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리러브 Oct 31. 2023

아이가 가져온 효도쿠폰, 엄마에겐 효도쿠폰숙제

아이가 효도쿠폰을 가져왔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선생님이 제시한 효도쿠폰을 써야한다. 원치 않은데 써야하는 항목도 있다. 그 중 하나가 흰머리 뽑기이다. 흰머리는 뽑아야할 대상인가? 부모님의 흰머리를 뽑는게 과연 효도인가? 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내 머리카락엔 흰머리가 수복하다. 겉보다는 속안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가끔 염색을 할 뿐이다. 뿌염이다. 나이에 비해 일찍 흰머리가 생겨서 공적인 자리에 나갈 땐 신경이 쓰여서 염색을 한다. 그렇다고 뽑아야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연스러운 현강이니끼.. 흰머리를 뽑는다고 흰머리가 주는 것도 아니고, 흰머리 한 두가락 뽑는다고 염색 만큼이나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요는 나이들어 머리카락이 빠져서 고민이지 흰머리가 고민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 흰머리를 뽑아야하나. 그렇지 않아도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고민인데. 오히려 내 생각은 그랬다. 다만 흰머리를 뽑는 과정 속에서 부모와 아이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라는 의미인가. 친밀감을 느끼는 또 다른 방식이라 생각한걸까? 그렇게까지 생각한 걸까. 잘은 모르겠다. 흰머리를 뽑겠다는 아이의 행동이 내게는 전혀 효도가 아닌데 내 머리를 재물로 받쳐야하나. 숙제를 위해. 이걸 다 채우지 못하면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벌점을 줄지도 모른다. 벌점제로 학급을 운영하는데 엄청 복잡하다. 뭐만 했다하면 벌점이다. 스티커를 붙여서 점수를 누적시키는데 벌점 스티커를 붙이지 않기 위해 아이는 열심히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다.


그런데 난 잘 모르겠다. 과거엔 흰머리 뽑기가 효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또 하나 더 있다. 부모님 발 씻겨드리기. 나는 굳이 내 발을 아이에게 씻게 하고 싶지 않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세족식이란게 있는건 안다. 예전 어릴 때 교회에서 세족식을 했는데 그때 나는 토할 뻔했다. 정말이지 하기 싫었고, 억지로 했던 그 경험이 너무 싫었다. 내가 왜 선생님 발을 씻어줘야하는가. 시켜서 한 그 행동은 내게 뭔지 모를 수치심을 주었다.  그 경험 탓인지는 사실 모른다. 굳이 아이에게 내 발을 맡기도 싶지 않다. 까탈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내 발을 씻어주는게 얼마나 유쾌할지 모르겠다. 나는 내 발은 내가 씻고 싶다. 굳이 아이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아이도 커갈 수록 혼자서 다 씻는다. 내게 씻어달라 요청하지 않는다. 나는 굳이 일부러 아이를 씻기진 않는다. 남자아이니까 성별이 다른 엄마가 씻기는 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각자 씻고, 좀더 깨끗하게 씻길 필요가 있다면 아이아빠가 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


효도라는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쿠폰란을 만들어놨지만, 잘은 모르겠다. 설거지하기, 심부름하기, 식사 준비하기, 방 청소하기 등도 효도쿠폰 항목에 들어가있다. 그런데 나는 그 효도라는 단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해야할 일들이다. 효도가 아니다. 부모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닌데 왜 이런 쿠폰을 만들었을까. 이 효도 쿠폰을 쓰면서 내가 효도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효도 쿠폰이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써 마땅히 해야할 일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가족이고,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가 필요하며, 그 배려의 행동 중에 방 청소, 식사 준비, 설거지 등이 필요하다고.



집안일에 대해서 효도라는 인식으로 아이들에게 주입한다는 것은 애초에 집안일이란 아이의 일이 아니라 부모의 일인 것같아서이다. 효도에 대한 개념도 시대마다 다르다. 집안일이란 부모의 일, 어른의 일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인 아이들도 응당 동참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사실 이 효도쿠폰이 맘에 들지 않는다. 효도라는 단어도, 이걸 굳이 쿠폰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자꾸 행동 교정을 하려하는지 그 의도가 별루이다. 아이들의 행동 그 기저에 깔려있는 생각에 각성을 주는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은 수긍하지 않아도 네가 해야할 효도는 대단한게 아니다. 부모님 말 잘 듣는게 효도도 아니고, 스마트폰 안하는 것도 효도가 아니다.스마트폰 절제는 아이의 인생을 위해 좋은 것이고, 부모말만 잘 듣는다고 아이가 잘 크는 것도 아니니까.  아이의 인생에서 장기적으로 습득해야할 습관의 가치에 대해 깨달음을 줄 수 있는 행동요령들을 제시해주는 쿠폰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아이에게 집안일을 많이 시키진 않는다. 아직 아리기도 하다. 초3인데 학교만 갔다오면 방바닥에 던져놓는 옷들과 가방을 볼 때마다 심란하다. 내가 요구하는 집안일은 아이의 행동이 집안의 질서에 벗어난 경우를 뜻한다. 그래서 아이엑 시킨 건, 학교 갔다와서 벗은 옷은 빨래바구니에 넣기, 밥 먹고 난 후 자신이 먹은 그릇은 개수대 안에 넣고 물에 담가놓기 정도이다. 실내화 빨기는 종종 실패한다. 설거지는 아직 주기적으로 시키진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 저녁은 그릇 상태를 확인한 후 아이에게 쿠폰을 통해 시킬 예정이다. 깨질 그릇들을 치우고, 과하게 많은 그릇들도 정리하고,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수 있게 해야한다. 전에 남편이 설거지를 시켰는데 처음에 신나서 했던 아이가 씻어도 씻어도 줄지 않는 그릇 때문에 힘들어했다. 아이는 설거지가 힘들다고 버거워했다. 적당히 시켜야 아이도 즐겁고, 다음번에도 도전할 수 있다.


쿠폰 숙제는 10월 말까지이다. 11월 초에 가져가야한다. 즉 내일까진 것이다. 이 쿠폰을 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엄마인 내게, 무엇이 효도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성실히 아이가 가져온 효도쿠폰 숙제를 해야한다. 결국은 엄마가 마음 먹고 실행해야할 수 있는 숙제 아닌 숙제가 되어버린 효도쿠폰. 그렇다고 흰머리를 뽑으라고 내어주진 않을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밤, 붉은 달을 보며 문득 든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