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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Mar 16. 2018

“네가 좋기도 하지만 밉기도 해”

양가감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멀어질 때 불안한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연인에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종종 듣는다. 연락이 없거나 소홀하게 느껴질 때 ‘서운하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두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매번 혼자 토라지면서 아닌 척하는 자신이 제일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일종의 거리두기 방식으로 연인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 하루 종일 연락이 없으면 나도 그만큼의 시간 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무심한 척 하겠다고 결심하거나, 상대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데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척 거리를 두면서 속으로는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솔직하게 이런저런 이유로 화가 나고 서운했다고 말하면 금방 해결될 일을 애매한 긴장 상태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심리학자 에인즈워스Ainsworth의 애착실험 중 ‘회피애착 아동’ 같다. 애착실험에서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있다가 잠깐 실험실 밖으로 나간다. 회피애착 아동은 양육자가 떠날 때 그러든 말든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양육자가 돌아왔을 때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 무관심해 보이는 회피애착 아동의 생리적 반응을 측정했을 때,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회피애착 아동은 애초에 애착대상과 떨어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무심한’ 아이가 아니라 단지 스트레스 반응을 억누르고 ‘아닌 척’,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 아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안정애착 아동은 어떨까? 양육자와 분리될 때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내 안정된 상태로 돌아와 주변을 탐색한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분리될 때 어느 정도의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안정애착 아동들은 솔직하게 불안해하고, 돌아왔을 때도 쉽게 양육자에게 안긴다. 즉 솔직하게 애정을 표현한다. 반면 회피애착 아동들은 혼자 남겨질 때의 자연스러운 불안을 억제하고, 양육자가 돌아왔을 때도 전혀 반기지 않는다. 그들은 일종의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양육자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나를 두고 잠시라도 떠났다는 것’이 미워서 관심 없는 척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성인들은 회피애착 아동처럼 감정을 숨기고 억제하는 습관이 고착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불안하지만 무관심한 척하는 회피애착 아동처럼, 자존심이 상해서 혹은 상대가 무시할 것이 두려워서 감정표현을 솔직하게 하지 못한다. 떨어져 있는 동안, 연락이 없는 동안 사실은 ‘두려웠다, 서운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관심 없었다, 너 없이도 잘살았다, 네가 돌아오든 말든 난 관심 없고 내 할 일을 하련다’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험의 아동들처럼 다가가서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속내는 꾹꾹 눌러놓고 있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양가감정으로 고통받는다.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멀어지고 싶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질 때 약간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나약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다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을 오해했던 것이다. 서운한 감정이 들어서 괜히 쿨한 척 멀어지고 싶을 때, 그냥 솔직하게 ‘서운하다’고 말해도 괜찮다.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해보면 걱정했던 것만큼 두려운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오히려 퉁명스러움, 무심한 척, 거리두기 등 비언어적인 감정표현으로 상대를 괴롭힐 때보다는 훨씬 따뜻한 다독임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언제나 솔직함이라는 것은 의사소통의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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