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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민 Nov 01. 2022

다소 긴장되고 도발적인 쌀떡 테이스팅 노트

나의 쫄깃한 식감 취향에 관하여

*경고* 치악력과 저작력, 리드미컬한 목 넘김의 조절이 약한 어린이 및 구강악안면 노약자는 기도폐쇄의 위험이 있으니 쌀떡 취식에 주의하시오.




누군가 당신의 떡볶이 떡의 취향이 밀떡이냐 쌀떡이냐 묻는다면 내 취향은 단연코 쌀떡이다. 그것도 순도 높은 쌀 함량 100%를 갈망하는 진정한 쌀떡파이다.

솔직하고 진지한 심정으로, 국어사전에 단어 등재와 뜻풀이의 절대적인 권한을 누군가 전격 나에게 일임해 준다면 밀떡은 떡이라고도 부르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 [밀떡은 빵이지 떡이 아니야. 쌀만 떡이야.] 하지만  이런 마음속 외침-독재적인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사전 상의 의미로는 쌀을 포함한 밀을 써서 만든 음식도 엄연히 떡이   있다. 떡은 원재료로 곡식을 가공한 음식을 부르는 것이다. 곡식 가루를 찌거나,   것을 치거나 빚어서 만든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분명히 나와 있어서 반박할 수가 없으니 어디서 감히  멋대로 우기고 다닐 수가 없다.



저탄고지 키토식이 각광받는 요즘 식문화 트렌드에 역행하여 그야말로 탄수화물 압축파일 그 자체인 흰 쌀떡에 대한 찬양이라니, 이렇게도 유행을 전혀 못 따라가고 되려 그럴 의지도 없이 고집스러운 입맛과 고전적인 취향에 대한 궁색하고도 그럴싸한 이유들이 궁금해졌다. 사실 이런 나의 떡 취향의 재발견과 느껴지는 감각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정리한 것은 나의 오랜 떡 취식 연대기에서 비교적 최근에 표시될만한 일이라, 이제야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말하는 행위인 글로 풀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 계기는 어느 날 양념 맛이 맵지도 달지도 않은 맹숭맹숭 그럭저럭인 쌀떡볶이를 무아지경으로 씹다가 불현듯 시작되었다.

통통하고 쫀득한 두께감의 쌀떡이 내 입 안에서 마구 짓이겨지고, 침샘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밀라아제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강한 단맛에 정신이 몽롱해져 갈 때쯤, 쌀떡의 식감과 존재감이 새삼 내 안에서 훅 하고 다가왔고 이렇다 저렇다 뚜렷한 역할도 주어지지 못한 양념은 내 생각의 무대 중심에서 밖으로 밀려났다.

이 말인즉슨, 이 쾌락적인 맛에 양념 따위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 떡볶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쌀떡을 좋아하는 거였네.] 이걸 인지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내 어린 시절부터 소울푸드라고 주저 없이 언급되던 떡볶이는 가래떡 혹은 절편에 밀려 한참 뒤로 빠지게 되었다.



그럼 이제 누가 진짜 주연인지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무대 위에 올려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그래서 쌀떡 중에서도 최애를 꼽으라면 가래떡이냐 절편이냐. 이건 지금 당장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 양자택일의 문제에서는 시차를 두고 좀 더 곱씹고 심사숙고해보고 싶다.

떡집에 들르면 기쁜 마음으로 먼저 두 종류 중 눈에 띄는 걸 집어 지체 없이 계산한다. 보통 절편이 바로 집어갈 수 있게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을 때가 많다. 배가 매우 고픈 것은 아닌데도 당장 떡 하나 쏙 빼내어 바로 입 안에 쑥 집어넣지 않고는 못 배긴다. 나는 떡집 앞에서 인간의 기본 욕구인 식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했으며, 역시 나는 눈앞의 유혹에 곧바로 굴복해버린, 전혀 수련이 되지 않은 한낱 평범한 사람임을 자각하자 가벼이 탄식이 나왔다. 그 숨결을 받아 입 안의 좁디 좁아진 틈에 살짝 불어넣고 본격적으로 우물우물 씹기에 들어간다. 절편은 꼭 한 입도 베어 물지 않고 꽤 큼직한 한 조각 통째로 바로 입 안으로 욱여넣어야 한다. 왜냐면 이 식감이 주는 쾌감의 시작은 압박감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쌀떡 덩어리를 입에 가득 넣자마자 떡의 탄수화물 압축률이 높아서 목이 막히는 느낌, 목 넘김 까딱 잘못하면 기도폐쇄 위험이 도사리는 은밀한 스릴이 혀와 마구 뒤엉켜야 되기 때문이다. 이 씹는 감각이 떡의 부피에서 주는 공간감과 찰진 쌀떡의 높은 탄력으로 인해 씹을 때마다 생기는 동력으로 차오르는 속도감. 그 충만해지는 느낌을 또 누가 알아줄까 모르겠다.

이 은근한 고비를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안전하고 길게 어금니로 쿵쿵 찧어대기 시작한다. 음치박치인 내가 무지함으로 인해 그게 무슨 박자인지는 설명할 길 없으나 나름의 리듬으로 짓이겨져 절편은 퍽 질펀해지며 단맛이 올라와 은은한 만족감이 마무리되어간다.

이런! 딱 한 개만 먹자 했는데 부지불식간에 이 리듬의 마디가 몇 번 반복되다 보니 한팩을 벌써 다 먹어 버렸다.



아, 이건 어디까지나 떡의 질감으로 인해 느끼는 식감의 취향에 대한 얘기에 한정된 거니 혹여 오해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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