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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Dec 13. 2024

세상을 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건, 정(情)이라고

apple TV <파친코 시즌1(2022)>

세상을 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건, 정(情)이라고.



시장에서 그날 잡은 생선을 팔아 하루를 사는 생선장수에게 선자가 용돈을 받게 한 일로 아내는 남편을 나무랐다. 아이 버릇 나빠진다고, 당신 돈도 아니지 않냐고.


생선장수 삼촌은 선자네 집에서 하숙하며 가족과 가까이 지냈다. 이따금 아버지와 시장에 나설 때면 선자는 삼촌이 잡은 생선을 팔 때 옆에서 능청스레 흥정을 돋아 생선을 제 값에 팔 수 있게 도왔다. 두 사람에게는 그런 케미(!)가 있었다. 얼마 뒤 삼촌은 하숙하는 다른 삼촌들과 저녁을 먹다 일제 통치에 대한 불만을 말했다. 답답한 현실을 입에 담아선 안되던 시절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선자는 생선을 잡으러 나서는 삼촌을 따라가 삼촌 때문에 다들 불안해하지 않냐고, 삼촌 때문에 아빠와 헤어질 수도 있어 무섭다며 삼촌이 하숙집을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일본 경찰이 삼촌을 잡기 위해 선자네 하숙집을 찾았지만, 삼촌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어른들은 그가 어찌 알고 떠났는가 궁금해했다.


삼촌에게 하숙집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어린 선자를 보며 왜 저리 모질게 말할까 싶었다. 하지만 삼촌은 그렇게 말하는 선자의 마음을 아는 듯한 눈치였다. 결코 어린 마음에 하는 말이 아니었음을. 걱정하지만 무서워서 쉬쉬하거나, 무서워서 신고하는 어른들 사이 어린 선자는 삼촌을 살리기 위해 그리 모질게 굴었다.


선자는 강한 사람으로 자란다. 조국을 잃고 남편을 빼앗기고 자식도 먼저 보내야 하는 모진 세월이었지만 살아냈다. 살아서 다음, 그다음 세대로까지 이어간다. 그녀의 삶에 권력이나 돈은 한 번도 제대로 주어진 적이 없다. 그러니 혼탁한 세상을 그녀로 하여금 강하게 살아가게 한건, 아버지 말씀대로 정(情)이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친근한 마음을 잃지 않기로 정(情)한 마음.


약해 보이는 부드러운 마음이 유연하게 서로에게 파고들어, 매서운 시절을 지나 다음, 그다음 세대로 향하도록. 그렇게 살아간 어린 선자와 그 시절의 다른 선자들을 보며 갑작스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 지금 선자 아버지가 한 말을 곱씹어 본다.


세상에 정(情)이라는 것도 알아야 되는 기다.

함께, 다음 그다음으로 향하도록 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다른 걸 붙잡기보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친근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정한 마음을 잡아야지. 다독여 본다. 토닥토닥. 마음들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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