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2024)>
“모든 시작은 밥 한 끼다. 그저 늘 있는 아무것도 아닌, 한 번의 식사자리 접대가 아닌, 선의의 대접, 돌아가면서 낼 수도 있는, 다만 그날따라 내가 안 냈을 뿐인 술값. 바로 그 밥 한 그릇이, 술 한잔의 신세가 다음 만남을 단칼에 거절하는 것을 거부한다. 인사는 안면이 되고, 인맥이 된다. 내가 나을 때는 인맥은 힘이지만, 어느 순간 약점이 되고, 더 올라서면 치부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2017)> 시즌1에 나온 이창준(유재명 분) 대사는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를 관통하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그저 ‘밥 한 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자리가 쉽게 끊지 못하는 고리가 되어 모두를 ‘동기를 가진 용의자’가 되게 했다. 그리고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 스핀오프로 제작된 tvN 월화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2024)>에서도 이창준의 대사는 살아있다. “모든 시작은 밥 한 끼다.” 그 무게를 이어간다.
남완성(박성웅 분)은 서울서부지검에서 좌천되어 청주지검으로 온 서동재(이준혁 분)를 유의주시하고 있었고, 때가 되자 서동재에게 다가온다.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게 하는 우리네 인사말, ‘밥 한 끼 하자’며 남완성은 자신의 명함과 블랙카드를 건넨다.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는 과거 스폰서 검사라는 오명을 떨쳐내고 싶어 하지만, 지난 과거가 여전히 발목을 붙잡고 있는 서동재의 현재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동재는 청주지검으로 온 뒤 연거푸 승진에서 누락되고, 서울로 올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남완성은 그에게 중앙지검도 아닌 국회로 가는 길을 열어주겠다고 한다. 대신 자신의 부탁 하나만 들어달라며 과거 인연을 운운한다. 남완성은 서동재가 서부지검에 있던 시절 어느 술자리에서 그에게 자신의 도장을 날인한 청주 땅 매매 계약서를 건넸다. 서동재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그 매매계약서에 평당 15만 원 하던 땅이 몇 년이 지나 재개발이 되면서 수백 배 올랐다. 서동재의 도장은 날인되지 않은 미완성 계약서이지만, 과거 스폰서 검사란 이력이 있는 서동재를 뇌물 검사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동재는 승승장구하던 선배들이 ‘밥 한 끼’ 자리에서 시작된 고리를 끊지 못해 비참한 끝을 맞이한 일을 곁에서 함께 겪었고, 그로 인해 자신도 죽을 뻔했으며, 청주지검으로 좌천됐다. 그렇기에 이것이 기회가 아닌 위기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순간 솔깃해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서동재다.
‘서동재’는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에서 온전히 캐릭터의 힘으로 살아남은 인물이라 생각한다. 감정이 결여된, 그래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황시목(조승우 분)이나 타협은 없되 휴머니즘을 지닌 한여진(배두나 분)이란 인물보다, 성공에 대한 열망은 크지만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하지만 인정에 흔들리는 어설픈 서동재란 인물은 보다 현실감 있었고, 시청자는 다른 인물에 비해 서동재에게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애정으로 만들어진 스핀오프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난 동재는 중앙지검으로 돌아가고 싶어 기회를 엿보며 줄을 타는 여전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가 되돌아온 지금의 위기 앞에, 아무 생각 없었던 지난날의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에선 달라진 동재가 보인다.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가 비리의 고리가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되어 가는지를 ‘밥 한 끼’로 시작된 관계들을 통해 설명했다면, 스핀오프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는 과거가 그렇게 쉽게 청산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며, 어떻게 해야 끊어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하려는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서동재란 인물은 탁월한다. 동재가 여느 주인공처럼 정의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해도, 그 과정이 황시목이나 한여진처럼 반듯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혹 앞에 흔들리며 씨름하느냐 ‘좋거나 나쁜’ 사이를 오갈 테다. 그리고 그런 서동재를 우린 또 한 번 공감하며 이해하며 애정 어린 마음을 줄 것이다. 그는 지금을 살아가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휘청이는 걸음으로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을까? 나쁘기도 하다 좋기도 한 그 사이를 오가는 걸음은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더 나은 내일로 가기 위해서는 어긋어긋 한 걸음으로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서는 걸음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길이란 따로 있지 않다. 황시목이나 한여진 같은 특별한 인물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씨름하며 걷는 순간에 모든 길이야 말로 달라진 엔딩으로 향하는 제대로 된 길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유의미한 걸음을 내딛어야만 한다. 휘청이고 흔들린다 할지라도 그와 함께 불안한 걸음을 걸어 마침내 후련해진 마지막에 닿고 싶다.
덧,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 특유의 묵직한 주제의식은 가져가면서도, 새로운 분위기로 찾아온 <좋거나 나쁜 동재>. 이런 스핀오프는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