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상담
- Glad to see you.
상담사 셜리가 화면 너머로 인사를 건넨다.
내 또래로 보이는 아시안 여성인 그녀는, 만약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적 동질감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 So, please tell me about yourself.
셜리는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한시간에 무려 백만원 가까이 되는 정신 테라피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나의 경우,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직원들과 그 배우자의 카운셀링 비용을 지원해준 덕분에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 My name is Lucy. I'm 30 years old. And.. I have a 2 years old baby.
나에 대해서 소개할 말을 천천히 골랐다.
이름과 나이, 가족, 그리고 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셜리는 내가 미국에 언제 왔는지, 미국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를 물어보았다.
- It’s been about two years since I moved to the US, and I previously worked as a public officer in South Korea.
30여분 동안 내 배경에 대해 물어본 셜리는, 오늘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 So, what would you like to achieve through counseling?
이 상담을 통해 어떤 것을 이루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보통의 정신 상담은 먼저 내담자가 증상을 설명하고, 상담사가 진단과 해결책을 처방해주는 순서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셜리는 질문을 통해서 내 안에서 스스로 답을 이끌어내게끔 하는 것 같았다.
이 상담을 통해 무엇을 바꾸고 싶냐고?
일단 괴롭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크지... 밤에 잠을 잘 자고 싶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했으면 좋겠어. 잘 지내다가도 대낮에 갑자기 울적해져 구덩이에 혼자 빠진 것 같은 그 기분은 이제 그만 느끼고 싶어. 진통제를 먹으면 두통이 사라지듯, 내 힘든 감정도 이번 상담으로 싹 사라지면 좋겠단 말이야.
... 라는 말을 영어로 하기에는 아직 내 영어실력이 부족했다.
- I ... want to be a strong person.
- Can you tell me what “strong” means to you?
- To me, it means being able to handle stress, being a good mother, and being a capable and competitive employee.
나는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더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지금 겪는 정신적,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다.
순간 셜리는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대답에 대해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셜리는 내게 궁금한 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어떤 원리로 이 상담이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약물적 도움 없이 화상 상담만으로 내가 더 좋아질 수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I’m wondering how this kind of therapy actually works. What methods or techniques do you usually use to help people?
셜리는 상담이 3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먼저, 셜리가 내담자인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내 배경과 한국의 문화, 내 생각, 마음상태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다음, 내 생각 중에 '진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고 했다. 사회적으로 강요당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타의적으로 하게 된 일들을 마치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구분해내자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입 밖으로 말해보자고 했다. 그것이 설령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셜리는 "애기 키우기 진짜 힘들어, 싫어!"라는 예시를 들었다. (뜨끔)
셜리의 얘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감상이 튀어나왔다.
- Hey, It feels like… this is a journey to find myself.
- Yes, exactly! You’re catching on really fast.
셜리의 상담은 마치,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셰르파와 함께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회적 기준치를 맞추지 못하는 나를 고치기 위해 상담사를 찾아왔는데,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찾는 것이 상담의 목적이라고 하니,
혼란스러우면서도 왠지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첫번째 상담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질문으로 꽉 채워 한시간만에 끝이 났다.
다음 상담부터는 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는 안내를 마지막으로 말이다.
셜리와의 첫 상담이 끝나고,
실질적으로 해결되거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땅에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애기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시간이라는 것,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주는 힘 덕분이었을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상담을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