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
마더그라운드가 에어로케이와 만나 업계 최초 승무원을 위한 운동화를 선보인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접했다. 항공사의 유니폼화 콜라보라니! 어쩌면 유니폼에서도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대상인 신발을 브랜드 콜라보로 풀어낸다는 게 흥미로웠다.
처음 알게 된 항공사인가 싶더니 예전 젠더리스 디자인에 움직임이 편한 유니폼을 입히는 것으로 알려진 회사였다. 이번 마더그라운드와 함께 선보이는 유니폼화 또한 업의 본질과 근무 환경을 고려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항공사뿐만 아니라 패션 아웃도어, 전통시장, 제주 소품샵, 덴마크 양봉협회가 찾는 신발 브랜드, 마더그라운드는 대체 어떤 브랜드일까?
'마더그라운드'는 패션 브랜드 브라운브레스의 창업 멤버 출신 이근백 대표가 2017년 크라우드 플랫폼 텀블벅에서 성공적인 펀딩으로 출시한 스니커즈(신발) 브랜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로부터 영감을 받는다'는 브랜드 철학 기반의 제품 디자인과 투명한 제작 원가 공개, 유통 업체 수수료를 제외한 가격 책정 등으로 개성과 가치 소비를 중요시 여기는 세대 중심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마더그라운드의 이름은 인간이 살고 있는 이곳, 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Mother Nature(대자연)’라는 말에서 착안했고, 인간과 가까운 느낌을 주고 싶어 엄마와, 땅을 결합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마더그라운드는 우리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스니커즈 중심으로 운동화와 관련 굿즈를 제작한다.
제품 네이밍 또한 눈길을 끈다. 자작나무, 이끼, 비자림, 산호, 시멘트 등 주로 보통명사로 작명한다. 흡사 작품명을 연상시킨다.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영감을 받았던 모티프를 이야기하면서 신발을 소개하거나 이마저도 생략하고 화보처럼 사진 이미지만 보여줄 때도 있다. 보통 운동화는 퍼포먼스, 착용감, 소재 등 실용성을 중심으로 홍보하기 마련인데 너무 담백하다. 오히려 너무 과한 생략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브랜드 철학과 신발 제작과정 그리고 제품 클로즈업 사진을 보면 착용감과 실용성은 기본값일 것 같은 확신에 이른다. 실제 후기를 보면 '일상화로 편하고, 자주 신게 된다'며 구매하는 고객이 꽤 되는 것 같다. 생산자가 착용감 좋다고 백 마디하는 것보다 구매자가 한 마디 하는 게 진정한 홍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좋은 흔적'은 마더그라운드의 핵심 철학이다. 마더그라운드의 모든 행보가 이 '정신'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흔적은 여러 의미가 있다.
1. 과정에서 남기는 좋은 흔적
마더그라운드가 전면으로 내세우는 브랜드 철학은 아래와 같다.
1. 발걸음은 흔적을 남깁니다. 좋은 흔적을 남기며 걷고자 합니다.
2. 우리의 제품은 지금의 흔적입니다.
3. 함께 행복한 삶을 위해 같이 걷고자 합니다.
4. 우리의 모든 제품은 환경에서 영향을 받고, 직접 디자인하며, 최고의 파트너들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공정하게 판매합니다.
-마더그라운드 웹사이트 브랜드 소개 중-
'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이 있다. 마더그라운드의 브랜드 철학을 보면서 좋은 신발은 '좋은 과정이 담긴 신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태어난 좋은 신발을 내가 신는다면, 내가 향하는 길이 곧 좋은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깃든다. 예전에 탐스(TOMS) 슈즈를 구매했을 당시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다. 마더그라운드는 선한 영향력의 전파력을 믿기 때문에 좋은 신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2. 신발이 남기는 좋은 흔적
신발에서 좋은 흔적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웃솔(밑창)일 것이다. 맞다, 마더그라운드는 아웃솔 디자인이 특이하다. 자연의 텍스쳐를 무늬로 담아내어 신발 자국만 봐도 '아! 마더그라운드 신발이네!'하고 바로 알 수 있다.
마더그라운드를 신는 사람들도 좋은 흔적을 남기길 바라는 마음을 아웃솔 디자인으로 표현하여 메시지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브랜드 회상까지 돕는다. 보통 운동화는 측면 또는 텅(설포)*에 로고 플레이로 브랜드를 노출한다. 대중 브랜드이든 명품 브랜드이든 비슷하다. 만약 마더그라운드도 비슷하게 했다면 보통의 브랜드로 잠시 기억되다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마더그라운드는 아웃솔을 브랜딩 영역으로 삼아 타 신발 브랜드와 차별화가 되었다. 오히려 운동화에서 마더그라운드 로고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개성적이면서 미니멀해 보이는 부분이 유행을 타지 않아 일상화로써 스테디셀러가 된 것 같다.
마더그라운드의 이야기는 아웃솔(밑창)에 많은 부분 담겨 있습니다. 등고선 혹은 나무 무늬를 연상시키는 자연의 텍스처를 표현하여, 보는 것,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텀블벅 프로젝트 제품 소개 중-
* 텅(설포): 신발끈을 동여매었을 때 발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부분. 보통 신발의 '혀'라고 부르기도 함
마더그라운드는 신발 구매자가 궁금해하는 근원적인 궁금증을 투명하게 알려준다. 바로 제작 원가 공개이다. 생산비, 운영비부터 임금, 마진까지 모든 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마더그라운드가 정보 공개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것은 ‘유통’이다. 마더그라운드는 제품 판매 가격 중 약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유통 업체의 수수료를 온라인 D2C(Direct to Consumer)*판매 형태로 없애 훨씬 더 경제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그리고 마더그라운드와 함께하는 제작 파트너사 정보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 D2C(Direct to Consumer): 기업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는 형태의 비즈니스를 뜻함. 기존의 오프라인 및 온라인 유통 업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비자와 만나 판매하는 비즈니스로, 대표적 예로 온라인 자사몰이 있음.
다수의 유통 채널을 뚫는 것은 빠른 시간에 브랜드를 알리고 점유율을 확대할 순 있겠지만 꾸준한 판매량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 부담이 커진다. 그리고 브랜딩 관점에서 기존 유통 채널의 이미지가 브랜드 초기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브랜드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유통 단계를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제작자는 제품 품질과 브랜드 관리에만 집중하고, 고객은 양질의 제품을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채널을 완전히 놓을 순 없다. 브랜드 경험 차원에서 온라인 판매만 고수하는 것은 반쪽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발은 신어봐야, 만져봐야 그리고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입체적인 대상이다.
제품을 '판매'하는 목적의 매장은 앞서 말한 유통 수수료뿐만 아니라 재고 보관을 위한 공간 확보 및 임대료 등의 고정 비용이 상당하다. 그래서 마더그라운드는 오프라인 채널을 '판매' 목적이 아닌, '경험'을 목적으로 활용한다. 그렇게 나온 콘셉트가 바로 '보부 스토어'와 '신발장'이다.
1. 전국을 돌아다니는 '보부 스토어'
말 그대로 '보부상'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단기간 팝업 스토어를 연다. 전국의 매장을 열 수 없으니 돌아다니면서 매장을 연다는 콘셉트가 재밌는 발상이다. 그리고 임대 전용 공간에 들어가는 방식이 아닌 카페, 소품샵, 백화점, 문화복합공간 등의 브랜드와 협업하여 공간 일부를 매장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 덜 부담스럽다.
보부 스토어는 마더그라운드 대표도 직접 현장에 나가 브랜드와 제품을 소개하기도 하며, 고객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자리로도 활용된다. 그리고 보부 스토어 공간을 제공해준 브랜드와 콜라보 또는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린 굿즈를 한정 수량으로 제작/판매하기 때문에 현장 방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 무인 스토어, '신발장'
마더그라운드는 자판기처럼 사람이 없어도 신발을 구매할 수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신발장’을 기획했다고 한다. 보부 스토어와 다른 점은 대표뿐만 아니라 판매 직원이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1주일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머무르는 점이다. 신발장에 방문하여 자유롭게 제품을 신어본 후, 신발장 옆 주문서를 작성하여 카운터에 제출하고 결제하면 집으로 신발을 배송해준다. 현재는 총 3곳(제주도 1곳, 서울 2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오프라인 채널을 제품 '경험' 공간으로 운영하여, 온라인 구매 과정에서 느끼는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있다.
에어로케이, 태극당, 광장시장, 코오롱 스포츠, Danish Beekeepers 등 마더그라운드는 다른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자주 기획하는 편이다. 이는 앞서 말한 브랜드 철학 중 '상생'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요즘 기업은 필요한 역량과 기술을 타 사가 가지고 있다고 하여 소유하여 취하는 것이 아닌, 연대를 통해 시너지를 추구한다. 스몰 브랜드 간의 협업일수록 시너지는 배가 된다. 마더그라운드 또한 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결이 자신과 비슷하고, 협업이 서로에게 도움된다면 유연하게 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에어로케이 콜라보를 예로 들자면, 안전이 제일 중요한 항공사에서 마더그라운드 제품을 업무화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신발의 실용성과 편안함은 이미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에어로케이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 존중과 고정관념을 깨는 도전적인 이미지의 덕을 볼 수 있다. 에어로케이도 마더그라운드의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으며, 두 브랜드 다 주요 고객층이 겹치기 때문에 좋은 시너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마더그라운드를 자세히 알아가면서 제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백로와 사과 중 하나를 구매하고 싶었으나 사이즈가 이미 동났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 구매 욕구를 느낀 걸까?
일단 '신발'이라는 본질에 충실하고,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와 마더그라운드가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이 겹쳐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이 이미 그 신발을 신고 있어 좋은 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좋은 브랜드 철학과 제품력이 증명됐다면, 많은 광고 노출과 유통 채널을 보유하지 않아도 꾸준한 입소문이 쌓여 사랑받게 되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당연한 것의 중요성을 잊는 브랜드들이 우리 주변에 꽤 많다.
이 글은 스몰 브랜드의 기록이자 본의 아니게 소비 예고편이 되었다ㅎㅎ(일단 재입고 일정 문의부터).