데 그 방을 정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답한다. 그 말도, 회사 일로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 사이 잠깐 전화를 멈추고서 했다. 이런 걸 왜 묻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귀찮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하고서 해인은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갔다. 현우는 그날 두 사람이 함께 쓰던 방에서 나와 아이 방이었던 곳에 짐을 푼다. 두 사람의 각방 생활이 시작되면서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진다. 뜨거워서 모든 장애물을 태워버리던 불같던 사랑이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버리자, 어떤 날카로운 칼보다 더 뾰족하고 날카롭게 서로를 찌르는 미움이 되어버렸다.



결혼 3년 차는 어떤 시기일까?

인스타그램에 올린 tvN토일 드라마 <눈물의 여왕(2024)> 대사 게시물에 왜 결혼 3년 차라고 설정을 했는지, 그 설정이 아쉽다던 댓글이 있었다. 미혼인 나는 결혼 3년 차의 의미를 모르기에 아쉬운 이유가 궁금했다. 다행히 얼마 후 올린 드라마의 다른 대사 게시글에 그 이유가 남겨져 있었다. ”결혼 3년 차까지는 대화하지 않아서 생긴 오해와 갈등을 어떤 계기로 풀 수 있는 연차라지만, 만약 풀지 못한다면 헤어짐을 선택하는 시기“라는 의견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제목은 분명 눈물의 ’여왕‘인데, 우는 건 언제나 현우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한 날이나, 아이를 잃었던 날, 해인이 자신을 무시하던 날에도 현우는 울었다. 반면 해인은 울지 않는다. 하지만 보다 보면 안다. 속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말이다. 아이 방을 정리한 그날만 해도 그렇다. 현우에게 짜증을 내고 회사 직원에게 화를 냈지만, 내 눈에는 해인이 울부짖는 것처럼 보였다. 현우 못지않게 아니,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있음을 느꼈을 해인이 느낀 상실과 슬픔은 현우보다 더 크면 컸지 작을 리 없다. 눈앞에서 모두 사라지자 해인은 주저앉아 두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방에 들어섰을 때 현우의 짐이 빠져나간 걸 알았을 테다. 그런 현우의 행동이 해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었겠지만, 아이를 지키지 못한 자신은 울 자격도 없다고 말하던 해인은 그런 현우의 선택마저,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이라고 생각하며 그 상황을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해인은 울지 않았으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그날 해인이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과 미안하고 슬픈 감정들을 현우에게 말했더라면, 현우는 해인을 보듬어주었을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죄의식을 느낄 일은 아니라고 말해주며 슬픔의 무게를 나누었을 것이다. 만약 그날 현우가 짜증을 내며 신경질적으로 구는 해인이에게 괜찮은지 물어봐주었더라면, 해인은 홀로 버티며 무너지는 대신 현우의 품에서 실컷 울며 위로받았을 것이고, 두 사람의 사랑은 더 견고해졌을 테다. 하지만 그 순간 해인은 죄책감에, 현우는 자신이 느끼는 아픔에 사로잡혀 상대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두 사람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우는 어려운 이혼보다, 조용한 사별이 더 낫다며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해인을 챙기게 되지만, 그녀를 챙기는 말과 행동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미운 마음이 있다기에는 그의 모습은 해인을 사랑하던 시절의 백현우였다. 현우는 조용한 사별을 위해 협조하는 거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감정을 속였지만, 치료를 위해 홀로 떠난 그녀가 걱정돼 독일까지 따라간다. 해인은 현우를 무시하는 남동생을 따라가 어퍼컷을 날려 주의를 주기도 하고, 그가 보이지 않을 때 그를 생각하며 짓는 표정이라던가, 아프고 무서운 순간 먼저 떠올려진 사람이 현우라는 점에서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우는 해인이 자신이 없을 때 하는 행동을 알 수 없고, 그 표정을 볼 수 없으며, 해인 역시 표현하지 않은 현우의 감정을 알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드라마를 보며 “멍청이들아! 너네가 지금 하는 게 사랑이라고!” 답답함에 소리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속 터지는 상황이 비단 드라마 속 해인과 현우만의 일일까?



“이 둘의 감정선이 현실에서도 있어요. 솔직한 마음을 서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우리 서로는 서로 인간이라 상대방보다는 내 마음의 상처가 우선이 되는 거고 서로 내 마음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해지고 그럼 마음에 없는 말로 상처 주고 시간이 흐르면 왜 서로에게 상처 줬었는지도 모르게 되는 거 같아요. 저렇게 늦게라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다행이고 끝끝내 모른척하면 평행선을 걷게 되는. 그게 부부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둘의 배경은 비현실적이지만 상황과 감정선은 공감되네요. (ahrong_gram)”


공감 가는 댓글이었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기획의도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아 해인과 현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진심을, 마음을 미루지 말고 전해야 한다고. 흔히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사랑의 ‘타이밍’은 우연을 가장해 만든 어떠한 상황, 기회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사랑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담은 고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랑의 타이밍은 ‘전하는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표현에 인색하다. 괜한 자존심을 부리느냐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않은 채 값비싼 선물을 하며 충분히 마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니까 알아줄 거라는 기대는 너무 바보 같다. 사랑이란 감정에 대한 직무유기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믿음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친절해진다. 내 마음을 상대가 더 잘 알 수 있게 두 눈을 마주 보고 때로는 두 손을 잡고, 어떤 날에는 서로를 안으며 말한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무섭다고. 도와 달라고. 곁에 있어 달라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진심을 담은 표현은 절대 난폭하지 않다. 오히려 사려 깊어 상처 입은 마음 깊숙이 까지 닿고, 걸어 잠근 문을 열며, 멀어져 있던 거리를 좁힌다.


표현하지 않으면, 그렇게 마음 속에만 담아두면, 내 진심이 뭔지도 나조차도 모르게 된다. 그러다 전할 기회마저 잃을 수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알거라고 믿는 믿음이 바보같다는 것이다.


현우는 말했다. 사기는 네가 쳤다고.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일 없게 하겠다던 네 말을 결혼을 했는데 자신은 내내 울고 있었다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해인은 속은 당신이 잘못이라는 듯 미안한 감정을 에둘러 말했지만, 이내 곧 명확하게 진심을 전한다. ”난 네가 내 옆에 있길 바랐다고. 혼자 있기 싫었다고. 언제나 그랬다고. “ 오래 삼켜온 말을 꺼내자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 흐르듯,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운다. 현우만이 아니라 해인도 눈물을 흘렸다. 독일에서 확인한 서로를 향한 진심은 곧바로 타인과 여러 상황에 의해 위기를 맞지만,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기 전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혼란스러움에 흔들리기는 하겠지만, 이 날 전해진 진심은 두 사람을 오해하며 멀어졌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지켜줄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마음과 진심의 가치는 그렇게 훼손되지 않는 강함이 있다.


해인과 현우의 배경은 드라마이기에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 배경을 걷어내고 보면 두 사람이 멀어진 계기는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엔딩 역시 비현실적이겠지만, 그 엔딩을 만든 사건이 아닌 과정 속에 충실한 관계에 집중해 본다면 공감할 모습 속에서 각자의 삶에 엉킨 관계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테다. 저들의 이야기를 보며 웃고 울면서 삶에서 멀어진 우정, 엉켜버린 직장 내 관계, 당연해서 함부로 대했던 가족, 사랑을 믿고 소홀했던 모든 사이가 봄 꽃 피듯 그렇게 회복되길, 이 이야기에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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