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인레호수와 응야뻬꺄웅 사원
기존 여행에 질리면 미얀마에 가봐야 한다고 합니다. 근래 인천-양곤행 직항도 생기고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미얀마를 다녀온 느낌은, 한마디로 비행기가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온 기분입니다.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미얀마의 동물들도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다음의 사진들에 보이는 미얀마의 개는 수상가옥 마을 시장에서부터 보트가 정박해있는 곳까지 따라온 아이인데 보트에 태워주지 않자 헤엄쳐서까지 우리를 따라오려고 했던 아이입니다. 무슨 사연이었을까요?
미얀마의 옛 수도 이자 경제 중심지인 양곤을 떠나, 아시아 최고의 불교 유적지라는 파고다가 2,300여 개에 달하는 고도 바간을 거쳐 미얀마 북동쪽 샨 지방의 인레 호수에 갔을 때입니다.
#1 미얀마의 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인레 호수에는 17개의 수상 마을이 있고 그 마을 중 장터가 열린 곳에 들러 샨족 국수를 맛보고 돌아가는 길에 한 개를 만났습니다.
시장에서부터 마을을 지나 보트가 정박해 있는 곳까지는 약 3km의 거리, 처음에는 우연히 집에 가는 길이 같은가?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지나온 거리는 길어지는데도 우리를 계속 따라오자, 보트 운전사 아저씨랑 안면 있는 개인가? 먹을 것도 없는데 왜 따라올까? 궁금증은 증폭되어만 갔지만 이유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보트가 정박한 곳에 도착했을 무렵, 길이 22km 폭 11km인 거의 바다와 같이 끝없이 펼쳐진 인레 호수의 시작 지점에서는 육지의 끝과도 같은 느낌이어서 ‘이제는 갈 곳으로 돌아가겠지.’ 싶었으나 미얀마의 개는 여기서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진흙 속에 발을 빠뜨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진흙탕인 물에서 주저앉아 버리니 ‘아 더워서 호수로 수영을 나가려던 거였나?’ 싶었습니다. 미얀마는 4월 초, 건기의 최고점이라 날이 매우 더웠거든요.
그러나 그저 더위를 식히려던 것이었나 라고 생각할 즈음, 미얀마의 개는 우리가 탄 보트를 타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현지인 보트 운전사 아저씨가 태워주지 않고 내쫓자, 포기하고 호수 사이의 길을 헤엄쳐서 건너더군요. 탑승료를 지불하지 않아서였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내가 대신 지불하고 태워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호수 건넛마을이 돌아가야 할 개의 집이라면…
우리와 같이 배를 타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태워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배는 서서히 출발하고, 포기한 줄로만 알았던 개가 육지로 헤엄쳐 나와 뭍으로 올라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뭍이 끝나고 지평선이 전부 호수로 덮인 물길이 나오기 전까지요. 대체 무슨 사연이었을까요? 개가 배를 타고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요?
우스갯소리로 동행과 ‘전생에 키우던 개가 아니었을까?’라는 말을 했지만, 이유도 알 수 없이 가슴이 그저 먹먹하게 멀어져만 가는 개를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망연자실한 순간이었습니다.
#2 미얀마의 고양이
점핑 캣 사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예전 해외토픽에도 나왔었는데, 길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한 고양이를 점프하여 굴렁쇠를 통과하는 묘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사원입니다. 고양이가 점프하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 오래 전인 듯합니다. 사원이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과거의 명성으로, 제가 갔을 때 누구도 고양이 점프 묘기를 볼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고.. 예전에 승려들이 고양이를 훈련시켜 사원으로 사람을 모으는데 톡톡히 역할을 하긴 했으나 제가 갔던 때에는 평온하게 낮잠을 자는 고양이들만 많았습니다. 다만 사원의 벽에 붙어 있는 승려가 든 굴렁쇠로 고양이가 점프하는 과거의 오래된 사진만이 예전의 유명했던 사원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게끔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관광객들 앞에서 점프 묘기를 부리는 고양이라.. 언젠가 한 번쯤 만나 보고는 싶네요.
이유 모를 먹먹함과 아득히 멀어진 풍경으로 보낸 미얀마의 개와 인사하고, 보트를 타고 인레 호숫가에 위치한 점핑 캣 사원, 응아뻬꺄웅(Nga Phe Kyaung) 사원에 들어갑니다. 호수 위에서 보트를 타고 이동할 때에는 땡볕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사원 내부의 시원한 그늘이 무척 반갑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원 내에서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녀야 하므로 운동화를 벗어 한쪽에 내려놓고 사원 내부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신발을 내려놓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난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방금 벗은 신발에 내 체온이 남아있어 따뜻했기 때문이었을까요, 벗어 둔 신발 위로 올라가는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를 보며 마냥 신기했습니다. 알기로, 사람 손이 탄 새끼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에게 버려지는 경우가 있다고 들어서 만지지는 않고 그저 흐뭇하게 바라만 보았습니다. 물론 이 사원 같이 사람이 끊이지 않는 곳의 고양이는 그런 일까진 일어나지 않겠지만.
또 왜 하필 신발 위인가.. 깨끗하지는 않을 텐데 염려하면서요. 시간이 지나도 신발에서 내려올 생각은 않고 심지어 새끼 고양이는 신발 안으로 들어가고 어미도 신발에 몸을 비비는 광경을 보고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냄새라도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건기에서 최고조에 이른, 미얀마 신년 직전의 무더운 어느 날이었거든요. 어쨌거나 환영받는 느낌에 기분은 특별했습니다.
어미와 새끼 고양이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는 와중,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의 목덜미를 물어 제 신발 위에서 제 무릎 위로 새끼를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 손 탄 고양이를 어미가 돌보지 않을까 염려하던 마음이 현실이 된 것인데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어미는 아무래도 사교적인 고양이 같아서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어 오는 고양이를 안아 올렸습니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새털 같은 고양이를 안아 본 적은 처음이어서 조심스럽게 신기한 마음으로 가까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비록 점프하는 고양이의 묘기는 보지 못했지만, 고양이의 환대를 받고 훈훈해진 마음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인레 호수를 떠나왔습니다. 여행을 여러 군데 가보았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현지 개와 고양이와의 추억 그리고 묘연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언젠가 다시 미얀마에 가게 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