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범이입니다.
요즘 이 것 모르는 분들 안 계시죠? MBTI.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인 이 MBTI는 1962년에 발표되었는데요.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카를 융(Carl Jung)의 심리유형론 이론을 바탕으로 고안된 성격 유형 검사 도구입니다. 요즘 이 검사도구가 너무 유명해져서 한 번쯤은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저는 사실 MBTI를 그렇게까지 믿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조직 구성원들의 모든 MBTI를 서로 공유하고 한 데 모아봤더니 "아하 (A-ha) 모먼트"가 생기더군요.
MBTI. 이 것은 과학이었다!!!
MBTI는 어릴 적 재미로 보는 심리 테스트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팀원들은 모든 구성원들의 MBTI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조직 구성원들의 각각의 특성을 서로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상대에게 맞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활용할 수 있어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주더군요. 또 본인과 사고방식이 유사한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소규모 프로젝트를 도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미도 있지만 여러모로 유용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저는 "I" 성향의 신입 팀원 A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A의 고민은 이러했습니다.
"원래 성격은 내성적인데 신입답지 않게 에너지가 부족해 보인다는 피드백을 듣고 요즘 외향적으로 행동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나머지 집에 오면 뻗어버려요. 조직에 적응하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A는 말투도 느리고 사고 과정에 있어 신중한 편입니다. 하지만 면접장에서는 1년을 준비해서 그런지 몰라도 대화에 막힘이 없었고 신입만의 에너지와 진정성이 충분히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입사 후 A는 여러 업무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응해야 했는데 워낙 신중한 성격인지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편이었습니다. 또 초반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죠. 그러니 A의 성격이나 상황을 모르는 선배들은 A에게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정말 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겪는 일일까? A는 꼭 본인의 원래 성격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서 뻗게 될 정도로 스스로를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저는 잠시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I와 E는 에너지의 방향을 내면에서 찾는 것과 외부에서 찾는 것의 차이일 뿐
사실 <카를 융의 심리유형 이론>에서는 "내향적 vs. 외향적"이라는 의미를 "어떠한 대상을 대하는 태도"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향적인 사람은 어떠한 대상이 있을 때 나를 보호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한 발 물러서는 태도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대상과 직접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파악하려고 하는 태도라고 합니다. 내향적인 경우에는 발생한 사건을 "본인"의 주관적 상황과 비교해 판단하는데 외향적인 경우에는 발생한 사건을 본인보다는 "사건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겠네요.
내향적 : 저 대상 보다 나의 가치가 우선이니 조금 더 신중하자. 그런데 이러다가 또 신경쇠약에 걸리겠어.
외향적 : 저 대상의 가치가 무엇인지 일단 맞춰가며 알아보자. 그런데 이러다가 또 히스테릭 해지겠어.
심리 유형 이론에서 조금 더 발전된 MBTI에서는 이 것을 "에너지의 방향"이라고 표현합니다. 에너지를 내면에서 찾는 사람이라면 내향적인 것이고 에너지를 나 이외의 외부에서 찾는 사람이라면 외향적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조금은 다르다고 합니다.
I와 E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내향적 : Inside.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조금 더 선호. 영화 감상, 트레킹, 드라이브, 독서 등
외향적 : Outside. 외부 활동을 통해 해소하는 것을 조금 더 선호. 친구와의 수다, 커뮤니티 활동, 운동 등
저는 A에게 그가 하는 고민에 대해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신입의 에너지는 적극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려는 자세, 실수하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지속적으로 묻고 연습하는 모습, 원활한 업무를 위해 주변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만들어가려는 모습 같은 것이지 외향적인 성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회식 장소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예약한다던지, 선배들의 개인사를 물어보며 개인적으로 친해지려고 한다던지, 과장된 리엑션을 하며 함께 웃고 분위기를 잡는다던지 하는 게 아니라고요
제 조직 리더들의 절반이 "I" 성향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한 리더는 수년간 고과도 높고 다면 평가에서도 조직 내 1위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높은 사람입니다. A의 논리라면 그분들은 내향적 성격의 분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성장했겠습니까. "I" 성향의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자신의 상황과 비교해 판단하는 사람일 뿐,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사회생활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이기에 성장할 잠재력이 더 높은 분일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맞네요! "하며 끄덕이던 A는 선배들에게 조금 더 업무를 배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찾아가기로 했고,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다고 위축되지 않기로 했고,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생활 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시나요?"
1~2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에서는 채용 시 노골적으로 MBTI 정보를 입력하는 절차가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원자가 거짓으로 입력하는 등의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죠. 그래서 최근 기업에서는 채용 면접 시 "지원자에게 MBTI를 물어보지 말라"라고 가이드하기도 합니다. 제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도 그렇고요. 그 이유인 즉, 면접관이 내향적인 지원자보다 외향적인 지원자가 조금 더 함께 업무 하기에 수월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고, 지원자의 성격을 추론함으로써 면접관 개인의 입맛에 따라 지원자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등 후광 효과로 인해 지원자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후광 효과(Halo Effect)는 어떠한 사물이나 사람을 평가할 때 일부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부분에 집중함으로써 나머지 전체 평가에 대해 영향을 받는 인감의 심리적 오류를 말합니다. 이 내용은 다른 포스팅에서 조금 더 깊이 다뤄볼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에서 MBTI를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물어본다면 솔직하게 말씀하실 건가요?
제 답변은 이렇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아요.
우리의 타고난 성격과 사고하는 방식 등은 내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잠깐 연기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면접관이 질문했는데 "노코멘트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죠? 그렇다고 현장에서 다른 유형으로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취직에 성공해 입사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회사생활이 정말 끔찍할 겁니다. 꿈꿔왔던 회사 생활이 악몽의 시작이 될 수도 있어요.
잡코리아가 2022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대 직장인 퇴사 이유의 1위가 '적성에 맞지 않은 업무'였습니다. 결국, 내가 맡은 업무와 나의 성향이 충돌하는 경우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것이죠. 퇴사 사유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 다시 설문을 한 결과 놀랍게도 1위는 '상사/동료와의 갈등'이었습니다. 절대 이런 상황을 만나서는 안 되겠죠. 그만큼 정서적인 부분은 취업과 직장 생활에 있어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생활 20년을 하면서 그 생각에 변함은 없습니다.
그럼 면접관은 왜 MBTI를 물어볼까요? 제 경우 해당 포지션에서 분석 능력이 매우 중요했기에 면접을 진행하는 동안 MBTI와 유사하게 일관된 답변을 하는지 참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원자의 역량을 면접장에서 충분히 발휘한다면 "I"던 "E"던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만약 어떤 면접관이 I나 E, 두 유형에 차등을 두거나 면접 현장에서 그런 뉘앙스를 조금이라도 풍기는 면접관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서 그냥 그런 팀은 들어가지 마세요. 그런 팀은 다양성도 부족하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일개미가 필요한 겁니다. 잠재력을 지닌 자신의 가치를 고작 그런 팀에 맡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