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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pr 18. 2024

‘당신이 쓰고 내가 읽은 마음’

책 <뉘앙스(성동혁, 수오서재(2021)>

꽃을 키우고 그리는 인스타 친구의 스토리에 올라온 ‘무제’를 읽고, 책 이름을 물어봤다. 아름다운 것을 보며 사는 그녀는 내게 책 이름이 적힌 아름다운 귀퉁이 사진을 보냈다. 책을 주문했고, 받은 뒤에 알았다. 왜 표지가 아닌 책의 귀퉁이 부분을 보내왔는지.

책을 두르고 있는 띄지는 그 책을 읽는 동안 책갈피로 사용한다. 책의 띄지를 벗겨 반으로 접어 읽던 페이지에 꼽고 책을 덮었는데, 책 표지에 제목이 없었다. 대신 연한 에메랄드 고운 색 위에 한 여인이 오른쪽으로 팔을 뻗고 있다. 흐릿하게 번진 얼굴에 표정은 보이지 않고, 팔의 품이 큰 옷일까. 흰색과 붉은색 등을 점점이 흩어지게 풀어낸 그림은 사실, 오른쪽으로 팔을 뻗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느낌이다. 언뜻 보면 책이 아닌 그림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일 듯하다.


이 책의 제목은 <뉘앙스(성동혁/수오서재(2021)>.  

’아무 말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책 제목과 책의 내용과 저자와 잘 어울리는 표지다.

표지 그림은 Alex Kanevsky(알렉스 카네프스키)의 그림이라고 한다. 성동혁 작가의 <뉘앙스>를 통해 알렉스 카네프스키를 알게 되었다는 글이 많았다. 나도 검색해 보고 알게 된 사람 중 하나다.


 <뉘앙스>에 담긴 ‘파도’라는 글에는 김현정 작가의 검은 파도라는 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그 그림에 위안을 얻은 건 성동혁 작가뿐이 아니었다는 이야기. 자신들처럼 그림을 통해 힘을 얻었으면 한다던 글의 끝에는 김현정 작가의 그림이 성동혁 작가의 시집 <아네모네>의 표지가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시집도 사고 싶어졌다. 그림을 갖듯, 성동혁 작가의 글을 갖고, 손 닿는 곳에 두어 그림으로도, 글로도 위안을 받고 싶어졌다.


‘쓰는 만큼만 말하면 좋겠다. 언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듯 말을 건네고 싶다. 느리고 미숙해도 해가 되지 않게.’

‘서로의 말의 양과 속도를 이해하며. 돌아가는 길 마음이 피로하지 않도록.’

글을 고민하듯, 말을 고민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작가의 글이 더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문장이 조금은 선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계속 읽고 또읽으면 삶을, 순간을, 지금을 더 감사할 수 있을 것같다. 겨울을 보낼 때에도.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찡했고, 엄마가 자주 생각났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아팠고 지금도 그렇다. 몇 문장을 엄마에게 읽어주었다. “아픈 사람만이 갖고 있는 강인한 힘이 있어, 아픈 사람만 아는 소망이 있어.” 엄마는 내가 읽은 작가의 문장에 그렇게 화답했다.


서른 중반, 두 아이를 낳고 바쁘게 살아가던 시절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졌고, 통풍은 작은 병이었고, 그보다 더 작은 병을 동시에 앓았으며, 신장이식수술을 했다. 나는 보호자로서 병원 냄새를 때마다 맡고 있고, 그 냄새는 여간 익숙해지지 않는다. 잠자는 엄마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숨을 죽이던 밤이 있었다. 죽음을 가까이 두었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나는 삶이 자주 슬펐고 그렇지만 동시에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는 강인함을 경험하며 삶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품었다. 그 믿음의 힘으로 지금까지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이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는 생각이 담긴 문장이 반가웠고, 슬프면서 기뻤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문장이 자주 나온다. 특히 겨울엔 더욱 많은 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노력이 무의미해지며 심지어 인생이 놀리는 듯 한 기분도 들었으리라. 그런 좌절의 넘어짐으로 만들어진 ‘믿음’을 내가 안다는 게 슬프면서 기뻤고, 감사하다.


애정하는 책임을 알 수 있는 척도는 개인마다 다양하다.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은 하루, 이틀 사이에 질주하듯 읽어 버린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시간을 아낌없이 준다는 게 사랑이다. 이 책을 읽다 출근한 날, 책이 읽고 싶어 짜증이 났다. 부랴부랴 퇴근해서 피곤한 몸에 지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며 읽었고, 읽었다. 밑줄을 치고, 생각을 적고. 이 책 곳곳에 생각을 적은 글씨마저 예쁘게 적히게 되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묘한 게 있다.


정말 ‘뉘앙스‘라는 말이 맞다.

‘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뉘앙스, 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말. 당신이 쓰고 내가 읽는 마음. 뉘앙스.‘


작가의 말하지 않은 말을 나는 잘 들은 걸까? 느낀 것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 한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뉘앙스’란 단어가 놀랍다. 몰랐던 단어도 아닌데 신기하게 자꾸만 이 단어의 뜻을 되뇌어 본다. 이 책은 이렇게 읽었다. 알 것 같은 마음으로 ‘정적 속에서 사뿐하게 상대를 이해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다정한 힘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 부랴부랴 이렇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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