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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게 Apr 13. 2022

완벽한 남편과 완전한 행복 사이

 

 또다시 결혼해 버렸다!

결혼에는 실패했지만 나는 여전히 '화목한 가정', '아늑한 행복'을 꿈꿨다. 일 년이 넘는 연애기간 동안 가끔 성격 차이로 다투긴 해도,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는 그와 함께면  행복을 욕심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환상을 꿈꾸는 여자들이 설정한 허구일 뿐, 현실에 존재할 리는 . 그래도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영원히 내 편이 되어줄 거라고. 동화처럼 극적이진 않아도 무난한 해피엔딩 드라마의 주인공쯤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침을 먹고 아기용품을 폭풍 검색하던 어느 날 오전, 출산을 앞둔 임산부들의 단톡방에 남편에게 받은 임신, 출산 선물 자랑이 이어졌다. 생각도 못했던 터 멍한 상태로 그들의 대화 내용을 일명 '눈팅'하며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 아침부터 기분 좋은 소식! 오늘 신랑이 출산선물 뭐 받고 싶냐고 묻네요? 여러분은 뭐 받으셨어요?

- 명품 기저귀 가방이요!

- 아이패드와 명품 지갑 받았어요.

- 전 임신 축하 선물로 집안일 안 하기를 선물 받았어요!

- 저는 청소, 빨래, 식사 준비, 첫째 케어까지 모든 집안일은 신랑이 하고 있어요!

- 원래도 집안일은 신랑이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아기 빨래와 방 꾸미기도요.

- 저희도 집안일은 남편이 더 잘해요.     


 이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데 나는 왜 무슨 말을 할지 왜 고민했을까? 나도 적당히 남편 자랑을 할까, 솔직한 감정대로 "우리 신랑은 시켜야 하는데 다들 너무 부럽네요"라고 할까. 왜인지 머뭇거린 건 자연스럽게 대화에 기엔 내 감정이 그들보다 좀 더 복잡했는지 모른다.


얼마 전, 남편에게 느꼈던 서운한 일을 그 단톡방에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의 기능을 하는 것이 익명 단톡방의 역할이자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이들은 결코 그런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다정한 남편의 극진한 케어를 받는 그녀들에 대한 질투심 때문일까.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한 줄 알았는데, 다른 차원에 사는 듯한 그들에게 느끼는 이질감 때문일까. 아니면 왜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남편 자랑을 할까 싶은 궁금함 때문일까?


 6년 연애 후 결혼 생활 5년 차에도 단 한 번 싸운 적 없다는 친구 부부엔 그들만의 애로가 있을 거라며 부러움을 감추고, 졸업 후 십오 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보여준 남편의 훈훈한 외모엔 속으로 얼굴값을 할 거라 질투한다. 또 오랜만에 재회한 선배가 경제적 여유로움을 자랑할 땐 시댁에서 주는 스트레스가 만만찮을 거라며 그들의 행복을 깎아내리는 이 삐딱한 심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렇게 복잡한 감정들을 분석하며 채팅창을 읽다가 든 생각.

 '어쩌면 여자들은 완전한 모양의 결혼 생활을 꿈꾸는 게 아닐까?'

 고가의 선물과 약간의 이벤트에 내 삶을 전시하고, 남편의 애정 어린 케어에 부러움의 시선을 즐긴다. 나처럼 삐딱한 사람은 그런 얼굴도 모르는 허구의 인물과 현실의 남편을 비교하면서 "다른 남편들은 임신한 아내에게 이렇게 해준다던데." 라 투정하다 종내는 본전도 못 찾을 말다툼을 하고 말겠지.


 결혼을 한 번 하든 두 번 하든, 같은 사람과 같은 상황을 사는 게 아니라서 그 속의 관계는 늘 어렵고 복잡하다. 남편이니까 이런 말을 해도 되겠지. 내 사람이니 이 정도 투정은 받아주겠지. 내가 이만큼 했으니 그도 요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내 남편은 좋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이미지 또한 내가 만든 상상일 뿐 현실에선 실망과 감동을  넘나든다. 신혼과 동시에 찾아온 아기의 기쁨도 잠시, 출산 후 있을 육아 전쟁보다 그와 맞닥뜨릴 갈등더 두려운 이유다.

  

 '좋은 남편'을 넘어 '좋은 사람'은 SNS나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 싸우더라도 다가와 대화를 청하고, 그 대화를 받아들여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결국 '나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초록뱀, <좋은 남편>


 결혼 상대자가 비록 완벽한 남편감은 아니어도, 결혼 생활마저 꿈꿨던 행복과 거리가 멀진 다. 그저 생각보다 평범한 일상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면서도, 그들이 말하는 자랑이 전부는 아니겠지 싶다가도, 그것이 나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 서글프다가도 비교는 금물이라며 내가 가진 크기의 행복만큼 잘살자고 다짐한다.


  온라인 속 인물들자랑하는 명품들을 소유하고, 드라마 남주인공 같은 이를 곁에 두면 더 행복할지는 알 수 없. 하지만 확실한 건, 현실에서 건네는 내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의 행복'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완전한 행복은 그와 함께하는 우리 집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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