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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의 낯선 언어 Dec 27. 2021

적막의 밤 속에서

또 다른 적막의 밤

지금 느껴지는 곳은 적막 속에 서있는 나의 얼굴이다.

나는 어느새 시간을 먹고 자라왔다.

그 긴 시간들이 나의 피와 살이 되어

나를 이 고요의 적막으로 밀었다.

이곳이 나의 집이다.

나는 다시 과거가 되어 버릴 이 시간들을 붙잡고 싶어

또 이렇게 글을 몇 자 적어본다.

지금 내 안은 두려움과 불안의 계곡이다.

언뜻 보기에는 무성한 숲이 평화롭지만

소리 없는 고통이 폭포수처럼 나를 흔들고 깨운다.

어디가 종착역인지 모른 채.

삶은 멈추어지는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나를 공허와 허무로 이끈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쓸쓸함이다.

그래서 나는 그 공백을 채우고자 한 글자라도 더

진심을 담아 적어본다.

오직 이 순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이별하는 시간들을 추억하기 위해서.

자, 이제 이 글들은 또 과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진실로 축복의 길을 건너온 것이다.

그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을 적었으니,

그 순간은 오직 나의 시간이었다.

삶은 이렇게 집중과 고요 속에서만 깊어지고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흔치 않다.

우린 이미 무감각한 세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익숙함에 몸을 맡기고 안락함만을 꿈꾸기에는

시간이 우릴 기다려주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으며

정신이 죽어갈 때 몸은 뒤따를 뿐이다.

주어진 시간이 끝났을 때 우리는 놓쳤던 시간을 후회할 것이다.

후회하기에 그때는 이미 늦는다.

신은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적막의 밤도 주었다.

먼 훗날 또 다른 적막의 밤도 찾아올 것이다.

내가 늦었다 느끼는 그 순간,

그곳은 또 다른, 내가 몰랐던 적막의 밤이다.

삶은,

느낄 수 있는 적막의 밤이다.

죽음은,

느낄 수 없는 적막의 밤이다.

나는 차라리 느낄 수 있는 이 적막의 밤을 선택하고 싶다.

그저 이 모든 것들을 느끼고 싶다.

살아있는 이 순간,

적막의 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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